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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박지성 '1도의 가격'
서울 기온이 37.1도로 7월 상순 기온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8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일대를 한 시민이 양산을 쓰고 가고 있다. 서울(종로구 서울기상관측소 기준) 7월 상순 최고 기온은 1939년 7월 9일 36.8도를 기록한 후 86년 만에 최대치를 경신했다. 뉴스1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국가별 실행 계획을 담은 최초의 국제협약은 1997년 채택된 교토의정서이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국가별 온실가스 감축 목표 설정과 이행이 의무가 됐다. 배출권 거래제도도 이때 도입했다.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을 돕는 국제협력의 필요성도 강조됐다.

약 30년간에 걸친 이 국제적인 노력은 과연 어떤 결실을 거두고 있을까. 재생에너지 보급, 석탄화력발전소 폐쇄 등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다양한 노력과 이를 뒷받침하는 법제 등이 마련돼 왔다. 그 결과 많은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지만 지구온난화를 막기에 역부족인 것이 현실이다. 단적으로 교토의정서는 10년도 안 돼 한계에 부닥쳐 파리협정으로 대체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의 평균 기온은 여전히 상승하고 있다. 지구온난화를 막자며 행동에 나서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갈수록 절박해진다고 느끼는 건 기분 탓만은 아닐 것이다.

한국계 환경경제학자로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인 저자는 이 책에서 기후행동의 한 가지 접근법으로 "헤드라인을 장식할 정도의 재앙보다는 느린 연소, 즉 보이지 않는 비용에 중점을 두자"고 제안한다. 기후변화로 발생하는 미묘한 문제야말로 도달 범위가 더 넓고 불평등한 "중대한 도전 과제"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기후변화에 따른 대형 산불 증가에는 눈길이 가지만 이때 발생하는 연기 피해는 잘 모른다. 한 추정치에 따르면 미국 전역에서 극심한 연기에 노출된 사람들의 수가 지난 10년 동안 27배 증가했다. 매년 미국의 산불 사망자 숫자는 20~30명이지만 산불 연기로 2006년부터 2018년까지 주로 노년층에서 연간 5,000~1만5,000명의 추가 사망자가 발생했을 수 있다고 한다.

폭염이 이어지고 있는 9일 서울 종로구의 한 건물 외벽에 현재 기온이 표시되고 있다. 뉴스1


미국에서 평균 32.2도 이상인 날을 하루 더 겪고 약 15~21도대인 날을 하루 덜 겪는다면 그해에 대략 3,000명이 추가로 사망할 수 있다는 계산이 있다. 더위로 인한 전 세계 사망률이 금세기 말 10만 명당 연간 73명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추정도 나온다. 현재 세계 인구 기준으로 600만 명이다. 더워진 온도가 모든 암을 능가하는 대표적인 사망 원인이 될 수 있다.

이런 보이지 않는 피해를 수치로 정량화하는 것은 심각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미국에서 1인당 500달러 이상의 물적 피해를 초래하는 재해는 학생 한 명당 1,520달러 정도의 인적 자본 피해를 낳는다고 한다. 저자는 이처럼 데이터를 바탕으로 기후변화 대응에 나서면 "기후 충격에 빠르고 원활하게 적응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한다. 탄소의 사회적 비용(SCC) 산출도 마찬가지다.

알다시피 이런 재난은 지역별로 소득 수준별로 불균등하게 영향을 끼친다. 기온이 약 35도인 어느 날 사망자 수는 인도와 미국 사이에 10배 이상 차이가 날 수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기후 위험요소에 더 많이 노출되고 더 취약하다. 이런 피해가 또 소득 불평등을 더 강화한다.

저자가 "200년짜리 전 지구적 재난 가설보다는 당장 현재와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점점 더 더워질 세상 때문에 발생하는, 사소해 보이지만 누적되면 중요한 여러 도전 과제"에 집중하는 것은 입씨름만 이어지기 일쑤인 거대 과제보다 효과적으로 개입하기 수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만 책에서 거론하는 느린 연소의 사례와 대응 방식은 이미 많은 국가가 행정력을 동원해 적극 대처하고 있는 사안들이어서 그다지 새롭지 않다.

이 책의 관심사와는 별개로 기후변화 대응이 더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로 온난화 허구론에 경도된 이들의 발목 잡기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이런 신념을 가진 사람이 정치 지도자가 되는 것은 '느린 연소' 못지않게 재앙적일 수 있음을 지금 미국의 현실이 잘 보여주고 있다.

1도의 가격·박지성 지음·강유리 옮김·윌북 발행·408쪽·2만2,000원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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