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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허원도 KAIST 생명과학과 교수
“10년 전부터 학내 연못에 사는 거위들 돌봐
생명에 대한 관심이 연구 이어가는 힘”

지난 10일 KAIST 대전 캠퍼스에서 허원도 생명과학과 교수가 거위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KAIST


전국에 폭염 특보가 내려진 지난 10일, 대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캠퍼스에 들어서자 푸른 잔디밭 사이로 연못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가서 보니 KAIST의 명물인 거위들이 더위를 피해 나무 그늘 아래 모여 있었다. 그 사이에 한 사람이 있었다. 허원도 KAIST 생명과학과 석좌교수였다.

허 교수는 연신 “이리와, 이리와”를 외치며 거위들에게 먹이를 나눠주고 있었다. 다 큰 거위 12마리와 새끼 거위 3마리가 허 교수를 둘러싸고 옹기종기 모여서 먹이를 먹고 있었다. 허 교수는 “사실 여름에는 따로 먹이를 챙겨주지 않아도 되지만, 거위들이 잘 지내나 살피기 위해 자주 내려와서 둘러본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KAIST의 2대 ‘거위 아빠’다. 이광형 KAIST 총장이 2001년 연못에 거위를 데려온 뒤 초대 거위 아빠를 맡았고, 5년쯤 전부터 허 교수가 거위 아빠 자리를 물려 받았다. 그는 “캠퍼스에 거위나 오리뿐 아니라 비둘기, 고양이 같은 다양한 동물이 많은데, 10년 전부터 거위들에게 먹이를 주는 일을 하고 있다”며 “5년 전쯤 이광형 총장이 그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거위 아빠를 물려받으라고 했고, 지금은 거위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다들 나를 먼저 찾는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국내에서 빛으로 신경세포를 조절하는 광유전학(光遺傳學, optogenetics) 연구 분야를 대표하는 석학이다. 광유전학 연구를 개척한 칼 다이서로스 미국 스탠퍼드대 생명공학·정신의학 교수는 매년 노벨상 후보에 거론되고 있다. 다이서로스 교수는 바다에 사는 녹조류에서 빛에 반응하는 옵신 단백질을 찾았다. 이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를 동물의 신경세포에 이식하면 빛 신호로 신경을 작동할 수 있다.

허 교수는 지난 2015년 기초과학연구원(IBS)과 함께 단백질의 활성을 조절하는 광유전학 도구인 ‘옵토스팀원(OptoSTIM1)’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허 교수는 “세포들에 빛을 주면 세포 간 신호가 활성화하면서 분열·이동 등 모든 세포 과정을 조절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허 교수는 이 공로를 인정받아 2017년 ‘이달의 과학기술인상’을 받았다. 작년에는 경암상과 KAIST 대표연구성과 10선에도 선정됐다.

허 교수는 광유전학 연구에 매진하다가 거위 아빠라고 나서게 된 것은 어릴 때 꿈 때문이었다고 소개했다. 그의 어릴 때 꿈은 동물을 기르는 일이었다. 농촌에서 나고 자란 덕분에 다양한 동물을 가까이 할 기회가 많았다. 허 교수는 농촌에서 구하기 힘든 금화조 같은 새를 데려와 기르기도 했다.

그는 “동물을 워낙 좋아해 고등학교도 농고 축산과를 나왔다”며 “고등학교 3년 동안 가금류를 키우는 연구생 생활을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가금류를 길러본 경험이 거위 아빠의 밑거름이 된 셈이다.

허 교수는 대학 진학을 결심하고는 진로를 바꿨다. 동물을 기르는 대신 경상대 농화학과로 진학해 생명과학을 공부했다. 경상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해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듀크대와 스탠퍼드대에서 박사후연구원 생활을 하고 2008년 KAIST 생명과학과 교수로 부임해 광유전학 분야를 개척하고 있다.

허 교수는 자신의 연구 분야와 거위를 기르는 일이 180도 다른 일만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는 “거위를 돌보다 보면 누가 자신에게 먹이를 주는지, 누가 자신을 위협하는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거위 무리 안에서도 소외 받는 친구가 있는데, 이렇게 무언가를 기억하고 외로움을 느끼고 하는 일련의 과정이 모두 내 연구 분야와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광유전학을 이용해 뇌의 신경세포를 활성화하거나 억제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실제로 생쥐의 뇌에 그가 개발한 옵토스팀원 기술로 빛을 쏜 결과, 새로운 신경세포가 생성되는 것을 확인했다.

허 교수는 “새로운 신경세포가 생성되면 손상된 신경 회로를 재생 수 있어 우울증, 파킨슨병 등을 고칠 수 있다”며 “기억을 관여하는 뇌 해마에 뉴런이 생기면 기억력도 좋아져 쥐가 똑똑해진다”고 말했다. 그는 “생명과학은 근본적으로 생명 현상을 이해하지 않으면 연구할 수 없는 분야”라며 “동물이나 생명에 대한 관심이 연구를 계속 할 수 있는 힘이 된다”고 말했다.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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