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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냥 뒷조사 전담팀

편집자주

시민들이 안타까워하며 무사 구조를 기원하던 TV 속 사연 깊은 멍냥이들.
구조 과정이 공개되고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지금은 잘 지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새로운 가족을 만났다면 어떤 반려생활을 하고 있는지,
보호자와 어떤 만남을 갖게 됐는지, 혹시 아픈 곳은 없는지..
입양을 가지 못하고 아직 보호소에만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새 가족을 만날 기회를 마련해 줄 수는 없을지..

동물을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이라면 당연히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며 궁금해할 것 같습니다.
궁금한 마음을 품었지만 직접 알아볼 수는 없었던 그 궁금증, 동그람이가 직접 찾아가 물어봤습니다.
경기 파주시에 위치한 동물자유연대 고양이 보호소 '온캣'에서 보호받고 있는 고양이 '밀레'의 모습. 밀레는 길고양이 시절 일가족이 들개 무리의 공격을 받은 적이 있다. 동그람이 정진욱


동물 세상에도 가해와 피해라는 개념이 존재할까요? 정해진 규칙도, 보호해 줄 사람도 없는 야생에서 동물은 어떻게 스스로를 지켜야 할까요? 결국 극단적인 상황에 몰린다면 다른 동물을 공격해야 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지난해 6월 만났던 '평화'가 그랬습니다. 평화는 지난 2022년 부산의 한 공단에서 다른 들개들과 떠돌며 공장에 숨은 길고양이 가족을 공격한 뒤 포획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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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hankookilbo.com/News/Read/A2024090317170004252)

방송에 비친 평화는 그저 포악한 들개 무리 중 하나였지만, 우리의 눈에는 그저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길거리에서 살아남기에 급급한 생명이었습니다. 실제로 투쟁이 사라진 보호소에서, 평화는 그저 고요함을 원하는 '덩치만 큰 겁쟁이'였죠.

생존이 절실한 건 평화의 반대편에서 일가족이 공격을 당했던 고양이 ‘밀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누군가는 공격을 가했고 누구는 공격을 당했지만 모두 지켜야 할 생명이었기에, 동물자유연대는 이들을 모두 2년 넘게 보호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5월14일은 경기 파주시 동물자유연대 '온캣'에서 지내는 밀레를 만나는 날이었습니다. 밀레를 만나기 하루 전, 잠시 만난 평화를 쓰다듬으며, 밀레는 3년 전 어둠 속의 공포에서 얼마나 벗어났을지 궁금했습니다.

밀레를 만나기 하루 전인 5월13일, 경기 남양주시에 위치한 동물자유연대 '온센터'에서 다시 만난 '평화'. 평화는 밀레의 고양이 가족을 공격했던 들개 무리에 속해 있다가 구조된 바 있다. 동그람이 정진욱


"다가오지 마!" 매콤한 솜방망이를 피할 순 없었다



살금살금, 최대한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으려 했지만 노력은 허사로 돌아갔습니다. 숨숨집 안에서 편하게 쉬고 있던 밀레는 더 깊이 몸을 움츠렸습니다.

혹시 인사를 건네면 낯선 존재에 호기심을 보이지 않을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보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저리 가!‘라는 아주 명확한 의사 표현, 솜방망이였습니다.

지난 5월14일 경기 파주시 동물자유연대 '온캣'에서 만난 '밀레'의 모습. 낯선 카메라를 향해 솜방망이를 휘두르고 있다. 동그람이 정진욱


밀레는 웬만해서는 처음 본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지 않아요.
그나마 밥을 챙겨주는 활동가를 보면 도망가지 않는 정도죠.이해민, 동물자유연대 온캣 선임활동가

사전에 쉽지 않으리란 말은 들었지만, 막상 마주하고 나니 막막했습니다. 결국 방법은 하나뿐이었습니다. 고양이를 촬영할 때마다 해왔던 익숙한 방법. 카메라를 두고 사람은 자리를 비워주기로 했습니다.

한 30분쯤 숨죽이고 기다렸을까. 고요해진 묘사의 공기 사이로 밀레가 살금살금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밀레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후다닥 복도에 마련된 캣타워로 올라갔습니다. 그나마도 캣타워 벽에 몸을 숨겨 카메라에 잘 담기지도 않았습니다.

밀레는 긴 시간 숨어있다가 인기척이 없는 걸 눈치채고 묘사 복도로 나와 캣타워 위로 올라갔다. 동그람이 정진욱


어쩌면 평화처럼, 밀레 역시 어둠을 빠져나오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아 보였습니다.

버팀목인 어미마저 떠났지만, 곁을 함께해 준 동족들

그나마 이건 조금 나아진 정도예요. 이해민, 동물자유연대 온캣 선임활동가

밀레가 좀처럼 낯선 사람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하소연(?)하자 돌아온 대답이었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이 활동가는 밀레가 온캣에 입주하던 3년 전을 떠올렸습니다.

밀레는 지난 2022년, 부산 공단에서 어미 '카모'(위)와 함께 구조된 뒤 보호소에서 지내왔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당시 현장에서 어미 ‘카모’와 함께 살아남은 밀레는 구조 직후 보호소에 들어왔습니다. 보호소에 들어온 순간 밀레와 카모가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묘사에 마련된 캣타워 꼭대기. 그곳은 누가 오더라도 알아차릴 수 있고, 언제든 솜방망이로 대응을 할 수 있는 대피처였습니다.

웬만하면 캣타워 꼭대기에서 내려오지 않던 밀레가 내려올 때는 단 하나. 숨숨집에 몸을 누이려 할 때였습니다. 이때의 밀레는 도무지 다가갈 수 없는 고양이였다고 해요.

숨숨집이든 이동장이든 밀레가 들어갔을 때 진정을 시키겠다고 O르같은 짜먹는 간식을 줘도 무조건 앞발로 때리며 거부했어요. 그 덕에 이동장과 숨숨집 내부에 모두 간식이 튀어서 범벅이 될 정도였죠. 이해민, 동물자유연대 온캣 선임활동가
밀레는 사람을 경계하는 행동을 보이고 있다. 사진 촬영조차도 쉽게 허락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동그람이 정진욱


제아무리 사람을 경계하는 고양이여도 받아먹는다는 간식조차 통하지 않았다니, 긴장감이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도 안 되는데요. 그나마 오랫동안 내버려 두자 밀레는 누구도 자신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걸 천천히 알아갔고, 긴장을 풀고 편하게 묘사에서 잠을 청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러던 밀레에게 또 다른 시련이 닥쳤습니다. 바로 어미 '카모'가 입양을 가게 된 겁니다. 생사를 함께 넘나든 어미가 갑자기 곁을 떠나자, 밀레는 한동안 혼란스러워했다고 해요. 하루 종일 캣타워 위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자리를 비운 카모를 기다린 듯하는 행동을 보였다고 하죠.

이 허전함을 채워준 것은 바로 주변의 고양이들이었다고 합니다. 원래 밀레의 묘사에서 함께 지내는 고양이들은 다소 개인주의 성향이 강했는데, 거처를 옮겨주자 밀레를 챙겨주는 고양이 '축복이'가 나타난 겁니다.

축복이가 먼저 밀레를 돌봐주기 시작하자, 다른 고양이들도 밀레에게 다가왔습니다. 다행히 성격이 맞았는지, 밀레도 다른 고양이들의 묘사에 들어가 숨숨집에서 함께 지내기까지 했죠. 그러면서 밀레는 고양이들끼리의 사회성부터 차근차근 키워가고 있습니다.

카모가 입양간 뒤, 밀레(가운데)는 다른 고양이 친구들이 곁을 지켜주면서 사회성을 키우고 있다. 동그람이 정진욱


그렇다면, 언젠가 밀레도 사람과 함께 반갑게 인사하고, 누군가의 반려묘로 지낼 기회가 올 수 있을까요? 이 활동가는 "충분히 가능하다"라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밀레가 겉으로는 사람에게 거칠게 대하지만, 실제로는 아기 같은 마음을 갖고 있어요. 취재하실 때도 솜방망이만 휘두르고 뒷걸음질 치는 모습을 보셨잖아요. 그런 성격과 3년간 변화하는 모습을 봤을 때, 앞으로 충분히 더 마음을 열 수 있어요.
만일 밀레의 입양을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면 밀레만의 시간을 존중해 주면서 천천히 기다려 주세요. 먼저 다가가지 않아도 밀레는 조금씩 손을 내밀어 줄 친구예요.이해민, 동물자유연대 온캣 선임활동가

도심 속 야생에서 생명을 건져 보호소에 온 밀레에게, 부디 두 번째 묘생을 열어줄 가족이 나타나 주기를 바라봅니다.

정진욱 동그람이 에디터 [email protected]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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