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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크뉴스 › 원자력에 의지하는 에너지 전환은 가능할까요

랭크뉴스 | 2025.07.12 10:20:04 |

우리 에너지 전환의 가장 큰 장애물은 불필요한 논쟁입니다. 원자력이냐, 재생에너지냐, 한쪽만 옳다는 논쟁을 말합니다.

우선은 무의미합니다. 한쪽만 끌고 간다는 생각은 비현실적이기 때문입니다. 또 불필요합니다. 더 시급한 과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당장 속도를 내는 것, 그러기 위해 장기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계획을 세우는 것입니다.

무탄소 전원이라면 원전이 답이라는 목소리

그렇게 무탄소 전원이 절실하면 원전이 답이 아니냐는 이야기, 에너지 전환 논의에서 끊이지 않는 질문입니다.

'세계가 데이터센터에 쓸 전기를 구하려고 필사적이다. 그래서 원전을 찾는다. 그런데 왜 원전 강국인 우리는 간헐적이어서 부적합한 재생에너지를 하자고 하느냐?
RE100이 아니라 CF100(무탄소 100) 혹은 24/7 CFE(24시간, 일주일 내내 무탄소 에너지)의 현실적이지 않으냐'


원전 경쟁력은 사실입니다. 우리가 원자력 발전에서 가진 경쟁력은 강합니다. 발전원의 비용 대비 효용을 비교하기 위해 만든 지표 LCOE(균등화 발전단가)로 보면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싼 전원이고, 국산화 비율도 높고, 건설 경쟁력도 있습니다. 게다가 무탄소 전원입니다. (중국을 제외하면) 경쟁력 있는 가격에 약속한 날짜를 지키며 해외에 원전을 수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나라인 것 같습니다. 이 수치를 거부해서는 곤란합니다.

■ 원자력을 부정할 이유가 없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유럽에서 에너지 업계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EMBER나 BNEF(블룸버그 신에너지 금융), PPCA(탈석탄동맹) 같은 기관이었습니다.

원전과 재생 에너지의 관계에 대한 그들의 시각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들은 대결 구도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더군요. 한국에는 '원전과 재생 둘 중의 하나는 죄악시'하는 시각이 광범위한데 말이죠.

EMBER의 데이브 존스 국장은 한국의 원전 비율(30%)에 관해 묻자 "한 가지 기술만으로는 기후 비상사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잘라 말합니다. "영국도 해상풍력과 태양광, 그리고 새 원전 건설을 동시에 하고 있다, 전환의 다음 단계는 어떻게 100% 무탄소 전력 시스템에 도달하냐는 것이지 재생에너지 이념을 달성하는 것이 아니다"고 했습니다.

데이브 존스 EMBER 국장

안전에 문제가 없다면, 기존 원전을 일정 수준의 기저 전원(기본 전력수요)으로 활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시각입니다. 원전이 '특정 지역에서 믿을 수 있는 탈탄소 수단'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산업구조와 전력망 조건이 비슷한 한국과 타이완을 비교해 보자면, 태양광과 풍력만 봤을 때 최근 타이완이 한국을 역전했습니다. 수력 등 전체 재생에너지로 보면 15%에 달합니다. 한국은 10% 수준이죠.

하지만 원전을 합치면 한국의 무탄소 전원은 40%입니다. 타이완은 최근 원전 발전을 중단해 0%가 됐습니다. (올가을 원전 지속 여부를 놓고 국민투표를 합니다) 재생에너지에서는 많이 뒤졌지만, 무탄소 전원으로 따지면 훨씬 앞섰죠. 원전은 분명 탄소 중립의 길을 밝혀주는 든든한 발전원입니다.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데이터 센터를 위해 폐원전을 재가동하거나, 원전에 투자하는 빅테크가 늘고 있기는 합니다. 캘리포니아주가 100% 무탄소 전원 정책 아래 원전의 필요성을 부정하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원전의 자리는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 생각하던 것 보다 그 자리가 커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다만, 동시에 원전의 역할에 한계가 있다는 시각도 뚜렷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기존 원전'을 활용하는 수준에서 의미를 제한합니다. 새롭게 에너지 전환을 이끌어가는 전원으로 고려하지는 않는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이 원전의 비중 확대가 피벗(전환)은 아닙니다. 원전도 쓰겠다, SMR과 핵융합 등 차세대 발전에 기대를 걸겠다고 하긴 합니다만, 당장은 미국도 재생에너지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시장의 힘에 의해서죠. 공화당의 핵심 지지 기반인 텍사스를 보면 분명합니다. 큰 맥락에서 미국도 에너지 전환의 주인공은 재생에너지입니다. 원전도 쓰는 것이지 원전이 핵심 동력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니 정답인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에너지 전환에서 원전과 재생에너지의 대립은 주요 주제가 아니다, 글로벌 스탠다드도 혼합에 방점을 찍는다는 점을 언급하고 싶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제 우리의 입장에서 본격적으로 더 생각해 보죠.

■ 그러나 원전을 늘리는 데는 명백한 한계가 있습니다

원전이 맞네, 재생이 맞네, 다툴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는 지난 8년을 그런 불필요하고 무의미한 논쟁 속에 허비했습니다. 전환 속도만 느려졌습니다.

원전도 배제할 이유가 없습니다. 할 수 있다면, 가능하다면 더 지어보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만, 원전 비율을 늘려서 무탄소 전원을 늘리자는 정책에는 몇 가지 결정적 장애 요소가 있습니다.

① 원전은 경직성 전원
원전은 경직성 전원입니다. 24시간 돌려야 하고, 멈추는 것과 조절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또 그렇게 멈추거나 조절하면 단가가 올라갑니다.

문제는 현실 세계의 전력 소비는 일정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밤에는 전기를 적게 쓰다가, 낮이 되면 많이 씁니다. 보통 피크(첨두 부하라고도 부릅니다) 저녁 퇴근 시간 전후입니다.

그래서 모든 전기를 원전으로 채우는 건 불가능합니다. 원전은 물리적으로 '전력 소비가 가장 적은 시점보다 많이 생산하면' 안 됩니다. 그 자체로 경제성이 급격히 떨어집니다.

다른 전원과의 관계도 고려해야 합니다. 에너지 정책은 '최고의 하나'를 정하는 정책이 아닙니다. 다양한 에너지원을 섞어서 최적의 상태로 유지 관리하는 정책입니다. 석탄, 가스 발전, 태양광-풍력 발전도 당장 문을 닫을 게 아니라면 경제성이 유지되는 수준에서 가동해야 합니다.

이 에너지 믹스를 고려하면 원전의 최대 발전량 한계치는 좀 더 줄어듭니다. 안 그러면 오히려 원전 때문에 전체 발전단가가 높아집니다. (태양광과 풍력은 각자의 발전 시간이 정해져 있고, 석탄이나 가스 발전을 껐다가 켜는 일을 반복하면 발전 단가가 높아집니다.)

그래서 원전 비율을 현재의 30% 수준에서 더 높이는 것은 그 자체로 굉장히 도전적인 과제입니다.

그러나 진짜 도전은 시작도 안 했습니다. 원전의 가장 큰 한계는 사회-정치적 수용성입니다.


② 서울에 원전 지을 수 있을까요?
민감한 문제입니다만, 원전을 새로 설치하는 일은 너무 어렵습니다. 제가 무모한 제안을 하나 할게요. 전력 소비가 많은 수도권에 원전을 다섯 개 정도 지으면 어떨까요? 아니면, 혹시 행정 수도 이전계획에 맞춰 비게 될 청와대나 정부 서울청사나 과천청사, 여의도 등지에 원전을 지으면 어떨까요?

과학적으로 가능하고 전력 시스템적으로 효율적인 생각입니다. 타당합니다. 그러나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이 이 방안이 비현실적이라는 데 동의하실 겁니다. 사회적인 반발과 우려를 감당하기 쉽지 않을 겁니다. 지질학적 타당성은 별개입니다.

서울에서 다른 지역으로 바꾸면 다를까요? 전국 어느 지역을 거론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로운 원전 건설은 쉽지 않습니다. 하나만 새로 건설하려고 해도 반대 의견 청취와 여론 수렴 등이 수년이 걸릴 것이고, 성사 여부도 불투명합니다.

③ 10년이면 되나요?
지난해 결정된 체코 두코바니 원전, 지난달 최종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착공은 2029년에 시작될 것이라 합니다. 첫 번째 원자로는 2036년, 두 번째 원자로는 2038년에 시험 운전합니다. 공개입찰이 시작된 것은 2022년이죠. 땅이 정해져 있고, 정치적 지원이 있는 상태에서 지어도 14~16년이 걸립니다. 실제로는 더 걸릴지도 모릅니다.

우리나라에서 새 원전을 부지 선정 절차부터 시작한다면, 착공하고 건설하는 데는 얼마나 걸릴까요? 신한울 3, 4호기의 경우 콘크리트 타설로부터 7~8년을 전망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계획부터 완공까지는 10년이 걸리는 상황이 됐습니다. 만약 새로운 부지를 찾는 데서 시작해서 사회적 수용성을 마련해 가며 지으려고 한다면, 1~2기만 짓는다 해도 빨라도 10~15년은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④ SMR이 있지 않습니까?
네 아직은 없지만, 전 세계가 연구개발에 나선 만큼 가능할 것 같습니다. 미래에 그런 좀 더 작고 안전한 원전이 가능하다면 상황이 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사회적 반발이 좀 적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아직 없다는 점이죠. 첫 모델이 개발된다고 급속한 보급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추가적인 연구개발이 필요하죠. 가격 성능 면에서 현실성을 확보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기술에 투자해야 하고, 가능성을 포기하지는 말아야겠지만, 없는 것을 가지고 당장 절실한 에너지 전환을 계획할 수는 없습니다.

또, 개발된다 해도 우리나라에서 수도권에 SMR 추가하기는 역시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으로 생각됩니다. 과학이 아닌 사회-정치적 수용성의 벽입니다. 송전탑조차 그 벽을 넘기 쉽지 않은 상황을 감안해야 합니다.

첨언하자면, 가격 면에서 메리트도 크게 줄 겁니다. 원전에 주목하는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싼 LCOE인데, SMR은 그렇게 싸지 않을 겁니다. 구조적으로 '대규모 원전' 대비 작고, 그래서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가격 경쟁력에도 물음표가 붙는다는 얘기입니다.

정리하자면, 원전의 한계는 과학에 있지 않습니다.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수용성이 낮다는 점, 그리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데 반해 비용 효율 면에선 물음표가 붙는다는 점에 있습니다. 활용은 해야겠으나, 현실적 한계가 분명합니다.

■ 반면 전환은 시급합니다

에너지 전환은 당장 급합니다. 당장의 석탄 설비용량(현재 약 40기가와트)을 무탄소화 하는 데만도 40기가와트 안팎의 새로운 전원이 필요합니다. 이걸 원전으로 하려면 1.5기가와트급 27기가 필요하죠. 원전 27기를 '어디에', 그리고 '몇 년 안에' 지을 수 있을까요.

더 시급한 건 약속 이행입니다. 2030년까지 정부는 국제사회에 화석 발전 약 8~9기가와트를 감축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5년 안에 해야 합니다. 원전으로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이건 시작일 뿐입니다. 석탄을 완전히 퇴출시킨 뒤에, 궁극적으로는 LNG 발전 역시 대체해야 합니다. 역시 설비용량이 40기가와트가 넘습니다. 원전이 이 전환의 주인공이 될 수는 없습니다. 현실적으로 그렇습니다.

다른 나라는 어떻게 했을까요? 네덜란드를 볼까요? 다큐멘터리에서 소개해 드렸습니다만, 환경단체 우르헨다 재단의 소송(소송 제기는 2013년, 대법원 확정은 2019년입니다)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시작된 에너지 전환이지만 속도는 엄청나게 빨랐습니다.

비결은 앞서 살폈듯 ① 정부의 강력한 의지, 그리고 ② 재생에너지에 있습니다.


영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에너지 전환에 먼저 성공하는 나라들은 대부분 비슷한 성공 방정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경제 미디어 블룸버그 산하의 블룸버그NEF(BNEF) 아누 탄 연구원의 말에 귀 기울여보시죠.

“물론 모두가 영국처럼 똑같이 할 수는 없어요. 제각각 상황은 다르잖아요. 하지만 영국은 에너지 전환이 짧은 시간 안에 가능하다는 걸 보여줘요. 재생 에너지 발전을 확대해서 석탄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시켜 줍니다. ”

■ 원전 성공 신화에서 정말 배워야 할 것

사실 원전에서 배워야 할 것은 따로 있습니다. 우리는 왜 원전이란 기술에서 성공한 나라가 됐을까요? 그리고 원전은 왜 우리나라에서 유독 LCOE가 싼 전원이 됐을까요?

사실 에너지 산업은 기본적 성격이 비슷합니다. 초기에 많은 자본을 들여서 성공 여부가 불확실한 투자(채굴, 개발, 건설)를 해야 합니다. 그 성과는 장기적으로 분산되어 나타납니다. 원전에서 한국이 성공한 것은 국가가 주도해서 불확실한 기술 개발과 건설에 투자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장기에 걸쳐 저렴한 금리로 자금을 융통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원전의 LCOE가 싼 가장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로 이 저렴한 금융 비용을 꼽는 전문가가 많습니다. 우리는 원전 성공에서 이 점을 배워야 합니다. 국가가 주도해 계획을 세우고, 시장을 유인해서 리스크를 기회로 바꾸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죠.

불확실한 미래지만 반드시 가야 하는 에너지 전환이고, 또 시급히 가야 합니다. 원전에서 성공한 경험은 이 에너지 전환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줄리아 스코르프스카/ 탈석탄동맹 PPCA 사무총장
“모든 국가에 저마다의 도전, 각자의 상황이 있는 건 분명해요. (그러나) 반복해서 말하는 핵심 메시지는 이거예요. 화석연료 발전소의 폐쇄 날짜를 일단 정하는 게 중요해요. 국가가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점이죠. 그러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른 에너지 전환을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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