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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최재석 선임기자 = 정권 교체로 퇴임한 차관급 공무원 지인이 며칠 전 자신의 SNS에 이임사를 올렸다. 고위 공직자가 자신이 속한 조직 구성원들에게 한 이임의 변을 밖에 공개하는 일이 흔치는 않다. 그는 "오늘과 지난 31년을 마감하고 내일은 새로운 책의 첫 페이지를 담담하게 열어 보기 위해" 이임사를 올렸다고 했다. 오랜 공직 생활을 마감하는 심정이 남달랐을 것으로 짐작했다.

정부서울청사 전경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임사는 공직을 시작했을 때의 다짐과 공직을 끝냈을 때의 소회를 담담하게 담았다. 그는 "공직에 입문한 이후 사회변화에 기여하는 것이 꿈이었다"면서 "제가 공직에 있었던 것이 없었던 것보다는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었기만을 바라고 믿으며 마지막 날을 맞이했다"고 썼다. 그러면서 "간파한 것보다 간과한 것이 많았다는 것을 백이십여 계절을 지나 알게 된 부끄러움"과 공직을 일찍 떠나는 아쉬움이 있지만 공직 생활 전체를 보면 "내내 신나게 열심히 일해 온 것 같아 충만함과 기쁨으로 공직을 나간다"고 했다.

그는 좋은 인상을 준 공무원 중의 한명이다. 10여년 전 외국에서 몇 년간 각자의 일을 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수많은 공무원을 만나 부대끼고 다투고 했지만 그는 남다른 기억으로 남아 있다. 매사에 성실하고 겸손했고 사심이 없어 보였고, 무엇보다 일에 대한 열정과 자부심이 있었다. 언젠가 '최소한 재상은 될 인물이다'라는 생각을 속으로 한 적도 있다. 물론 내 경험이 단편적일 수 있다. 그는 내 평가를 증명이라도 하듯 여러 직분을 잘 수행해 직업 공무원으로는 최고봉까지 올랐다.

정부가 바뀌면 정무직 공무원들은 자리를 떠나지만 정권의 성패에 따라 그들의 마지막 공직 생활 평가도 달라진다. 탄핵당한 정부에서 공직을 마감하게 된 이들은 본인의 공과에 상관없이 박한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지인도 좀 더 영광스럽게 공직을 마무리할 기회가 날아가 버린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하지만 어찌 보면 별 탈 없이 공직을 마감하는 것에 감사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일부 공무원이 '적폐'로 몰려 전 정부에 대한 보복성 감사와 수사의 희생양이 된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가깝게는 윤석열 정부 때 그랬고 문재인 정부 때도 그랬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국무회의에서 "공무원들이 새로운 시도를 하려 할 때 감사 혹은 수사에 대한 부담이 있을 수 있다"며 "과감하게 일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공무원들이 차후 감사나 수사가 걱정돼 정책을 과감하게 추진하지 못하고 소극적인 행정으로 일관한다면 공직사회의 혁신은 기대할 수 없다. 그로 인한 손실과 피해는 국민이 감당해야 한다. 공무원의 정책적 판단에 대해 사후에 사법적 잣대를 들이대는 일은 신중해야 한다. 이번 정부부터라도 그러길 바란다.

헌법은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며 공무원에 대한 헌법적 지위를 규정한다. 아울러 공무원은 최초 임용 때 '헌법과 법령을 준수하고, 국가를 수호하며,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다짐한다. 국가가 특별한 지위를 부여한 것은 그 책임과 의무가 막중하기 때문이다. 공무원은 단순히 행정을 넘어 국민 삶과 직결된 중요한 문제를 다루는 국가의 중추적인 존재다. 지인 이임사는 "새 정부가 멋지게 국정운영을 해내고 그래서 국민의 삶이 점차 나아지리라고 믿는다"고 했다. 오랜 공직을 마감하는 다른 이들도 같은 심정일 것이다.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폭싹 속았수다(정말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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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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