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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종로구 돈의동쪽방촌 골목길에서 쿨링포그가 작동하고 있다. 신혜연 기자.
연일 체감온도 35도를 넘기는 찜통더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쪽방촌·비닐하우스 등에 거주하는 주거 취약계층들의 어려움도 커지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쿨링포그나 무더위쉼터를 설치하는 등 폭염 대책 방안을 내놓고 있지만 더위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10일 오후 1시쯤 찾은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엔 푹푹 찌는 열기로 가득했다. 길 곳곳에 배치된 쿨링포그에서 물방울이 연기처럼 뿜어져 나왔지만, 물방울조차 뜨거운 김으로 느껴졌다. 주민들은 민소매에 반바지 차림으로 그늘에 앉아 있었다.

쪽방촌에서 20년간 살았다는 이홍근(76)씨는 “선풍기는 어차피 더운 바람만 나와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 김용수(80)씨는 “사는 고시원 복도에 정부에서 에어컨을 달아줬는데 낮에는 사람들이 들락날락해야 해서 켜지 못하고 밤에만 켤 수 있다”며 “폭염 때문에 몸이 안 좋아 좁은 방에서 한 발자국도 못 나오는 어르신들도 많다”고 했다.

서울 영등포 쪽방촌 주민들이 길가 그늘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다. 신혜연 기자.
같은 날 영등포 쪽방촌 풍경도 비슷했다. 주민들은 뜨거운 햇볕을 피해 그늘에 자리를 잡았다. 골목길에 에어포그가 촘촘히 설치됐지만 공기는 눅눅했다. 2008년부터 영등포 쪽방촌에서 거주하고 있다는 송기홍(55)씨는 “방에 에어컨이 없다 보니 밤에는 샤워한 뒤 속옷만 입고 방문을 열고 잔다”며 “창문이 없어 문이라도 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쪽방촌 입구에는 웃통을 젖히고 그늘진 바닥에 누워 낮잠을 자는 주민도 보였다. 또 다른 주민인 전모(59)씨는 “월세 25만원에 운 좋게 에어컨 있는 방을 얻어서 낮에는 밖에 거의 나오지 않는다”며 “정부에서 전기세를 지원해주는 데도 집주인들이 에어컨 설치를 꺼려서 에어컨 있는 방 구하기가 어렵다”고 전했다.

10일 오전 11시쯤 방문한 과천시 과천동 꿀벌마을 거주민 최모(63)씨의 비닐하우스안. 지난 3월 화재 피해 이후 급하게 두른 비닐 한겹을 뚫고 뜨거운 햇볕이 들어오고 있다. 오소영 기자

비닐하우스로 이루어진 과천시 꿀벌마을의 상황도 비슷했다. 이곳에서 10년 동안 거주했던 최모(63)씨의 집 내부는 외부 온도인 34도보다도 높았다. 엉성한 샌드위치 패널을 뚫고 들어온 햇살로 공기가 달궈져 마치 온실처럼 느껴졌다. 지난 3월 화재로 계량기와 전선이 타버리는 바람에 새로 산 에어컨도, 냉장고도 무용지물이다. 최씨는 “불이 난 직후에 비가 와서 세간살이를 급하게 지키려다 보니 비닐을 한 겹밖에 못 덮었다”며 “몇 겹 더 씌우면 실내온도가 2~3도는 내려가는데 100만원 이상 필요해 시도를 못했다”고 했다. 간밤에 마을회관에서 떠온 찬물에 담가 둔 음료는 아침이 되니 미지근해졌다고 한다. 최씨는 손바닥 크기도 안 되는 작은 미니 손선풍기에 의지해 더위를 식히려 했다. 그는 “더위에 하루에도 서너번씩 잠에서 깬다”며 “어젠 지인 집에서 자고 왔는데, 떠돌아다니며 자야 하는 신세가 서럽다”며 눈물지었다.

10일 오전 11시쯤 방문한 과천시 과천동 꿀벌마을 거주민 최모(63)씨 댁 두꺼비집. 전기가 끊겨 작동이 안되고 있다. 오소영 기자
전기가 완전히 끊긴 건 네 세대뿐이지만, 다른 세대도 폭염의 영향을 피해가진 못했다. 꿀벌마을 비닐하우스촌은 대부분 샌드위치 패널로 지어져 열을 가두는 데다 주민들은 전기료 등이 부담돼 에어컨을 마음껏 틀기 어렵기 때문이다. 꿀벌마을 주민자치회장 조도원(63)씨는 “다들 지인 집에서 자거나 4호선 경마공원역에서 땀을 식힌다”며 “한 계량기에서 나오는 전기를 6~7세대가 나눠 써 출력이 부족한 데다 누진세가 부담돼 잘 틀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전날 하루 사이에만 마을 전체에 전기가 10번 정도 끊겼다고 한다. 꿀벌마을에는 현재 450여세대에 700여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질병관리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 5월 15일부터 이달 8일까지 집계된 온열질환자는 총 1228명, 사망자는 8명이다. 전문가들은 폭염 상황에서 주거취약계층의 건강에 더욱 유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강재현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비닐하우스와 판자촌은 열을 받으면 실내 온도가 외부보다 더 올라가는 공간”이라며 “에어컨을 틀지 않으면 장기간 머물 경우 심각한 온열질환에 노출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고령자들은 갈증이나 더위를 실제보다 덜 느끼고 체온 조절 기능도 떨어진다”며 “공공쉼터 등을 이용해 주거지에 머무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폭염 대책에서 나아가 주거 요건을 개선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제갈현숙 한신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폭염과 혹한으로 1년 중 취약계층이 주거 위기를 맞는 시기가 더욱 길어지고 있다”며 “쉼터 마련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취약계층이 부담스러워하지 않을 정도의 가격대가 형성된 공공주택을 공급하는 게 필수적이다”고 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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