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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정완 논설위원
그야말로 ‘내로남불’이다. 최근 이진숙 교육부 장관 후보자의 논문 표절 의혹을 지켜보며 떠오른 말이다. 한번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자. 이 후보자 대신에 윤석열 전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에게 비슷한 문제가 불거졌다면 어떻게 됐을까.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반응은 안 봐도 눈에 선하다. 아마 ‘벌떼처럼’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맹공격을 퍼부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후보자에겐 어떤가. 놀라울 정도로 조용하게 침묵을 지키고 있다. 물밑에서 자기들끼리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겉으로 드러난 모습은 지극히 실망스럽다.

물론 국민의힘 의원들도 잘한 건 없다. 김 여사의 표절 의혹에는 아무 말도 못 하거나 오히려 옹호하다가 이 후보자의 표절 의혹에는 날카로운 검증을 요구하고 나섰다. 남의 연구 성과를 마치 제 것처럼 베껴 쓰는 표절은 명백한 지식 도둑질이다. 그게 누구라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교육자이고 학자라면 더없이 부끄러운 일이다.

김건희 여사 표절엔 난리쳤다가
이진숙 후보자 표절 논란엔 침묵
‘우리 편 봐주기’ 부끄럽지도 않나

김 여사의 숙명여대 석사학위 논문은 결국 공식적으로 표절 판정을 받고 학위도 취소됐다. 지난달 숙명여대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를 거쳐 교육대학원위원회가 내린 결론이다. 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2021년 12월 언론에서 표절 의혹을 제기한 지 3년 6개월 만이다.

이게 이렇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일이었나. 해당 논문(‘파울 클레의 회화의 특성에 관한 연구’)은 관련 서적(로즈메리 램버트의 『20세기 미술사』)을 대놓고 베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똑같았다. 하지만 숙명여대는 즉시 심사하지 않고 시간을 끌었다. 최종 결론이 나온 건 지난달 대선에서 민주당으로 정권교체가 이뤄진 뒤였다. 정치권력에 대한 대학의 눈치보기가 아니라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숙명여대 동문들이 대학 홈페이지 게시글에서 “우리 숙대가 그렇게 무능한가”라고 한탄할 만하다. 특정 대학을 넘어 대한민국 학계 전체에 부끄러운 기록을 남겼다.

이 후보자의 논문에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똑같은 잣대를 적용하면 된다. 이 후보자의 논문과 제자의 논문을 비교해 보면 ‘복붙’(복사+붙여넣기)이란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이 후보자가 제자의 연구 성과를 부당하게 가져다 쓴 게 사실이라면 표절 판정을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만일 그게 아니라면 이 후보자가 충분히 납득할 만한 해명을 내놓아야 한다. 제자의 논문에선 ‘10m 정도’라고 쓴 부분을 이 후보자의 논문에선 ‘10m wjd도’라고 오타를 낸 대목에선 그저 쓴웃음이 나온다.

국회 교육위원회는 오는 16일 이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열 계획이다. 아무리 민주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했어도 청문회가 통과의례의 요식행위로 그쳐선 안 된다. 표절 의혹을 포함해 국무위원으로서 자격과 도덕성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이뤄져야 한다. 민주당 의원들은 국민의 눈높이에서 상식에 맞는 판단을 하길 바란다. 이 후보자 문제를 어물쩍 넘어가려 해선 안 된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의 배우자 농지법 위반 의혹도 심각한 문제다. 우리 헌법 121조는 실제 농사를 짓는 사람이 농지를 소유해야 한다는 경자유전의 원칙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런 헌법 정신에 따라 농지법 6조는 ‘농지는 자기의 농업경영에 이용하거나 이용할 자가 아니면 소유하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일부 예외 조항은 있지만 정 후보자의 남편이 법이 정한 농지 소유 자격에 해당하는지는 의문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정 후보자의 남편이 인천에서 의사로 근무하면서 강원도 평창을 오가며 농사를 지었다는 것부터 이해가 잘 안 된다. 만일 실제로 농사를 지은 게 맞는다면 관련 근거를 제시하고 검증을 받으면 될 일이다. 해당 농지에서 정부 보조금인 농업 직불금을 다른 사람이 받아갔다는 것도 미스터리다. 정 후보자의 남편이 농사를 지은 게 사실이라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누군가 정부 보조금을 부당하게 받아갔다면 당연히 법에 따른 처벌을 받아야 한다.

2021년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의 부친 농지법 위반 의혹이 불거졌을 때를 돌이켜보자. 당시 민주당 의원들은 “아버지가 부동산 투기를 한 것을 몰랐다고 해도 그 혜택은 본인이 볼 것 아니냐”고 질타했다. 결국 윤 의원은 책임을 지고 스스로 의원직에서 물러났다. 정 후보자에게도 4년 전과 같은 잣대를 적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민주당 의원들이 윤 전 의원에게 한 말에서 ‘아버지’를 ‘남편’으로만 바꾸면 된다. 그렇지 않고 우리 편은 봐주고 반대편에는 난리를 치는 식의 이중잣대로는 ‘삼류 정치’를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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