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선조들, 고래·맹수 사냥 모습 그린 바위그림
12일 오전(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반구천 암각화\'의 세계 유산 등재가 결정된 직후 최응천 국가유산청장(가운데 한복입은 사람)과 김두겸 울산시장(최 청장 왼쪽) 등 한국 대표단 관계자들이 박수를 치며 기뻐하고 있다. 국가유산청 제공
바다에서는 덩치 큰 갖가지 고래들을 잡고, 산 속에서는 호랑이와 멧돼지들을 사냥했던 선사시대 한반도 선조들 삶의 흔적들이 전 세계가 인정하는 인류 문화유산 반열에 올랐다.
12일 저녁(한국시각) 프랑스 파리 에펠탑 남쪽의 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본부 1회의장에서는 한국 대표단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현지시간으로 이날 오전 10시 시작된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첫 안건으로 올라온 ‘(울산)반구천의 암각화'(Petroglyphs along the Bangucheon Stream)에 대한 진행을 맡은 불가리아의 니콜라이 네노브 교수가 논의 결과 등재가 확정되었다고 발표했다. 그 순간 최응천 국가유산청장과 김두겸 울산광역시장 등 국가유산청·울산시 대표단 관계자들은 손을 치켜들어 환호하고 박수를 치면서 2년 전 가야고분군에 이은 한국의 17번째 등재를 자축했다. 국보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와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로 이뤄진 반구천 암각화는 지난해 한국 정부가 유네스코에 공식 등재신청 절차를 마쳤고, 지난 5월 유네스코 자문 심사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가 등재를 권고해 등재결정이 유력시되어 왔다.
울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의 전면 모습. 울산시 제공
바위나 동굴 벽면 등에 새기거나 그린 그림을 일컫는 암각화는 한반도 선사 문화를 대표하는 예술품으로, 반구천 암각화는 사냥 도상의 특이성과 생동하는 묘사력 등에서 전세계 암각화들 가운데서도 첫손 꼽히는 걸작으로 평가받아왔다. 1971년 12월 당시 청년 역사학자 문명대, 이융조, 김정배씨 등이 발견한 반구대 암각화는 가로 8m, 세로 4.5m의 절벽 너른 바위면에 긴수염고래, 귀신고래 등 다양한 종류의 고래들이 헤엄치는 모습과 이들을 작살로 잡고 해체하는 인간의 작업 등 다기한 고래 모습과 사냥 장면을 생생하게 표현해 주목받았다. 천전리 암각화는 대곡리 암각화보다 1년 앞서 발견됐으며, 가로 9.8m, 세로 2.7m의 바위에 고래, 사슴, 말 등의 바다·육상 동물은 물론 용 같은 상상의 동물까지 새겨놓았다. 또한 마름모와 동심원 등 여러 종류의 상징적인 기하문양, 신라 법흥왕 시대 왕족과 화랑으로 추정되는 이들의 답사기록까지 남아있는 역사적 보고로 평가된다. 이코모스 쪽은 지난 5월 두 유적에 대한 등재권고를 하면서 “선사시대부터 약 6천 년에 걸쳐 지속된 암각화의 전통을 증명하는 독보적인 증거”라며 “탁월한 관찰력을 바탕으로 그려진 사실적 그림과 독특한 구도는 한반도에 살았던 사람들의 예술성을 보여준다”고 평가한 바 있다.
1971년 발견 당시 처음 찍은 반구대 암각화 초탁본. 동국대박물관 제공
천전리 암각화 정면 모습. 국가유산청 제공
이번 등재 확정으로 한국은 1995년 석굴암·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 종묘를 시작으로 2023년 가야고분군에 이어 올해 반구천 암각화까지 모두 17건(문화유산 15건, 자연유산 2건)의 세계유산을 갖게 됐다. 한편, 한반도의 최고 명산으로 꼽히는 북한의 ‘금강산'(Mt. Kumgang - Diamond Mountain from the Sea)은 한국시간으로 13일 밤 등재 여부를 논의할 예정인데, 역시 이코머스 심의에서 등재권고 판정을 받은 바 있어 이번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남북한이 나란히 세계유산에 등재하는 성과를 올릴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대곡리 암각화의 다양한 동물 도상들을 표시한 도해사진. 국가유산청 제공
한겨레
노형석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