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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6일 서울 관악구에서 희귀질환인 '근이영양증'을 앓던 32살 정영훈 씨가 심정지로 숨졌습니다.

근이영양증은 근육이 점점 약해지는 유전 질환으로, 영훈 씨는 이날 새벽 가슴 통증을 호소했습니다.

구급차가 왔지만, 영훈 씨는 병원으로 바로 이송되지 못했습니다. 도착 24분이 지나 심정지가 발생했고, 그때 서야 급히 가까운 병원으로 구급차가 출발했지만 숨졌습니다.

영훈 씨 어머니는 구급대가 '관내 병원 이송'이라는 원칙을 되풀이하면서 시간이 지연됐다고 말합니다.

국가 지정 희귀질환은 아무 병원에서 치료가 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되도록 주치의가 있는 병원으로 이송돼야 하는데, 이런 특성이 이송 과정에서 고려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근이영양증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영훈 씨 일이 남 일 같지 않습니다.

위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제때 치료를 받을 수 있을지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당시 이송 경위에 대해 소방청이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설명한 자료를 토대로 당시 어떤 문제가 있엇는지, 개선할 점은 없는지 짚어봤습니다.

■ '희귀질환자' 여러 번 말했지만…"관내 이송이 원칙"

영훈 씨가 몸이 이상하다고 느낀 건 초등학교 때입니다. 한창 뛰어놀 시기, 또래처럼 빠르게 뛸 수 없었습니다.

이상하게 여겨, 병원 여러 곳을 가봤지만, 병명을 정확히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진단명은 근이영양증. 국가 지정 희귀질환입니다. 서서히 보행 능력을 잃게 되고, 마지막 순간엔 손가락 끝만 겨우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몸이 약해집니다.

영훈 씨도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일상적으로 휠체어를 탔습니다. 공부를 포기하지 않았고, 가톨릭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기도 했습니다.

고 정영훈 씨
고 정영훈 씨

하지만 5년 전부터 심장 근육이 약해지기 시작했고, 심부전이 생겼습니다. 서울대병원과 강남세브란스병원을 주기적으로 오가며 심장약을 먹고, 재활 치료를 받았습니다.

희귀질환은 환자가 워낙 적고 병을 아는 전문의도 적습니다. 서울에서도 주로 빅5에서만 치료가 가능합니다.

영훈 씨가 가슴이 아프다고 한 건 지난달 16일 새벽입니다. 얼굴과 입술이 하얗게 질린 채 통증을 호소했습니다.

새벽 5시 55분 어머니 김경자 씨는 119에 전화했습니다. 증상을 이야기하고 "아이가 희귀질환자여서 강남 세브란스 병원을 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돌아온 답은 "가장 가까운 병원이 원칙"이라는 얘기였습니다. 원하는 병원에 가려면 택시를 이용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근이영양증 환자는 대부분 휠체어를 타서 일반 택시는 이용하기 어렵습니다.

구급상황센터 : 구급차가 갈 거고 일단 병원 지정은 선생님께서 하실 수 없고 저희 구급대원들이 와서...
엄마 : 여기는 희귀질환 환자라서 강남세브를 가야 됩니다.
구급상황센터 : 무슨 환자라고요?
엄마 : 희귀질환이요.
구급상황센터 : 저희 원칙을 말씀을 드리는거예요. 그 병원 꼭 가고 싶으면 사설 구급차 이용하시거나 택시 이용하셔야 돼요. 저희는 긴급 환자 우선 원칙이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곳이 원칙이에요.
엄마 : 아니, 여기는 근육병 희귀질환 환자라서...
구급상황센터 : 아, 그러니까 저희 원칙을 말씀드린...

통화를 끊고 나서 얼마 안 돼 이번엔 출동 중인 구급대원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김 씨는 "(아들이) 가슴이 답답한 게 더 심하다"며 "원래 심부전이 있고 희귀질환인 근이영양증을 앓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번에도 돌아오는 답은 "가까운 응급실에 가게 될 것"이란 얘기였습니다.

구급대원 : 앓고 있는 질환이 심부전 말고 더 있을까요?
엄마 : 근이영양증이에요. 근육병.
구급대원 : 근 뭐요?
엄마 : 근이영양증. 희귀질환.
구급대원 : 일단 신고 주셔서 만약에 가게 되면 인근에 가까운 응급실로 가게 될 거예요.
엄마 : 아니, 그러면 안 되죠. 여기는 이 지금 환자가 희귀질환이어서 다니는 병원이 있는데 급해서 지금 119를 부르는 건데 왜 자꾸 가까운 병원만 말씀하시는지 모르겠네.
구급대원 : 구급차가 목적이 그거잖아요. 긴급한 환자들 인근에 빠른 병원에 이송하는 게 목적이거든요.

6시 10분 구급대가 영훈 씨 집에 도착했습니다. 김경자 씨가 심장 쪽 주치의가 있는 서울대병원으로 이송해달라고 요청하자, 똑같은 대답이 되풀이됐습니다.

김 씨에 따르면, 구급대원들은 '관할 구역을 벗어날 수 없다, 벗어날 경우 급한 환자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관내 이송이 원칙'이라며, 가까운 보라매 병원으로 이송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서울대병원은 관악구에서 꽤 떨어져 관외 이송 병원이었습니다.

김 씨의 계속되는 요청에 구급대는 6시 17분 서울대병원 응급실에 환자 수용을 요청했습니다. 현장 도착 후 7분 정도가 지난 시각입니다.

그러나 서울대병원에선 병상이 꽉 찼다며, 받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다시 6분 뒤 구급대는 관내 가까운 병원인 보라매 병원에 수용을 요청했습니다.

전화로 환자 상태를 설명하던 중 영훈 씨가 갑자기 휠체어에서 의식을 잃었습니다. 심정지가 발생한 겁니다.

이때가 6시 25분, 현장 도착 후 15분이 지난 시각입니다.

놀란 구급대원들은 영훈 씨를 가져온 침대 의자에 눕힌 뒤 심폐소생술을 시작하며, 구급차로 이동했습니다.

6시 34분 구급차는 보라매 병원으로 출발했지만, 영훈 씨는 결국 심정지로 숨졌습니다.

영훈 씨 어머니는 "분초를 다투는 시간에 구급대원이 관내 이송에만 꽂혀 있었다"며 "희귀질환에다 심부전이 있다고 얘기하고 가슴이 아프다고 했는데도 입씨름에 시간을 낭비했다"고 밝혔습니다.

고 정영훈 씨
고 정영훈 씨

■ "희귀질환 특성 반영한 이송 지침 필요"

영훈 씨 어머니는 근이영양증 환우회에서 활동해 왔습니다. 떠난 보낸 아들은 어쩔 수 없지만, 다른 환우들을 위해서라도 구급대 이송 지침을 보완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우선 119 구급대에서 희귀질환이 무엇인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기본적인 이해는 갖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영훈 씨 어머니는 구급대와 통화하면서 여러 차례 희귀질환자라고 미리 설명했지만, 구급대에선 희귀질환이 뭔지조차 잘 모르는 듯해 보였습니다.

또 관내에 거주하는 희귀질환자는 따로 등록해 관리하면서 응급 상황 발생 시 관내 이송 원칙유연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관내 병원이 아니더라도 필요하면 주치의가 있는 병원으로 신속히 수용을 문의하는 매뉴얼을 갖춰야 한다는 겁니다.

현재 서울 지역 이송 지침의 경우, 심정지와 뇌졸중, 소아 응급, 응급 분만 등 9가지 질환에 대해 권역별로 이송을 문의할 병원의 목록이 사전에 정해져 있습니다.

여기서 희귀질환 항목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희귀질환 환자단체의 입장입니다.

물론 이 같은 매뉴얼을 갖춘다고 해서 신속한 이송이 곧바로 가능한 건 아닙니다. 서울 빅5 등 희귀질환 치료가 가능한 병원에서 희귀질환자가 응급 환자로 이송될 경우 되도록 수용하도록 사전 협의가 필요할 겁니다.

강선우 의원은 “희귀질환을 고려하지 않은 이송 원칙 자체가 환자를 위험에 빠뜨린 구조적 문제”라며 “희귀질환자의 경우 주치의 병원이나 전문 치료 병원으로 우선 이송할 수 있도록 매뉴얼을 정비하고, 이를 보완할 수 있는 희귀질환 응급 이송 법안을 마련 중에 있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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