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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씨가 경북 칠곡 한울요양원에서 노인들과 볼링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한울요양원 제공

경북 칠곡의 한울요양원 지승훈(35) 팀장은 2021년 11월, 당시 스무 살이던 김동호(24)씨를 처음 만난 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동호씨는 허리디스크로 4급을 받고 요양원에 배치된 사회복무요원이었다. 지 팀장은 “처음에는 여기를 거쳐 간 수많은 사회복무요원과 비슷하리라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동호씨는 출근하자마자 휴대전화를 사무실에 두고 퇴근할 때까지 꺼내는 일이 없었다. 노인들과 가까워졌다고 느끼면 반말을 하거나 호칭을 대충 부르던 과거 몇몇 요원들과 달리 동호씨는 항상 ‘어르신’이라고 불렀다. 지 팀장 기억 속의 그는 치매 노인이 꼬집거나 때려도 “어르신이 제가 너무 반가워서 그러셨나봐요”라며 웃어넘기던 요원이다.

소집 해제를 반년여 앞둔 2023년 초, 한울요양원에도 코로나19 팬데믹이 들이닥쳤다. 동호씨도 PCR 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은 때가 있었는데, 그즈음 요양원은 어르신은 물론 요양보호사들까지 잇따라 확진되며 인력 공백이 심각한 상황이었다. 지 팀장은 하루치 근무조도 꾸리기 어려운 현실에 발만 동동 굴렀다. 그런 상황에서 동호씨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저까지 빠지면 어르신들 돌볼 사람이 없잖아요. 어차피 확진된 분들 돌보는 건데, 약 먹고 하루만 버틸게요. 내일이면 격리됐던 선생님들 복귀하시니까요.”

누구보다 동호씨를 아꼈던 건 요양원의 노인들이었다. 그는 요양원에서 ‘우리 손자’로 통했다. 노인들은 가족이 요양원을 방문할 때마다 김씨를 찾았다. “이 총각이 너네보다 낫다”고 말하기 위해서다. 김씨는 “우리 손녀 한 번 만나봐라”는 제안도 수없이 받았다고 한다.

2023년 8월 19일, 1년 8개월의 복무를 끝내고 동호씨가 소집 해제되던 날, 가장 슬퍼한 이들 역시 노인들이었다. 영영 못 볼 거라 생각한 한 할머니는 김씨를 붙잡고 한참을 울었다고 한다. “나가더라도 항상 건강해야 해. 아프면 안 돼.”

그런데 모두의 예상을 깨고 동호씨는 복무가 끝난 뒤에도 주말마다 한울요양원을 찾았다. 20개월간의 경험이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동호씨는 사회복지사를 꿈꾸고 있다. 지난 4월부터 3개월간 한울요양원에서 사회복지사 실습도 마쳤다. 현재 사회복지사 자격증 발급을 기다리는 중이며 매주 봉사도 계속하고 있다.

김동호씨의 사회복지 자원봉사 실적 인증서. 김씨는 사회복무요원 근무가 끝난 후 현재까지 꾸준히 한울요양원에서 봉사를 하고 있다. 한울요양원 제공

다시 요양원을 찾은 동호씨를 가장 반긴 이들 역시 노인들이었다. 지 팀장은 이렇게 말했다.

“어르신들 대부분이 치매가 있으셔서 동호를 기억 못하실 줄 알았는데 바로 알아보시더군요. ‘예전보다 얼굴이 좀 야위었다’, ‘밥 잘 먹고 다녀라’ 같은 말씀도 하셨어요.”

요양원 발령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땐 동호씨도 걱정이 많았다. 사회복무요원이 배치되는 곳 중에서도 요양원은 특히 힘든 곳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 운동을 좋아하고 스포츠 관련 활동만 해온 그에겐 낯선 환경이었다.

그러나 복무 기간이 늘어날 수록 어르신들과 가까워지는 느낌이 좋았다고 한다. 동호씨는 “제가 더 잘하려고 노력할수록 어르신들도 저를 더 반갑게 맞아주시는 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전공인 스포츠재활학도 큰 도움이 됐다. 동호씨는 주로 어르신들과 말동무를 하거나 거동을 돕는 일을 맡았다. 병원에 가기 위해 휠체어에 타는 어르신들을 옮기는 일도 많았다. 그는 “어르신들을 잠깐 들어 옮길 때 어떤 부분을 받쳐야 덜 아프신지 알고 있어서 응용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노인들을 옮기며 힘을 쓰다보니 소집 해제될 즈음엔 허리디스크도 모두 나았다.

노인을 향한 인식도 바뀌었다. 동호씨는 “예전에는 어르신들을 고집이 세고 말도 통하기 어려운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이야기를 나눌수록 고집이 아니라 외로움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물론 사회복무요원으로 일할 때와 사회복지사 실습생으로 일하는 건 많이 달랐다. 동호씨는 “복무할 땐 ‘보조’라는 느낌이었다면, 실습에선 어르신들의 가족관계 같은 개인 정보를 파악하고 이에 맞춰 신경을 써야 했다”며 “프로그램도 직접 구성하면서 주인의식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외로움을 까칠함으로 감춘 노인들에게는 언제나 웃으며 다가간다고 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아무리 까칠하셔도 웃으면서 ‘식사 잘 하셨어요?’라고 인사드리면 대답을 해주세요.”

동호씨가 노인들에게 꼭 묻는 질문은 ‘밥’이다. “식사하셨어요?”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면 “남기지 않고 다 드셨어요?”라고 재차 묻는다. 그는 “일반식을 드시는 분도 있지만 죽을 드시는 분도 많다”며 “조금이라도 안 챙겨 드시면 힘이 뚝 떨어지는 게 눈에 보인다”고 말했다.

어떤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는 “너무 어려운 질문”이라고 머뭇거렸다. 하지만 동호씨를 20개월간 곁에서 지켜본 지 팀장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지 팀장은 “동호에게는 늘 ‘고생했다’는 말밖에 못 했다. 복무할 때나 봉사할 때나 그 마음과 행동이 요양원 모든 선생님들한테 귀감이 됐다. 좋은 사회복지사가 돼서 다시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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