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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이르면 이달 말 발표할 올해 세법개정안에 상속세 개편 방안을 포함하지 않기로 했다. 10일 국정기획위원회 핵심 관계자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상속세는 쟁점이 많고, 제도를 완전히 바꾸는 거라 연구 용역 등 준비 작업이 필요하다”며 “장기 과제로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세법개정안에선 제외한다는 취지로, 이럴 경우 내년 시행은 어려워질 전망이다.

1997년 이후 상속세 공제액이 묶인 상황에서, 집값 상승 등 경제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낡은 세제라는 비판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피상속인 35만8979명 중 상속세 과세 대상자는 2만1193명이다. 상속세 대상자는 2020년 처음 1만명을 넘어서 ▶2021년 1만2749명 ▶2022년 1만5760명 ▶2023년 1만9944명으로 가파르게 증가한 뒤 4년 만에 두 배 수준으로 늘었다. 전체 피상속인 중 실제 상속세를 내는 과세자 비율도 급증했다. 2024년 5.9%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던 2023년(6.8%)보다는 감소했지만, 10년 전인 2014년(2.6%)과 비교하면 차이가 확연하다. 상속세 공제액은 약 30년간 그대로인데, 자산 가격과 물가는 큰 폭으로 오르면서 상속세를 내야 하는 사람이 과거보다 훨씬 많아졌다는 의미다. 상속세가 중산층의 세금으로 변질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경기도 성남시 청계산 매바위에서 바라본 서울 서초구·강남구와 한강 이북 아파트 단지. 연합뉴스

이 때문에 당초 더불어민주당은 현행 5억원씩인 상속세 일괄공제와 배우자공제 한도를 각각 8억원, 10억원으로 상향하려 했다. 실제 지난 2월 대선 레이스 초반 상속세 완화가 화두가 됐을 때,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세금 때문에 집 팔고 떠나지 않고 가족의 정이 서린 그 집에 살 수 있게 하겠다”고 했다. 당시 이 발언은 중도층을 겨냥한 ‘우클릭’ 정책의 시작점으로 평가받았다. 이후 이 대통령은 “2023년 서울에서 갑자기 상속세 납부 대상자가 (이전보다) 15%가량 늘었다”고 배경을 언급했고, 국민의힘이 ‘배우자 상속세 전면 폐지’로 맞불을 놓자 “동의한다. 이번에 처리하면 좋겠다”고까지 했다.

기류가 달라진 이유는 우선 10조3000억원 규모의 세입경정까지 할 정도로 어려운 세수 상황 때문이다. 국정위 핵심관계자는 “대통령 공약을 이행하는 데 약 210조원이 소요될 전망이다. 세수 확보를 위해 민주당이 추진하던 상속세 공제 한도를 18억원(8억원+10억원)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당장 추진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윤석열 정부가 2022년 말부터 진행한 법인세 감면 등 부자 감세도 원상회복 시켜야 한다”며 “정부가 당장 돈을 끌어 쓰려면 국채발행 밖에 없는데, 국채는 이자가 불어나 감당하기 어려워 최소화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민주당 안대로 공제 한도를 높일 경우 향후 5년간 약 3조843억원의 세수가 줄어든다.

일각에선 전통 지지층의 반발을 의식했다는 풀이도 나온다. 참여연대는 지난 8일 ‘2025 세법개정안 의견서’를 대통령실에 제출하면서 부의 대물림 완화를 위한 상속세 감면 혜택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대안 성격으로 내놓은 유산취득세 도입도 무기한 연기될 전망이다. 현행 상속세는 전체 상속재산을 기준으로 세금을 결정하는 ‘유산세’ 방식이다. 이걸 상속인별로 각각의 공제ㆍ세율을 적용하는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바꾸는 내용이다. 이 역시 세수 감소가 부담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유산취득세로 바꿀 경우 약 2조원가량 세수가 줄어든다. 당초 정부는 2028년부터 유산취득세를 시행하겠다는 계획이었지만 지연이 불가피해졌다.
정근영 디자이너

사실 대선 이후 빠른 추진이 예상됐다가, 분위기가 바뀐 건 최종 대선 공약에서 빠지면서다. 이어 정부 출범 초기 정책 방향을 정하는 국정위 논의 대상에서도 제외된 것이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세수의 어려움은 이해한다. 그러나 중산층의 어려움을 감싸겠다고 했다가, 선거 후에 외면한다는 비판 또한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상속세의 성격이 특권층의 세습 루트에서 중산층의 현실로 바뀐 만큼 공제 한도 조정이라도 빨리하는 게 정공법”이라고 말했다.

대신 이번 세법개정안에는 눈에 띄는 감세 대신 가계와 유망 산업의 세금 부담을 덜어주는 각종 공제 방안이 포함될 전망이다. 우선 고향사랑기부제 세액공제율을 두 배 가까이 올리는 내용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현재 기부금은 10만원까지는 전액을, 10만원 초과 금액은 16.5%까지 공제하는데, 이를 30% 수준까지 높이는 방안이다. 최근 기재부는 특별재난지역이 선포된 지자체에 선포 3개월 안에 기부하는 경우에 한해 공제율을 30%로 높이기도 했다.

이 대통령의 ‘K-컬처 300조원 시대’ 공약 이행을 위해 웹툰 산업에 세액공제 혜택을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지금은 영상콘텐트 제작 비용에 대해서만 기업 규모와 국내에서 지출한 비중 등에 따라 5~15%를 공제한다. 세액공제 지원 대상에 만화ㆍ출판물을 추가하고, 올해 말로 예정돼 있던 일몰 기한도 연장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다자녀 가구에 대한 혜택도 추가될 전망이다. 신용카드 사용분의 공제 한도를 자녀 수에 따라 확대하는 방안이다. 현재 신용카드 등의 소득공제 한도는 연 250만원(총급여 7000만원 이하는 300만원)인데, 자녀 1명당 100만원씩 한도를 더하는 형태다.

다만 정부가 조세지출(비과세나 감면 등의 방식으로 세금을 깎아주는 것) 구조조정을 강조하면서 각종 공제 혜택을 또 늘리는 건 도돌이표 정책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새 정부에서 새로운 혜택을 제시할 때는 원칙을 세우고 기존 혜택은 정비해 나가야 매년 불어나는 재정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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