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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첫 성별 구분 선행 범죄 피해 통계 발표
한국여성의전화가 지난해 11월25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을 맞아 여성 살해 규탄하는 ‘192켤레의 멈춘 신발’ 행위극을 진행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email protected]

#. 지난달 19일 60대 여성 ㄱ씨는 인천 부평구 자신이 살던 집 현관에서 남편에게 살해됐다. ㄱ씨는 남편의 가정폭력을 견디다 못해 경찰에 신고하고 법원으로부터 접근금지 6개월 명령을 받았지만, 이 기간이 끝난 지 일주일 만에 목숨을 잃은 것이다. 이날은 ㄱ씨가 추가 안전 조처를 경찰과 상담하기로 한 날이기도 했다.

#. 지난 5월12일 30대 여성 ㄴ씨는 경기도 화성 동탄에서 전 연인에게 살해됐다. ㄴ씨는 경찰에 9번이나 신고하는 등 수차례 도움을 요청했지만 소용없었다. 지인이 마련해준 거처에서 숨어지내다가 가해자에게 발각돼 납치된 뒤 결국 목숨을 잃었다.
지난해 여성 살인(미수 포함) 피해자 10명 가운데 3명가량이 범행 전 살인 가해자로부터 가정폭력·교제폭력·스토킹 같은 이른바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IPV: Intimate partner violence) 피해가 있었다는 경찰 통계가 처음 나왔다. 상당수 여성이 ㄱ씨나 ㄴ씨처럼 전·현 배우자나 연인 등 가장 가까웠던 사람에게 살인이란 극단적 범죄를 당하기 전에 ‘여성폭력’이 선행됐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10일 경찰청이 발간한 ‘2024 사회적 약자 보호 주요 경찰 활동’ 보고를 보면, 지난해 살인범죄(미수 포함) 여성 피해자 총 333명 가운데 ‘여성폭력’ 피해 이력이 있는 경우는 108명(32.4%)이다. 여성폭력의 세부 유형은 가정폭력 피해가 60건(55.6%)으로 가장 많았고, 교제폭력 34건(31.5%), 스토킹 12건(11.1%), 성폭력 2건(1.9%) 등이 뒤를 이었다. 남성 살인 피해자(435명)의 경우 과거 가정폭력·교제폭력 등의 경험이 있는 경우가 42명으로 9.7%에 머물렀다. 살인에 앞서 ‘친밀한 관계 폭력’을 겪었던 여성 비율이 남성보다 3배 이상 높았다. 2023년에도 여성 살인 피해 사건 중 여성폭력 피해 이력 비율이 34.4%로, 남성(8.2%)보다 많았다.

경찰이 친밀한 관계에서 벌어진 폭력이 살인 사건으로 이어진 통계를 분석하기 시작한 것은 2023년부터다. 많은 여성이 전·현 배우자나 연인으로부터 폭력을 겪다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하는데도 정부 차원의 통계가 존재하지 않아 대응책 마련에 한계가 크다는 지적이 잇따랐기 때문이다. 경찰은 2023년 1월부터 모든 살인(미수 포함) 사건과 관련해 피해자·가해자 사이에 과거 가정폭력·교제폭력·스토킹·성폭력 등으로 신고가 있거나 입건·처벌 받은 이력이 있는지 기입하도록 했다. 지난해 살인 전에 친밀한 관계 내 폭력이 있었는지를 분석한 데 이어, 이번에 처음으로 피해자 성별을 나눠 실태를 확인했다.

이번 경찰 보고의 2023~2024년 살인 전 친밀한 관계 내 폭력 발생 현황 및 피해자 성별을 교차한 분석 결과를 보면, 가정폭력이나 교제폭력·스토킹·성폭력 등 전·현 배우자나 연인같이 ‘친밀한 관계’에서 주로 발생하는 범죄가 살인(미수 포함)까지 이어진 사례가 여성에게 쏠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란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여성 살인의 30% 이상에서 ‘친밀한 관계 폭력’이 선행됐다는 것은 ‘여성폭력’이 사회·구조적 폭력의 일환일 뿐만 아니라, 심각한 범죄로 이어지기 쉽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여성폭력에 대해 수사기관이 초기 대응 과정에서 범죄의 심각성을 깊이 인지하는 등 정책적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친밀한 관계에서의 여성폭력’ 규모를 제대로 파악해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려면 향후 통계 분석이 좀 더 정교해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선혜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살인 혐의는 죽이려는 ‘고의’를 갖고 있었는지를 기준으로 협소하게 분류돼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 의한 여성 살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기 어렵다”며 “여성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중요하게 포착되는 게 상해나 폭행인 만큼, 이런 사건도 함께 분석돼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의전화는 2009년부터 해마다 언론에 보도된 친밀한 관계의 남성으로부터 살해당하거나 당할 뻔한 여성 피해자 수를 취합해 발표하는데, 지난해 모두 555명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경찰이 살인(미수 포함) 사건에 국한해 파악한 108명과는 격차가 크다. 최 사무처장은 또한 “과거 여성폭력 이력이 없는 70%가량 사건에 대해서도 살인 피의자와의 관계는 어땠는지 등 추가 분석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경찰청 관계자는 한겨레에 “이번 통계로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한 폭력이 살인이라는 강력범죄로 발전하며 특히 사회적 약자인 여성이 취약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며 “더 실효성 있는 대응책 마련을 위해 여성 살인 피해자 중 ‘여성폭력’ 이력이 존재하는 사건에서 경찰 대응이 어땠는지 등 추가로 심층 조사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범죄 세부 유형이나 성별로 구분되지 않는 교제폭력 등 친밀한 관계 내 범죄에 대해 국가 차원의 공식 통계를 마련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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