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시간당 최저임금이 1만320원으로 10일 결정됐다. 올해(1만30원)보다 290원(2.9%) 올랐다. 새 정부가 들어선 해 최저임금 인상률은 평년보다 높은 경향이 있는데, 이재명정부는 2000년대 들어선 정부 중 가장 낮은 집권 첫해 인상률을 기록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이날 제12차 전원회의를 열고 중도 퇴장한 근로자위원 4명을 제외한 23명의 합의로 내년도 최저임금을 시간당 1만320원으로 결정했다. 시간당 1만320원을 월급으로 환산하면 209시간 기준 215만6880원이다. 올해 최저임금 기준 월급 209만6270원보다 6만610원 오른다.
내년 인상률 2.9%는 역대 정부의 집권 첫해 인상률 중 최저다. 공익위원들이 자영업자나 영세 소상공인의 경제적 위기를 고려했다는 평가다. 문재인정부의 첫해인 2018년 최저임금 인상률은 16.4%였고, 윤석열정부가 들어선 2023년에는 5.0% 인상됐다. 노무현정부 첫해 인상률은 10.3%, 이명박정부 6.1%, 박근혜 정부 7.2%였다.
노사 합의로 최저임금 수준을 결정한 건 17년 만이다. 이인재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은 “오늘의 합의는 우리 사회가 사회적 대화를 통해 이견을 조율하고 갈등을 해결하는 저력이 있음을 보여준 성과로 기억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노사 합의로 최저임금이 결정된 것은 1988년 최저임금제 시행 이후 1989년, 1991년, 1993년, 1995년, 1999년, 2007년, 2008년 등 7차례 뿐이다. 다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소속 근로자위원들이 중도 퇴장하며 반쪽짜리 합의란 지적도 나온다.
합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공익위원들은 협상 과정에서 심의촉진구간을 제시했는데, 노동계의 거센 반발을 샀다. 심의촉진구간은 노사의 자율적 협상으로는 논의 진전이 불가능할 때 공익위원들이 인상안의 상·하한선을 제시하는 것을 말한다. 노사가 요구하는 최저임금 수준 격차는 최초 안 1470원(노동계 1만1500원, 경영계 1만30원)에서 8차 수정안 기준 720원(노동계 1만900원, 경영계 1만180원)까지 좁혀졌지만 이후 협상은 평행선을 달렸다. 이에 공익위원들은 지난 8일 제10차 전원회의에서 1만210원(1.8% 인상)~1만440원(4.1% 인상)의 범위를 제시했다.
노동계는 심의촉진구간의 최상단이 너무 낮다고 주장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이날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저임금 상승 폭이)최대 상한으로 결정돼도 2000년 이후 역대 정부 최저”라며 “공익위원들은 사회적 약자인 저임금 노동자 현실에 눈감고 방관자적 태도를 취함으로써 최저임금 제도를 무력화했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 근로자위원 4명은 이날 심의촉진구간 철회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추가 수정안 제출을 거부하고 회의장을 나왔다. 공익위원들은 심의촉진구간의 하한선인 1.8%는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상한선인 4.1%는 국민경제 생산성 상승률 전망치인 2.2%와 2022~2024년 누적 소비자물가 상승률에서 최저임금 인상률을 뺀 1.9%의 합이다.
민주노총 퇴장 이후 심의엔 속도가 붙었다. 협상장에 남은 한국노총 측 근로자위원 5명은 제9차 수정안에서 1만440원(4.1% 인상)을, 사용자 측은 1만220원(1.9% 인상)을 제시했다. 이어진 제10차 수정안에서 노동자 측은 1만430원(4.0% 인상), 사용자 측은 1만230원(2.0% 인상)을 제출하며 거리를 좁혔다. 이후 진행된 협상에서 양측은 합의에 도달했다.
류기섭 한국노총 사무총장은 “심의촉진구간이 사용자 측에 편파적으로 유리하게 나온 상황에서 한국노총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여기까지였다”며 “이재명 정부는 저임금 노동자 생계비 부족분을 보완할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저임금위위원회 사용자위원들은 “합의 과정에서 소상공인연합회 위원들의 강력한 반대의사로 진통을 겪었으나, 결국 대승적 차원에서 합의에 이르렀다”며 “최저임금 인상이 경영난 심화나 일자리 축소와 같은 부작용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세심한 정책적 보완과 지원을 병행해 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내년도 최저임금 법정 고시 기한은 8월 5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