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0일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은행이 금리 인하 페달에서 잠시 발을 떼기로 했다. 섣부른 인하는 서울 집값 상승만 부추길 수 있다는 판단이 크게 작용했다.
10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통화정책방향회의를 열어 기준금리를 연 2.5%로 유지하기로 했다. 금통위원 6명 전원 일치다. 앞서 지난해 10월부터 지난 5월까지 경기 부양 등을 이유로 총 4차례(총 1%포인트) 금리를 낮췄다. 올해 1월과 4월엔 동결했다.
김영옥 기자
인하의 발목을 잡은 건 고삐 풀린 서울 집값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날 금통위 후 기자간담회에서 “수도권에 집중된 집값 상승 속도가 지난해 8월보다 빠르다”며 “정도로 따지면 지금이 더 경계감이 심하다”고 했다. 일단 한 차례 숨고르기하며 6·27 대출 규제 효과로 주택시장 과열이 진정되는지 지켜본 후 추가 금리 인하 시기와 폭을 결정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6월 넷째 주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주보다 0.43% 뛰었다. 2018년 9월 둘째 주(0.45%) 이후 6년9개월 만에 최대 상승 폭이었다. 다만 정부의 6·27 대출 규제에 서울 아파트 시장의 상승률은 2주 연속 둔화하며 지난주엔 0.29%를 기록했다.
모든 금융권 가계대출 증감 추이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금융위원회]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에 따른 가계부채 증가세도 한은이 신경 쓰는 부분이다. 한은은 6·27 대책 전 늘어난 주택 거래로 8~9월까지는 주택담보대출 증가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90%(올해 1분기 89.4%)에 가까워 이미 소비와 성장을 제약하는 임계 수준”이라는 게 이 총재의 진단이다. 그는 “일단 수도권 주택가격이 상승하지 않도록 기대 심리를 안정시키고 가계부채를 관리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정책 우선순위”라고 설명했다.
내수 회복이 지연되는 가운데 금리 인하 타이밍을 놓치면 1%대 성장이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한은은 민생회복 소비쿠폰 등 32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 집행으로 성장률 추가 둔화는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한은은 이번 추경으로 올해 성장률이 지난 5월 전망치(0.8%)보다 0.1%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총재는 “저소득층에서는 한계소비성향이 0.5 정도(받은 돈의 50% 소비), 고소득층에서는 0.1 조금 넘는 수준(10% 이상 소비)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다만 이 총재는 미국과 주요국 간 관세 협상의 불확실성이 큰 만큼 1%대 성장률 달성을 언급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고 했다.
미국의 추가 금리 인하 시기가 불투명하다는 점도 이번 동결의 배경이다. 시장은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오는 7월 말 금리를 동결하고, 향후 인하 속도를 늦출 가능성이 작지 않다고 보고 있다. 이날 공개된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에 따르면 19명의 Fed 위원 중 다수가 관세 정책에 따른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위험을 지적했고, 이 가운데 7명은 연내 금리 인하가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이 먼저 금리를 내려 미국과의 금리 격차가 지금의 2%포인트보다 벌어지면, 외국인 투자금 이탈과 환율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
한편 금통위원 6명 중 4명은 3개월 내 인하 가능성을 열어뒀다. 시장도 8월 인하에 무게를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