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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티저]
나는 보이스피싱 피해자입니다 7화
게티이미지뱅크

선릉역에 도착했다고 이야기하자, 검사는 휴대폰을 구매한 후 보고하라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지도를 따라 도착한 곳은 오피스텔 건물 앞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4층에 내리자 좌우로 갈라지는 복도 벽 가운데에 지도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어가자, 문이 열린 사무실이 보였다. 매장 안에는 ‘개인정보를 100% 삭제한 중고폰’이라고 적힌 커다란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나는 매대 앞에 서 있는 남자에게 조심스레 30~40만 원대 안드로이드 OS 휴대폰이 있는지 물었다. 남자는 흰색 안드로이드 폰을 추천해주었다. 나는 서 팀장이 꼭 받으라고 당부했던 유심 핀과 케이스, 충전기도 챙겨줄 수 있는지 물었다. 남자는 흔쾌히 ‘당연히 챙겨드려야죠’ 하고 말하며 전면에 보호 필름까지 붙여주었다. 서 팀장이 이런저런 케이스를 시뮬레이션해보았던 게 무색하게, 핸드폰을 사는 과정은 지극히 수월하고 평범했다.

나는 매장에서 함께 챙겨준 갈색 종이봉투에 휴대폰과 충전기, 구매 영수증을 담아 나왔다. 유심 핀은 잃어버리지 않게 충전기 박스의 틈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서 팀장에게 텔레그램으로 ‘중고폰과 말씀하신 품목들을 무사히 구매해서 나왔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곧장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010으로 시작하는 나의 개인 녹취 기기 번호였다. 서 팀장은 별도의 특이 사항은 없었는지 물었고,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고 답했다. 그러자 서 팀장은 휴대폰 보안 검사를 비롯한 여러 작업을 진행해야 하니 혼자 조용히 머물 수 있는 장소로 이동하라고 말했다. 이어서 자차가 있는지 물었다. 나는 없다고 답했다. 속으로 차 안에서 조사를 받으면 이렇게 돌아다닐 일 없이 금방 끝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근처의 조용한 카페라도 알아볼까요? 찾아보면 스터디카페가 있지 않을까요?”라고 묻자, 서 팀장은 비용 처리를 해줄 테니 차라리 근처에 있는 저렴한 숙소를 대실하라고 제안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잠깐 나의 배경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나는 숙박업계에서 일을 하고 있다. 전략 기획과 클라이언트를 상대로 한 마케팅이 주 업무인데, 그러다 보니 흔히 ‘모텔’이라 부르는 중소형 숙박업소를 의도적으로 경험해보려고 한다. 고객과의 접점을 이해할 수 있고, 다양한 모텔을 이용한 경험이 우리의 프로덕트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 팀장의 제안을 받았을 때 나름대로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뭐랄까, 지금 내 상황이 굳이 따지자면 비즈니스 출장객들의 사용 맥락과 유사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숙소에서 간단한 업무를 처리해야 하고, 비용의 지불 주체가 외부에 있기도 하고. 지금 생각해보니 그 와중에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게 조금 웃기기도 하다. 하여튼 나는 적당한 곳으로 예약 후 보고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앱을 켜서 근처에 있는 모텔을 검색했다. 선릉역과 가까우면서 가격이 너무 비싸지 않고, 또 적당히 깔끔해 보이는 곳을 골라 예약했다. 예약한 모텔로 가는 동안에도 서 팀장은 프런트 직원에게 뭐라고 말해야 하는지에 대해 한참이나 설교를 늘어놓았다. 나는 서 팀장에게 적당히 그렇게 말하겠다고 장단만 맞춰줬다. 속으로 참 한결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하면서. 뭐, 한결같아서 나쁠 건 없었다. 오히려 이런 일관된 태도가 긍정적으로 느껴졌다. 일 처리가 확실하고 사건의 보안을 유지하려는 데 진심이구나, 그때는 이런 생각을 했던 거 같다. 모텔까지는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링크를 방문해 7화의 이어지는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205810.html

‘나는 보이스피싱 피해자입니다’는?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보이스피싱은 ‘검찰을 사칭한 사람이 돈을 요구한다’는 단순한 장면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김아현씨가 직접 겪은 보이스피싱은 교묘하고, 복잡했는데요. 독자들이 비슷한 상황에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도록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나는 보이스피싱 피해자입니다(https://www.hani.co.kr/arti/SERIES/3310?h=s)를 통해 상세한 기록과 정보를 생생하게 전달드립니다.
피해자를 겨누는 더 상세한 수법과 정황이 기록된 전문을 아래 링크에서 확인해보세요.

▶스물여덟, 보이스피싱에 당하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98529.html?h=s

▶“주소는 ‘대검찰청 점 커뮤니티 점 한국’입니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99742.html?h=s

▶“엠바고가 걸려있는 특급 사건입니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200997.html?h=s

▶보이스피싱범에게 직장 생활 설교를 듣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202130.html?h=s

▶보이스피싱범의 사려깊은 한마디 “비하하는 건 아닌데...”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203366.html?h=s
김아현 작가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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