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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크뉴스 › 조선의 ‘폭싹 속았수다?’…확 달라진 북한 드라마 [뒷北뉴스]

랭크뉴스 | 2025.07.12 07:46:07 |
조선중앙TV 드라마 ‘남자친구인 새봄’ 속 경미가 백학벌의 영덕의 전화를 받고 있다. [조선중앙TV 캡처]

"결혼이란 건 말이에요, 본인들이 좋아한다고 되는 게 아니죠. 처녀(경미) 쪽에서 먼저 돌아서 주세요." (영덕 어머니)

"이렇게 끝낼 순 없어. 내 가슴에 아픈 칼을 박자고 우리가 인연을 맺은 게 아니잖아. 내가 아버지 어머니 뜻을 꺾어놓을게." (영덕)

지난달 말 종영한 북한 조선중앙TV의 22부작 드라마, <백학벌의 새봄>의 대사들입니다. 등장인물인 농업연구사 '경미'와 검사 '영덕'은 4년 넘게 사귀고 있지만, 집안의 차이로 시어머니 반대에 부딪히는데요. 어디서 많이 본 장면 같지 않나요? 우리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속 시어머니 반대로 결혼에 애를 먹는 주인공들(금명, 영범) 상황을 떠올리게 합니다.

드라마 속에서 남녀 주인공이 데이트를 하면서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주는 모습 [조선중앙TV 캡처]

이 드라마는 조선중앙TV가 2년 만에 내놓은 최신작입니다. 농업 생산 성과가 부진한 ‘백학리’라는 곳에 새로 부임한 당비서가 낙후된 농촌을 변화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내용이지요. 북한에서는 꽤나 인기 몰이를 했나 봅니다. 북한의 대외선전용 월간지 금수강산 7월호는 지난 10일 "TV연속극 '백학벌의 새봄'은 지난 4월부터 TV로 방영돼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고 보도했습니다.

■ 앞치마 두르고 밥 차려주는 아빠

인기 비결은 뭐였을까요. 기존 북한 드라마와 정서·화법이 다른 게 이유 중 하나로 꼽힙니다. 대표적인 장면이 극중 앞치마를 두른 남성이 아내와 딸에게 밥을 차려주는 모습입니다. 가족들은 이런 일이 일상적이라는 듯 자연스럽게 받아들입니다. 가부장적 인식이 뿌리 깊은 북한에서 남성이 가사와 육아에 참여하는 가정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연출한 건 드문 일입니다.

드라마 속 남성이 꽃무늬 앞치마를 입고 아내와 딸에게 밥을 차려주고 있다 [조선중앙TV 캡처]

사랑과 이별 앞에서 괴로워하는 젊은 세대들의 감정을 과감하게 다뤘다는 점도 이색적입니다. 지금까지 북한 드라마는 '사랑해' 같은 애정 표현, 부부 사이의 포옹 장면 등은 많이 다루지 않았습니다. 주민 계몽과 체제 선전 목적이 강한 북한 예술 작품 특성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번 드라마는 청춘 남녀의 데이트 장면을 담아내고, 애정 표현에 적극적인 남성 등장인물을 앞세운다는 점에서 '파격'을 보여줍니다.

그런 이유로 남성 배우 최현이 제법 인기를 끄는 듯 합니다. 금수강산 7월호는 "최현 배우는 최근 영화들에 출연한 신인배우이지만 이번에는 또 다른 개성적인 모습으로 처녀들 속에서 호감을 불러일으켰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드라마에 등장해 큰 인기를 끈 북한의 남성 배우 최현 [조선중앙TV 캡처]

■ 2부로 쪼개 궁금증 유발하는 'OTT식' 편성도

드라마 속에선 북한의 여러 사회적 변화도 함께 엿볼 수 있습니다. 드론을 이용해 농사를 짓거나, 스마트폰을 등장인물 대부분 하나씩 갖고 있는 장면 등입니다. 현실적인 캐릭터도 두드러집니다. 청탁을 위해 간부 부인에게 뇌물을 주는 모습, 농촌으로 발령 난 남편을 따라 이사를 준비하면서도 아들은 도시에서 교육받길 원하는 아내 등 달라진 북한의 세태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촬영 기법과 편성 방식도 눈에 띄는데요. 엔딩 크레딧에는 '무인기 조종', '컴퓨터 기교'를 담당하는 제작자 자막이 소개됩니다. 또 매주 수요일 저녁 시간대에 방영하면서 드라마를 쭉 길게 내보내는 게 아니라, 미니시리즈 형태로 한 번에 2부작씩 편성했습니다. 다음화에 어떤 내용이 이어질 지 궁금해 하도록, 완급 조절하면서 시청자를 TV 앞에 끌어들이려는 시도로 보입니다.

드라마의 엔딩 크레딧. ‘컴퓨터 기교’와 ‘무인기 조종’ 담당자를 소개하고 있다 [조선중앙TV 캡처]

제작진과 출연진은 2023년 5월 황해남도 신천군의 백석농장에서 농장원들과 함께 일하며 촬영을 진행했다고 합니다. 거의 2년 동안 촬영과 편집에 공을 들인 나름의 '대작'이란 셈이지요. 이렇게 북한 당국이 드라마 제작에 진심인 이유는 뭘까요.

2000년대 초부터 이른바 장마당을 통해 다양한 한국 드라마를 접한 청년 세대를 통제하려는 의도도 깔린 것으로 분석됩니다. 북한 주민이 한국 문화를 접하는 걸 막기 위해, 2020년 제정한 '반동사상문화배격법'으로는 K-드라마 차단에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대중문화를 연구하는 전영선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는 이번 드라마에 대해 "청춘 남녀 로맨스 등 흥미를 끌어들이려고 하는 장치적 효과가 확실히 늘어났다"라면서 "북한의 기본적인 연기톤은 연극적인 톤인데, 생활적인 감정 연기, 자연스럽게 발화하는 연기톤을 보여주려 한 점도 주목할 부분"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앞으로의 북한 드라마가 "허용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고 대중적인 요소가 확장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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