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 포스터. 사진=넷플릭스
K팝을 소재로 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인기가 식을 줄 모르고 있다. 지난 6월 20일 공개된 이후 하루 만에 넷플릭스 영화 부문 1위에 올랐고 4일째는 41개국 1위까지 차지하며 돌풍을 이어갔다.
OST의 인기도 뜨겁다. 7월 8일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 ‘핫 100’에 따르면 애니메이션 속 인기 K팝 걸그룹 헌트릭스가 부른 ‘골든(Golden)’이 23위를 기록하는 등 OST 7곡이 동시 진입했다. 지난주 싱글차트에 81위로 진입해 화제가 되었고 한 주 만에 58계단 상승했다.
단순한 재미를 넘어 영화의 작품성까지 인정받기 시작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영화 전문매체 버라이어티(Variety)가 선정한 ‘2025 오스카 애니메이션 장편 부문 후보에 들어야 할 가치 있는 경쟁작’으로 언급됐다. 버라이어티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대해 “역동적이고 색채로 가득한 뮤지컬 여정은 애니메이션적 미학과 K팝적 요소를 결합해 여성성과 문화적 자긍심을 기념하는 즐거운 축제와도 같은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한국 문화의 고유성은 흥행의 척도‘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K팝을 본격적으로 다룬 첫 해외 애니메이션이다. 미국 소니픽처스애니메이션이 제작했으며 대사 대부분이 영어로 이루어져 있지만 K팝이 소재인 만큼 작품 속에 한국적 요소가 가득하다. 전통부터 현시대 한국까지 철저히 고증했다. 노리개가 달려 있는 곡도, 신칼, 사인검 등 전통 무기로 악귀를 무찌르는가 하면 우리나라 대표 민화 ‘작호도’에서 튀어나온 듯한 까치와 호랑이 캐릭터가 등장하기도 한다.
오늘날의 한국 풍경 묘사도 탁월하다. 주인공 헌트릭스 멤버들이 다 같이 국밥을 먹는 장면에서는 수저 밑에 휴지가 깔려 있으며 거리에는 핫도그 가게와 인생네컷 부스가 보인다. 또 ‘후배’나 ‘막내’ 같은 단어를 직역하지 않고 고유명사로 번역해 ‘Hoobae’와 ‘Maknae’로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한국 문화를 퓨전식으로 소개하기보다 오히려 한국스러움을 살리는 것이 전략이 됐다. 이 영화를 공동 연출한 한국계 캐나다인 매기 강 감독은 “K팝이나 K뷰티처럼 뭐든 ‘K’가 앞에 들어가면 미국인들은 열광한다”며 “이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문화가 정말 훌륭해졌고 이제는 전 세계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문화라는 것을 느낀다”고 강조했다.
국립중앙박물관 ‘뮷즈’의 굿즈 대란으로도 증명됐다. 국립중앙박물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박물관 문화상품 ‘뮷즈’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약 34% 증가한 115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달성했다. 특히 영화 속 작호도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호랑이, 까치 캐릭터가 인기를 얻으며 원작 ‘작호도’ 관련 굿즈는 품절 대란을 일으켰다. ‘까치 호랑이 배지’, ‘흑립 갓끈 볼펜’ 등 영화와 관련된 굿즈는 재입고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실제 국립중앙박물관 온라인숍 일평균 방문자 수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 개봉 전 6만 명에서 26만 명으로 4배 넘게 늘었다.
작호도 굿즈 '까치와 호랑이' 배지. 사진=국립중앙박물관 '뮷즈' 홈페이지
발 넓히는 K콘텐츠 흥행 범주
(저승사자를 모티브로 한 영화 속 캐릭터. /사진=넷플릭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K팝, 전통문화, 현대 문화를 아우른 애니메이션 작품으로 한류 확장을 체감하게 한다. 최근 마지막 시즌을 공개한 ‘오징어 게임’은 에미상을 수상했으며 영화 ‘기생충’은 오스카상을 받았다. 최근 ‘기생충’은 뉴욕타임스 선정 ‘21세기 최고의 영화’ 1위를 차지하며 일시적인 인기가 아님을 증명했다.
이제 한국은 ‘K팝 원툴’이라는 한계에서 벗어나 콘텐츠 분야의 경계를 넘나들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뮤지컬 분야에서는 ‘어쩌면 해피엔딩’이 토니상을 수상했다.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은 가장 보수적이라는 문학까지 한류가 지평을 넓혔음을 보여준다. K콘텐츠 산업, 경제적 효과는K콘텐츠가 이끄는 한류의 경제적 효과도 주목받고 있다. 전 세계 콘텐츠 시장 규모는 커지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코로나 팬데믹 시기를 기점으로 2021년 기준 전 세계 콘텐츠 시장 매출액은 2조514억 달러로 전년 대비 11.2% 성장했다.
2022년에는 K콘텐츠 산업의 수출액과 매출액 모두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콘텐츠 산업 수출액은 2005년 13억113만 달러에서 2015년 56억6137만 달러, 2023년 133억3941만 달러로 급증했다.
K팝이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금액 역시 대폭 상승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K팝 해외 매출액 동향에 따르면 2022년 총 9218억원에서 2023년 1조2377억원으로 약 34% 증가했다. K팝 해외 매출 3대 영역이라 불리는 공연, 음반, 스트리밍 모두 성장했다.
저작물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문화예술저작권’ 무역수지도 2020년 최초로 흑자에 돌입했다. 2023년 들어서는 3년 사이 7배 증가한 11억 달러를 기록해 역대 최대 흑자를 기록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은 콘텐츠 산업의 생산 유발 효과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국내 전반에서 총 113조원가량의 경제적 파급 효과를 창출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K콘텐츠는 K푸드, K뷰티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신선·가공식품과 농약·종자 등을 포함한 ‘K푸드 플러스 수출액’은 66억7000만 달러(약 9조원)로 전년 동기 대비 7.1% 늘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북미 지역 수출액은 10억3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4.3% 늘어나며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특히 ‘불닭볶음면’의 삼양식품은 지난해 매출 1조7280억원 중 해외 비중이 77%(1조3359억원)에 달했다.
올해 상반기 국내 화장품 수출액도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화장품 수출액은 55억 달러(약 7조5000억원)로 지난해 동기보다 14.8% 늘었다. K콘텐츠의 유통망 한계K콘텐츠의 가파른 성장에는 유통망의 발전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한국 드라마, 영화가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OTT에 올라타 급성장했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한국 콘텐츠를 알릴 수 있게 된 기회지만 동시에 위기이기도 하다. 엔데믹 이후 광고 수익이 감소하고 제작비가 오르며 넷플릭스, 유튜브 등 글로벌 플랫폼의 경쟁적 우위가 강화됐다. 이로 인해 글로벌 OTT 회사나 유통망 계약 시 수익 분배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힘들어졌다. 소프트파워 강국이 된 지금 작품의 온전한 수익을 가져올 수 있는 국가 차원의 경로를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경비즈니스
조수아 인턴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