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김영주의 마음대로 5
일러스트 김대중

‘되면 좋고, 안 되면 그만이고.’ ‘다 경험이야, 인생은 배움이지.’

언뜻 들으면 요즘 말로 쿨한 것처럼 들립니다. 한편으론 그런 실패나 상처 정도는 별일 아니라며 넘기는 강한 모습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말들을 무심히 자주 하고 있다면 혹시 너무 쉽게, 너무 빨리 감정을 밀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찬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태도를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가 과도하게 작동하는 상태로 설명합니다. 방어기제란, 당장 받아들이기 힘든 감정이나 생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각자 자신에게 익숙한 마음의 방패 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방패가 지나치게 사용되다보면, 어느새 자신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될 수 있습니다.

ㅇ씨는 최근 연인에게 갑작스러운 이별 통보를 받았습니다. ‘사실 나랑 코드가 전혀 안 맞았잖아’라고 주변 친구들에게 대수롭지 않게 말합니다. ‘차라리 잘됐어. 내가 헤어지자고 하지 않아도 되니까’라며 오히려 홀가분하다는 식입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온 ㅇ씨는 달랐습니다.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지고 입을 꾹 다문 채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습니다. 이성과 감정이 엇갈리는 순간입니다.

ㅇ씨 안에 일어나는 마음의 작동원리를 찬찬히 살펴보면, 심리학에서 말하는 일종의 방어기제 ‘합리화’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전히 서운하고 슬프며 당혹스럽기까지 한 복잡한 심정임에도 이를 마주하기에는 너무 괴로우니 ‘이성적 설명’으로 감정을 덮어버린 것입니다. 즉, 합리화는 감정을 생각으로 재구성해 자기 위로와 감정 회피, 갈등 정당화까지 가능한, 말하자면 가성비 높은 ‘심리적 방패’입니다.

당장은 ㅇ씨의 자존감은 지켜졌을 수 있겠습니다. ‘내가 못났다. 실패했다’는 감정적 충격을 줄이고, 우선 마음이 회복하는 시간을 벌 수도 있었겠지요. 또 그동안의 연애사를 점검하며 장단점 분석과 미래 전망까지 덧붙여, ‘원래 내 짝이 아니었어’라는 자기 설득도 가능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자신을 지켜주는 것 같은 이 심리적 과정이 반복되면, 역설적으로 진짜 자신의 감정과는 멀어지게 됩니다. 괜찮으려고 애쓴 시도가 결국 ‘괜찮지 않은 상태’로 남게 되는 역설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원래 별로였어.’ ‘안 되는 게 오히려 나았던 거야.’ 이 말들은 정말 괜찮아서 하는 말일까요? 아니면 괜찮지 않은 나를 애써 괜찮다고 스스로 설득하는 걸까요? 힘든 순간에 자신을 다독이는 건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고 필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 감정을 솔직하게 느끼지 못한 채 다르게 포장해 넘기는 습관은, 어느새 내가 나를 속이는 데 익숙해지게 만듭니다. 손에 닿지 않자 ‘분명 저 포도는 신 포도일 거야’라고 말하며 체면을 지키려던 여우처럼….

혹시 나도 그 여우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요? 지금 이 순간, 용기 내어 그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 어쩌면 진짜 나를 지키는 일은 거기서 시작될지 모릅니다.

김영주 온더함심리상담센터 대표

한겨레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49901 이재명 대통령 "소비쿠폰으로 경제 선순환 기대" 랭크뉴스 2025.07.12
49900 尹 관저 ‘골프연습장’ 제보자, 기자에게 한 첫 마디는? [취재후토크] 랭크뉴스 2025.07.12
49899 23시간 '안산 인질극' 벌였던 살해범, 동료 수용자 폭행해 추가 실형 랭크뉴스 2025.07.12
49898 국힘 19% 지지율에…안철수 "찐윤 세도정치 완전히 막 내려야" 랭크뉴스 2025.07.12
49897 정규재 “이 대통령 ‘시진핑, 경주 APEC 올 것’이라고 말해” 랭크뉴스 2025.07.12
49896 정규재 "李대통령 '시진핑 경주 APEC 올 것'이라고 말해" 랭크뉴스 2025.07.12
49895 저출산위, 청소년·청년 국민위원회 발족…"미래세대 의견 청취" 랭크뉴스 2025.07.12
49894 북러, 원산에서 외무장관 회담…"양국관계는 전투적 형제애"(종합) 랭크뉴스 2025.07.12
49893 李정부 기조 'ARF 성명' 반영됐다…CVID 빠지고 "대화 재개" 강조 랭크뉴스 2025.07.12
49892 K팝 확산 쉽지 않네… JYP 글로벌 걸그룹 ‘비춰’, 4인조로 재편 랭크뉴스 2025.07.12
49891 박찬대 "당대표, 이재명 정부 뒷받침해야…그래서 제가 적격" 랭크뉴스 2025.07.12
49890 폭염 속 대형마트서 카트 정리하다 숨진 60대 근로자…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 조사 랭크뉴스 2025.07.12
49889 이 대통령 “골목 살아야 경제가 산다…외식 동참해달라” 랭크뉴스 2025.07.12
49888 북 “불패의 전투적 형제애”에 러 “북한의 영웅적 군인”···북러 원산서 회담 랭크뉴스 2025.07.12
49887 “트럼프에 충성 안 한다고? 바로 해고해”…백악관 쥐락펴락하는 女 인플루언서 누구길래 랭크뉴스 2025.07.12
49886 북한 빠진 ARF 의장성명… ‘CVID’ 대신 ‘완전한 비핵화’로 수위 조절 랭크뉴스 2025.07.12
49885 “이 대통령 ‘시진핑, 경주 APEC 올 것’이라고 말해”···정규재 TV가 발언 소개 랭크뉴스 2025.07.12
49884 與, 野 '이진숙·강선우' 의혹공세에 "소명시 국민도 납득할 것" 랭크뉴스 2025.07.12
49883 툭하면 체하고 속이 더부룩…‘○○암’ 의심되는 몸속 SOS 신호[건강 팁] 랭크뉴스 2025.07.12
49882 李정부 기조 ARF 성명 반영됐다…CVID 빠지고 "대화 재개" 강조 랭크뉴스 2025.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