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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린 매케나 '빅 치킨'

편집자주

인류의 활동이 지구환경을 좌지우지하는 새로운 지질시대인 ‘인류세’로 들어섰다는 주장이 나온 지 오래입니다. 이제라도 자연과 공존할 방법을 찾으려면 기후, 환경, 동물에 대해 알아야겠죠. 남종영 환경논픽션 작가가 4주마다 연재하는 ‘인류세의 독서법’이 길잡이가 돼 드립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우리나라 치킨 전문점 수는 2022년 기준 4만1,436곳으로 전 세계 맥도널드 매장 수 4만275곳보다 많다.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이 치킨들은 어디서 왔을까? 이렇게 비대한 가슴살을 안고, 그 가느다란 다리로 제대로 걷기나 했을까? 이 역작은 최초의 육계(고기용 닭) 탄생 이후 100년의 역사를 조망했다. 공장식 축산은 항생제를 먹고 자랐다. 어둡고 비좁은 농장의 닭뿐만 아니라 사료 생산부터 고기 가공까지 농장의 전후방 집합체인 닭고기 산업도 항생제라는 연료 없이는 지금처럼 비대해질 수 없었다.

항생제의 놀라운 '성장 촉진' 이야기는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 제약회사 연구원이 육계용 사료에 넣을 영양물질을 실험하던 중, 믿기 힘든 일이 벌어진다. 값비싼 간 추출물을 먹은 닭보다 오레오마이신을 만들고 남은 항생물질 찌꺼기가 들어간 사료를 먹은 닭의 몸무게가 훨씬 더 나갔던 것이다. 이 우연한 발견은 뉴욕타임스 1면에 실린다. 항생제는 날개 돋친 듯 팔렸고, 배합사료에 들어가는 필수 요소가 됐다. 동시에 품종 개량이 닭의 진화사를 뒤바꿔 놓았다. 미국 농무부가 1940년대 후반에 시행한 '내일의 닭' 경연대회는 다릿살 탱탱하고 가슴살 두꺼운 품종을 선택·교배함으로써, 오늘날 모든 공장 닭들의 조상을 만들었다. 1957년 도축되던 56일령 닭의 평균 몸무게는 905g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네 배가 넘는 4.2㎏에 이른다.

게티이미지뱅크


이렇게 닭의 경이로운 성장 속도의 원인은 두 가지, 바로 '항생제'와 '유전자 선택'이었다. 하지만 인간은 세균의 진화는 지배할 수 없었다. 2014년 영국 정부가 경제학자 짐 오닐에게 의뢰해 나온 보고서는 충격을 줬다. 연간 70만 명이 항생제 내성으로 인해 초과 사망하고 있으며, 2050년에는 그 수가 1,000만 명으로 불어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3.17초마다 한 명씩 죽는 꼴이다. 내성균의 확산은 현대 의학 자체를 마비시킬 수 있다. 외상 수술은 물론 장기 이식이나 항암 치료 등 감염 위험이 큰 의료 시술이 난관에 부딪힌다. 원인의 핵심은 닭이다. 닭고기 1㎏에 들어가는 항생제량이 소고기의 3.3배에 이른다.

다행히 선진국에서는 배합사료에 항생제를 섞어 파는 것을 금지했고, 우리나라도 2011년 이를 금지했다. 하지만 밀집식 환경에서는 병이 퍼지기 쉽고, 실내에 갇힌 닭들은 면역력이 낮다. 여전히 질병 예방을 위해 농장주들이 항생제를 임의로 투여하는 경우가 많다. 항생제 내성은 크게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빅 치킨·메린 매케나 지음·김홍옥 옮김·에코리브르 발행·512쪽·2만5,000원


이 지점에서 공장식 축산을 단죄하는 것으로 끝났다면, 이 책은 뻔한 윤리적 교과서가 됐을지 모른다. 저자는 현실적인 첫걸음으로 '닭 농장의 다양성'을 높이자며 여러 현장을 방문한다. 이를테면, 프랑스에서 '라벨 루즈' 등급을 받은 닭은 풀밭에서 벌레를 잡으며 항생제를 먹지 않고 느리게 자란다. 라벨 루즈 닭은 이미 프랑스에서 팔리는 닭의 60%를 차지한다. 어떤 곳에선 미래가 먼저 와 있다.

닭을 통해 항생제의 성장 촉진 효과가 발견됐고 항생제에 저항력을 지닌 세균이 생태계로 퍼져, 지금 우리는 항생제 내성이라는 '조용한 팬데믹'을 직면하고 있다. 토지와 물 이용, 쓰레기 처리, 자원 소비, 노동의 역할, 동물 권리 그리고 82억 인구의 식생활에 변화를 주어야 한다. 닭을 바꾸지 않으면 위험하다. 닭을 바꾸는 일은 세계를 바꾸는 일이다.

남종영 카이스트 인류세연구센터 객원연구원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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