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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 이후 대한민국에 주둔하기 시작한 주한미군은 국가 안보의 든든한 버팀목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다양한 의견이 있겠지만 주한미군의 존재로 한국의 안보가 더 튼실하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1950년대 세계 최빈국이었던 한국은 이제 G10으로 불리는 선진국이 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불평등한 조약인 SOFA(주한미군지위협정), 그리고 방위비 분담금 등 미국과의 관계에서 여러 자존심 상하는 문제가 있지만, 끈끈한 한미 동맹이 결과적으로 정치·경제적으로 한국에 이득이 된다는 논리는 여전히 설득력이 있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역대 모든 대통령이 한미동맹을 우리 외교의 최우선 가치로 두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의 관계가 보호국(피보호국)의 관계가 아니라 '동맹' 관계가 맞다면, 주둔 비용에 대한 계산은 좀 더 정확하게 그리고 투명하게 국민들에게 알리고 동의를 얻을 필요가 있다. 든든한 안보라는 무형의 가치까지 굳이 계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미국이 한국에 미군기지를 두고 있는 것이 한국만을 위한 건 아니기 때문이다. 중국을 견제하고자 하는 미국의 입장에선 동북아시아의 최전방 기지를 한국이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이니까 무형의 가치는 속된 말로 '쎔쎔(same same)'이다.


■ 미군 앞에서 초라해지는 국방부, 국민 눈 속이는 정보 남발

2004년 국회 비준을 받아 시작된 평택 주한미군 기지 이전 사업. 정부는 미 2사단 등 전국 각지의 미군기지 이전은 미국이 원한 사업이었고, 용산의 미 8군 사령부 이전은 한국이 원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비용을 5:5로 분담하기로 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전 국민이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2015년쯤 미군이 이 사업에 별도의 예산을 쓰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미국 의회에서 흘러나오면서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국방부는 여러 차례 애초에 정한 대로 기지 이전 비용이 분담되고 있다고 밝혔지만, 결국 미국 측이 미국 예산을 거의 쓰지 않고 한국이 준 방위비 분담금을 사용하지 않고 모아뒀다가 기지 이전 비용으로 쓰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매년 지급하는 방위비 분담금을 수년 동안 안 쓰고 모을 수 있다고? 그 돈을 기지 이전 비용으로 쓴다고? 세금을 내는 국민은 방위비 분담금의 쓰임새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나올 법한 일이다.

그러자 국방부는 미군 측에 방위비 분담금을 모았다가 한꺼번에 쓰는 일이 없도록 하라며 강력히 항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슬그머니 미군이 방위비 분담금을 전용할 수 있는 규정을 새로 만드는 등 미군의 방위비 분담금 전용을 사실상 인정해 줬다. 국방부가 과거 여러 차례 국민에게 밝혔던 5:5 비용 분담은 사실상 눈속임이었던 셈이다. 논리가 딸리면 방위비 분담금으로 준 돈은 미국 돈이라는 설명을 내놓기도 한다.

빈센트 브룩스 전 주한미군사령관(2018년 평택 주한미군사령부 청사 개관식 연설 중) / KBS 뉴스7

지난 2018년 평택에서 열린 주한미군사령부 건물 준공식에서 빈센트 브룩스 사령관은 100억 달러가 넘는 기지이전 사업비의 90% 이상을 한국이 내줬다고 고마워하는 기념사를 남기기도 했다. 논란에 마침표를 찍은 연설이었다. 이에 따라 약 16조 원 정도가 들어간 미군기지 이전 사업은 한국이 약 93%의 사업비를 부담한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이 평택 미군기지를 설명할 때 꼭 쓰는 수식어, '미군의 해외 기지 중에 최대 규모'라는 평택 험프리스 기지 안에는 미군과 그 가족들을 위한 학교와 위락시설, 호텔과 도넛 공장까지 최신 시설이 있는데 이런 모든 시설을 한국이 만들어 준 것이다.

■ 점점 커지는 주한미군의 '중국 견제' 역할

미국은 해외 파견 미군을 한곳에 머무는 '주둔군'에서 여러 지역으로 파병이 가능한 '기동군' 형태로 바꾸는 전략을 오랜 기간에 걸쳐 완성했다. 아버지 부시 미 대통령 시기에 유명했던 럼즈펠드 국방장관 때 이미 시작했던 일이다. 그래서 평택으로 집중시킨 주한미군의 성격은 '대북한 방어'냐 '대 중국 견제' 목적이냐는 논란이 여러 번 일기도 했다.

한국에 있는 미군이 대북용이냐 대중용이냐는 논란은 사실 우스운 일이다. 결국 미국 대통령과 국방장관의 지휘를 받는 주한미군이 바로 옆에서 벌어지는 미국의 전쟁을 강 건너 불구경하는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대북용 대중용 두 가지 목적을 다 가지고 있다는 얘기다. 분명한 사실은 평택 미군기지 이전 사업이 시작되던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중국의 국방력은 비약적으로 향상됐고, 주한미군의 대중 견제 목적은 과거보다 훨씬 커졌다는 점이다.


과거 의정부와 동두천 중심으로 경기 북부에 주로 포진돼 있던 주한미군이 평택항과 오산 활주로를 훨씬 쉽게 이용할 수 있는 평택으로 옮긴 것 자체가 '기동군'의 목표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함일 것이다. 중국의 '대만 침공설'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주한미군이 대만 사태 때에 제일 먼저 달려갈 미군 부대 중 하나가 될 것이란 사실도 부정하기 힘들다.

이를 역으로 생각해 보면 대만 침공이 현실화할 경우 중국군이 작전상 평택 기지를 공격할 수 있다는 점은 불편한 진실이 되고 있다. 자칫 한반도가 한국과 무관한 전쟁에 휘말릴 수 있는 위험이 커졌다는 뜻이다. 평택 미군기지는 한국에 득이 될 수도 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고, 이런 위험을 감수하는 이유는 바로 한미 간 '동맹' 관계에서 비롯된다.

■ 무리한 방위비 분담금 요구 트럼프, 한국은 '머니 머신'?

전 세계가 다 아는 이런 상황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머니 머신(현금 인출기)'이라고 조롱하고, 주한미군의 한국 방어 비용을 10배 이상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트럼프의 과장 화법'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한국민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일이다. 과도한 방위비 부담 요구로 미군을 동맹군이 아닌 용병처럼 인식시켰다는 주장은 미군의 자존심을 구기는 일기도 하다.

트럼프의 요구를 산술적으로 따져보면 이런 요구가 얼마나 과장된 것인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트럼프가 요구하는 방위비 분담금 총액을 100억 달러(약 13조 7천억 원), 아니면 그 절반이 50억 달러(약 6조 8천억 원)라고 가정해 보자. 세계 5위의 군사력을 지닌 한국은 육해공군을 합쳐 약 50만 병력을 유지하고 있고 국방 예산에 한 해 61조 원 정도를 쓰고 있다. 주한미군 숫자는 약 2만 8천 명 수준이라고 한다. 만약 주한미군에 6.5~13.7조 원의 주둔 비용을 한국이 부담한다면 국군 수에 비해 약 5.5% 수준인 주한미군에 전체 국방예산의 약 10~22% 수준의 비용을 쓴다는 것이다. 이를 군인 1명당 예산으로 바꿔 보면 미군이 20~40배 수준 더 큰 비용이 든다는 계산이 나온다.


만약 미군 주둔 목표의 약 절반이 중국 견제용이라고 한다면, 미군은 한국군보다 1인당 40~80배 비용이 드는 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정도라면 미군 주둔 비용의 일부를 한국에 내라고 하는 건지, 아니면 미군 주둔 비용의 전부 또는 그 이상을 한국에 내라는 것인지 모호해진다. 한미 양국이 진짜 '동맹 관계'라는 것조차 의심되는 수준이다.

■ 새집 갖고 헌집도 그대로 쓰는 미군의 비용

미국 스스로 자랑하는 '해외 미군 기지 중 세계에서 가장 크고 현대화된' 평택 미군기지를 90% 이상 한국 예산으로 갖게 된 주한미군은 아직도 과거에 가지고 있던 핵심적인 미군기지들을 여러 개 그대로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서울 용산-동두천 '캠프 케이시'-의정부 '캠프 스탠리'이다. 평택 기지 건설이 완료돼 주한미군사령부와 한미연합사령부가 기지 내 새로운 청사로 이전해 기념식도 모두 마친 지 오래다. 하지만 여전히 과거 주한미군의 상징적인 기지들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2천 년 대에 들어 미군기지 이전 사업이 발표된 이후 천정부지로 뛴 용산의 아파트 가격, 동두천의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는 '캠프 케이시', 의정부의 새 법조타운이 들어설 자리에 남아 있는 '캠프 스탠리' 등의 반환이 늦어지면서 지역경제나 주민들은 많은 기회비용을 잃고 있다. 과거 전체 도시가 대부분이 사실상 미군의 배후지역으로 발전했던 동두천은 미군기지 이전으로 지역경제가 초토화됐다.

동두천시 중심지를 차지하고 있는 주한미군 ‘캠프 케이시’

미군이 기지를 빨리 반환하면 그 땅에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만한 개발을 일으켜 재도약이 가능할 텐데 주한미군은 병력은 대부분 뺐는데도 불구하고 핵심 미군기지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지역 상권의 자영업자들은 십 년도 넘게 매출과 임대료 하락 등 직접적인 손해를 보고 있다. 동두천시가 상권 활성화를 위해 쏟고 있는 지방예산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들어가고 있다. 중앙정부가 평택 미군기지를 만들기 위해 특별법을 만들어 지역발전에 투입한 예산도 모두 한국 정부와 국민의 주머니에서 나간 돈이다.

국내 미군기지를 재구조화하기 위해 그동안 한국 정부가 기울인 노력과 한국인들이 들인 비용을 감안할 때,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은 돈 많은 나라이니 천문학적 규모의 미군 주둔비를 낼 수 있다는 주장은 많은 한국인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천조국(국방비로 한 해 1,000조 원을 쓰는 미국을 지칭하는 단어)은 모르겠지만, 미군에 주는 방위비 분담금으로 한국이 최대 13조 원을 쓴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노인빈곤율을 기록하고 있는 한국이 한 해 약 20조 원이라는 돈을 쓰면 모든 노인의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불과 2만 8천 명 수준의 미군 주둔비용으로 많게는 13조 원을 내라고 한다면 양국의 우호 관계나 한미 동맹은 장기적으로 약화할 수 있다. 한국 정부가 미국과의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반드시 제기해야 할 이슈이다.

<경기 북부 미반환 미군기지 기획 연속보도>

① 원조 클럽 성지에서 시골 상권으로 추락…동두천의 눈물 (2025-05-29)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267474

② 노른자위 땅은 안 준다…반환한 기지 99%가 산지(2025-05-30)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268381

③ 미군 없는 미군기지, 의정부 도시개발 장애 (2025-06-09)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274720

④ 평택기지 완공 7년째…전국 11개 미군기지 미반환 (2025-06-10)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275597

⑤ [단독] 골프 가능한 통행증 2~300명에게 발급 (2025-06-17)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281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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