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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억년 품은 붉은 비경, 자연이 빚은 초록 풍광, 달빛에 비친 순백 절경
| 백령·대청·소청 | 글·사진 김민수 여행작가

백령도 두무진


인천항 연안여객선 터미널 건너편, 백마식당에서 아침을 먹었다. 생선 두어 점에 나물, 김치가 고작이지만, 칼칼한 콩나물국 덕분에 공복의 메마른 속이 단단하게 채워졌다. 이토록 실속으로 똘똘 뭉친 백반의 가격은 겨우 4000원이다. 섬처럼 변함없는 주인아주머니의 수다를 배웅 삼아 대합실로 들어오니 웬걸 인산인해다. 평일임에도 여행객이 몰려든 까닭은 십중팔구 ‘인천 i-바다패스’ 때문이다. 섬 주민이나 인천 시민에게는 1500원, 타 시도민에게도 뱃삯의 70%나 깎아준다니, 시쳇말로 대박이다.

경계 위의 풍경 백령도

오전 8시30분 인천항을 떠난 쾌속선은 4시간이나 바다 위를 달려 백령도 용기포항에 도착했다. 백령도는 우리나라에서 8번째로 큰 도서이자, 가장 북쪽에 있는 유인도다. 연륙되지 않은 섬 중에는 제주도와 울릉도 다음이다.

백령도는 단지 멀기만 한 게 아니라 전략적으로도 민감한 위치에 놓여 있다. 군사 통제구역이 광범위하고 일몰 이후 해안 접근도 통제된다. 하지만 백령도의 진짜 매력은 그런 불편함 뒤에 가려진 압도적인 풍경과 그로 인해 고스란히 보존돼온 다채로운 생태에 있다. 당연히 떠나기 전에 숙소, 동선, 이동수단 등을 미리 계획해야 한다.

섬의 관문 용기포항에서 3㎞ 거리에 있는 진촌마을은 섬의 중심지다. 숙소와 식당가에 각종 생활편의 시설까지 모여있으니, 여행의 베이스로 딱이다. 숙소를 정하고 나니 마음이 급해졌다. 해안선 길이만 50㎞에 달하는 큰 섬이니만큼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2019년에는 두무진, 진촌리 현무암, 사곶해변, 콩돌해안, 용틀임바위가 국가지질공원으로 인증됐다. 이 때문에 백령도 여행의 테마는 지질탐방에 가깝고 동선은 그 스폿들을 따라 이어진다.

사곶해변


사곶해변은 폭 200m, 길이 3㎞의 광활한 면적을 자랑한다. 천연기념물 제391호로, 한국전쟁 때 실제로 이착륙을 했던 자연 비행장이기도 하다. 이곳의 모래는 규사 성분이다. 가늘고 섬세한 입자가 바람에 날리는 모습은 신비하기까지 하다. 사곶해변은 백령도에서는 유일한 해수욕장이다. 올해 개장 기간은 7월15일~8월14일 한 달간이다. 물론 오후 6시 이후에는 출입이 통제된다지만, 섬 주민이나 여행자들에게 최북단 섬 휴양지의 면모를 화려하게 뽐낼 예정이다. 데이캠핑도 가능하다니 구미가 당긴다.

콩돌해변은 작게는 손톱, 커봤자 밤톨만 한 자갈들의 집합소다. ‘차르르’ 돌 구르는 소리를 듣노라면 온갖 상념이 사라진다. 그럼에도 머문 시간이 짧았던 것은 사색의 기술과 인내력 부족 탓만은 아니다. 두무진에서 출발하는 유람선 출항 시간이 압박해왔기 때문이다.

두무진은 백령도를 상징하는 명소 중 명소다. 파도와 바람, 시간이 쌓아 만든 이 자연 조각들의 지질학적 연대는 무려 10억년, 국가 명승으로 지정됐을 정도의 비경을 자랑한다. 두무진은 가거도의 섬등반도(서편 해안 절벽 지형)와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해가 가장 늦게 지는 지역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 목표는 선셋이 아닌 물범이다.

해상관광유람선


해상관광유람선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바다 위, 또 다른 두무진의 풍경 사이로 사람들의 시선은 바삐 움직였다. 강렬한 윤슬 위로 솟아난 검은 물체, 자세히 보니 물범이다. 카메라에 담아 확대해도 겨우 모습만 알아볼 거리였지만, 첫 만남은 언제나 신기하고 귀하다. 백령도 물범은 정확히 말하면 ‘점박이물범(Phoca largha)’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서식이 확인된 참물범 종이다. 천연기념물 제331호이자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으로 지정된 해양 포유류이기도 하다. 백령도는 이들의 국내 최대 서식지로 해양수산부, 국립생태원 등의 모니터링 결과에 따르면, 개체 수가 200~300여마리로 알려져 있다.

백령도를 두루 살펴보려면 렌터카를 예약하거나 관광버스가 포함된 패키지여행이 유리하다. 경험 많은 현지 여행사가 숙소와 관광버스를 묶어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단체 여행객이라면 구미에 맞게 일정과 동선을 조절할 수도 있다. 섬 내에는 개인택시 7대가 운행되고 있으며 어촌 공영버스도 다닌다. 배차 간격이 다소 길지만, 주요 관광지 대부분을 지나므로 시간이 넉넉한 여행객이라면 참고해볼 만하다.

해안 지형의 스페셜 이슈 소청도

소청도 분바위


2023년 12월 푸른나래호가 취항했다. 하루 두 차례 백령, 대청, 소청을 순환하는 여객선 덕분에 세 섬은 하나의 여정으로 쏙 들어올 수 있게 됐다.

다음날 아침, 소청도로 향했다. 주어진 시간은 반나절이다. 소청도는 대청도의 5분의 1 크기에 불과하다. 그래서 여행은 대개 도보에 의존하게 된다. 답동포구에서 곧장 등대로 향했다. 거리는 2.5㎞, 능선 위로 이어진 탐방로는 오르막이지만, 걷는 내내 하늘과 바다가 트여있어 지루함이라곤 전혀 없다.

소청등대


소청등대는 팔미도 등대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세워졌다. 수수한 외관과는 달리 바다를 지켜온 역사만 100년을 훌쩍 넘긴다. 소청등대는 해발 80m 절벽 위에 자리하고 있다. 이 때문에 몇걸음만 옮기면 사방의 경관이 포위하듯 안겨온다. 특히 절벽 아래의 해식지형과 바다 건너 대청도의 장엄한 풍광이 압권이다.

등대에서 분바위로 가려면 왔던 길을 다시 돌아나가 동쪽 끝점까지 발품을 팔아야 한다. 분바위는 결정질 석회암 덩어리인데, 오래전에는 달빛이 반사된 바위를 보고 고깃배들이 길을 찾기도 했다. 그래서 ‘월띠’로도 불린다. 분바위 주변은 토종 홍합 밭으로 유명하지만 홍합은 겨울이 되어야 살이 올라 맛이 좋다. 대신 여름엔 미역, 가을에는 다시마가 제철이다. 주민들에 따르면 채취한 미역은 씻고 데쳐서 소분한 다음 냉동실에 보관한단다. 그러면 일 년 내내 맛있는 미역국을 먹을 수 있다고. 분바위 반대쪽에는 스트로마톨라이트가 분포해 있다. 일명 ‘굴딱지 암석’으로도 불리는 이것은 고대 미생물의 활동으로 형성된 생물 기원 퇴적구조다. 스트로마톨라이트는 지구 생명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지질 유산으로 파도와 햇빛 속에서 예술적 결을 드러낸다.

파도와 바람으로 빚어낸 섬 대청도

대청도 서풍받이


대청도에 내리자 기다렸다는 듯 반기는 사람들이 있다. 항상 느끼는 바지만 문화관광해설사들은 백령, 대청, 소청 여행을 더욱 빛나게 한다. 그들은 먼저 다가가 말을 건네고 안내를 자청하는 적극성을 지녔다. 대청도는 여행하기 참 좋은 섬이다. 버겁지 않은 크기에 오밀조밀 다채로운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청도에는 일주도로가 나 있다. 삼각산을 중심으로 그 자락 둘레를 둥글게 순환한다. 따라서 여행은 그 길을 따라 이동하며 그 주변을 탐방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대개 시계 반대 방향이다.

농여해변은 대청도에 갈 때마다 가장 먼저 들르게 되는 스폿이다. 여행에 대한 기대를 첫술에 만족시킬 만큼 빼어난 풍광을 지니고 있다. 퇴적과 풍화작용의 결정판 나이테바위, 연흔바위 그리고 물이 빠지면 자연스레 만들어지는 풀등도 이곳 해변의 솜씨다. 게다가 최근에는 주차장 내에 포토존과 배 조형물에 지질공원 탐방안내소까지 설치됐다. 여행객의 즐거움과 편의를 위한 시설이면서도, 자연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것에 미소가 지어졌다.

나이테바위


삼각산 중턱의 매바위 전망대에서 출발, 정상을 찍고 광난두로 내려와 서풍받이를 돌아나오는 7㎞ 코스를 삼각산의 ‘삼’, 서풍받이의 ‘서’를 따서 ‘삼서트레킹’이라 부른다. 하지만 일정상 이번에는 서풍받이 구간만 걷기로 했다. 서풍받이는 서해에서 불어오는 거센 바람과 파도를 막아주는 거대한 해식절벽이다. 들머리를 통과하면 길은 절벽 능선과 광난두해안으로 이어지는 데 1시간30분 정도면 충분한 코스다.

백령, 대청, 소청 여행은 각각 단독으로도, 아니면 한데 엮어서 할 수 있다. 넉넉한 일정이면 더욱 좋겠지만, 2박3일 정도라면 아쉬움 없이 돌아볼 수 있다. 세 섬은 식도락의 섬으로도 유명하다. 백령도에서는 메밀면 베이스에 까나리액젓으로 간을 하는 냉면을, 대청도에서는 삭히지 않은 홍어와 팔랭이회무침을 꼭 먹어보기를 권한다. 식당이 없는 소청도라면 민박집 밥상에서 제철 자연산 해산물을 즐길 수 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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