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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기사들 과다노동 압박 호소
게티이미지뱅크

“옥상이나 베란다에서 실외기 수리하다 보면 어질어질합니다.”

광주광역시에서 엘지(LG)전자 가전제품 수리기사로 일하는 ㄱ씨는 폭염을 맞아 에어컨·냉장고 서비스 수요가 폭증하면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아침 8시30분 출근해 저녁 8~9시 퇴근한다. 그는 “하루에 물을 2리터 이상 마시고 있다”고 했다. 경남에서 일하는 또 다른 엘지전자 서비스 노동자 ㄴ씨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ㄴ씨는 “그늘 없는 옥상에서 30~40분 동안 냉매 가스 작업을 하다 갑자기 어지러워져 아찔했다”고 말했다. 평소 안 먹던 약을 먹으며 폭염에 맞서고 있단다.

엘지전자 서비스 노동자들은 몸 상태가 안 좋아 하루쯤 연장근로 없이 퇴근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엘지전자가 노동자들에게 주 50시간 이상 근무를 사실상 강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10일 한겨레가 입수한 엘지전자의 ‘성수기 근로시간 가이드’(이하 문건)를 보면, 엘지전자는 6~8월 매달 고용노동부에 특별연장근로 인가를 받은 뒤, 서비스 노동자에게 주 50~60시간 동안 근무하도록 하고 있다. 문건에는 “주 최소 50시간 이상 근로 실시(특별연장근로 미동의자 포함)”, “특별한 사유 없이 연장근로 미실시 인원 근무명령서 발부 예정”이라고 적혀 있다. 건강상 문제가 있는 경우에는 연장근로를 제외한다고 돼 있지만, ‘2차 병원 진단서’ 제출이란 전제를 달았다. 김용도 전국금속노동조합 엘지전자지회장은 “고혈압·당뇨 등의 약을 처방받는 병의원 소견서는 받아주지 않는다. 회사는 2차 병원 진단서를 고집한다”고 말했다.

노동자들은 이를 ‘협박’이라고 느낀다. 실제 지난해 주 50시간을 채우지 않았다는 이유로 발부된 근무명령서가 누적돼 ‘경고장’을 받은 노동자도 있다. ㄴ씨는 “(회사가 요구한) 시간을 못 채우면 근무명령서가 발부되고 징계까지 받을 수 있다. 하기 싫어도 연장근로를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회사 쪽은 시간당 서비스 건수를 따지는 ‘생산성 평가’를 할 땐 ‘실근로시간’이 아니라 ‘주 40시간’을 적용하고 있다. 생산성 평가는 임금과 진급에도 영향을 준다. 이에 일부 노동자들은 회사의 ‘옥외작업 시행 금지 방침’(볕이 뜨거운 오후 2~5시엔 옥상 등 옥외에서 작업을 하지 말라는 방침)에도 서비스 건수를 늘리려 작업을 한다. 생산성 평가도 연장근로를 유도하고 있다는 뜻이다.

노조는 회사의 이런 조처가 노동자의 ‘연장근로 합의권’을 무력화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근로기준법은 연장근로의 전제조건으로 ‘당사자와의 합의’를 제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 회사 쪽은 노동자들이 입사할 당시 서명한 근로계약서에 “회사의 사정상 긴급하게 부득이한 경우에는 시간외근무·야간근무를 명할 수 있으며, 직원은 이에 동의하기로 한다”고 적혀 있다는 점을 들어, “주 52시간 이내에서 연장근로 근무명령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서범진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입사할 때 포괄적으로 연장근로에 동의했다 해도, 노동자에게 철회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연장근로 강제를 놓고 노사 간 공방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8월 금속노조는 ‘연장근로 강제 중단’을 요구하고 회사 쪽은 “연장근로 미참여 분위기 조장”이라고 맞섰다. 당시 엘지전자는 금속노조에 보낸 공문을 통해 “근무명령서는 정당성 없는 연장근로 거부 내지 미참여가 성실히 근무하는 다른 서비스 노동자에게 추가적인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한 회사 쪽의 배려 조처”라고 주장했다.

현장 노동자들은 연장근로 강제가 아니라 인력 충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엘지전자는 2019년 협력업체 소속 서비스 인력 3900명을 직접 고용했지만, 이후 정년퇴직·희망퇴직 등으로 인해 현재 서비스 인력은 3100명대 수준으로 줄었다. 이규철 금속노조 서울지부 조직국장은 “엘지전자가 인력은 줄이고 특별연장근로 인가까지 받아가며 연장근로를 강요하고 있다”고 말했다.

엘지전자 쪽은 “전체 인력이 준 것은 사실이지만, 출장수리 인력은 3년간 200여명 늘었다”며 “정규 직원의 근로시간이 지나치게 늘지 않도록 한시 인력을 활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구성원들에게 필요한 경우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희망하는 노동자에 대한 건강검진은 특별연장근로 인가 사업주에 부과되는 근로기준법상 의무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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