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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유일 한국 출판사·서점 운영하는 김승복 대표 인터뷰
에세이 '결국 다 좋아서 하는 거잖아요' 출간


김승복 쿠온출판사 및 책거리 대표
[달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종양이 주인의 허락도 받지 않은 채 몸속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발견했을 때는 이미 너무 늦은 상태였다. 암 덩이가 너무 큰 데다 인근에 두꺼운 혈관이 지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길면 6개월, 짧으면 3개월 살 수 있어요."

일본 의사의 비수 같은 말이 김승복(56) 쿠온출판사 겸 책거리 대표의 귓속에 박혔다. 일본에서 보낸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일본의 한 병원
[EPA=연합뉴스]


김 대표는 1991년 일본 니혼대학에 진학한 후 30년 넘게 일본에서 살고 있다. 광고회사를 운영하다 전공(문예비평)을 살려 2007년 쿠온출판사를 설립했다. 한국문학을 전문으로 하는 일본 내 유일한 출판사다.

그는 '채식주의자'를 비롯한 한강의 소설들을 일본에 소개했고, '82년생 김지영'의 일본 내 돌풍을 이끌기도 했다. 2014년부터 시작해 2024년까지 10년에 걸쳐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 번역을 완간(20권)해 출간했다. 김애란, 김중혁, 김영하, 신경숙, 이승우, 천선란, 편혜영 등 그의 손을 거쳐 일본 독자들에게 흘러간 한국 소설가들의 작품만 100종이 넘는다.

쿠온출판사에서 만든 책
[달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그의 야심은 출판사 운영에만 그치지 않았다. 출판일을 하면 할수록, 우리 책을 일본 독자들에게 직접 얼굴을 맞대고 소개하고픈 욕망이 커졌다. 그는 쿠온출판사 설립 후 8년 만인 2015년 7월 7일, 마침내 그 꿈을 실현할 수 있었다. 서점을 내게 된 것이다. 서점 명은 '책거리'.

책거리는 일본 도쿄의 명물이자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책의 거리인 진보초(神保町)에 자리 잡은 일본 내 유일한 '한국 서점'이다. 처음에는 쿠온출판사 귀퉁이에 있다가 독립했다. 현재는 진보초에 있는 5층짜리 건물 3층에 책거리가, 4층에 쿠온출판사가 있다. 책거리 설립 10주년을 맞아 김승복 대표가 신간 에세이를 냈다. '결국 다 좋아서 하는 거잖아요'가 제목이다. 책 출간에 맞춰 저자를 지난 8일 전화로 만났다.

진보초
[연합뉴스 자료사진]


-- 서점은 왜 시작하게 됐나요.

▲ 일본에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을 계속 만들고 싶었어요. 하지만 한국 책을 파는 곳이 없었죠. 조선총련계 서점도 있었고, 삼중당이라고 한국 서점도 있었는데, 다 문을 닫았습니다. 한국 책을 파는 곳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책방만이 아니라 한국의 다양한 문화를 만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자고 생각해 내게 됐죠.

-- 어떤 문화 행사를 하나요.

▲ 번역 세미나를 열고, 케이북(K-book) 페스티벌을 열고, 일본 출판사들을 불러 한국의 좋은 책들을 소개하는 설명회도 엽니다. 가야금 연주도, 판소리 공연도 막 하고요.(웃음)

책거리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날 통화는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한국 책을 문의하는 미팅이 잇따르면서 첫 통화는 중단됐다. 그는 일본의 대표적 SF(과학소설) 출판사 하야카와 쇼보(早川書房)의 대표와 한국 소설 출간에 관해 논의할 게 있다면서 저녁에 전화를 걸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짧게 덧붙였다.

"저처럼 조그만 출판사 사장이 일본 굴지의 출판사 대표들과 미팅을 한다는 것 자체가 한국 문학의 위상이 높아졌단 뜻 아닐까요?"

실제 한국 책의 위상은 일본에서 상승 중이다. 2018년 조남주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20만부 넘게 팔리며 일본 내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했다. 한강의 '채식주의자', 손원평의 '아몬드' 등도 좋은 평가를 받으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80살이 넘은 일본 출판사 대표들이 천선란, 김초엽, 김동식 작가 등의 이름을 정확하게 알고, 거명합니다. 이제 한국 작가들도 일본에서 '팔리는 작가'들이 된 거죠."

번역 예정된 책
[달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인생이 순탄하게만 흘러간다면 '새옹지마'(塞翁之馬)나 '전화위복'(轉禍爲福)과 같은 고사성어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출판사도, 서점도 잘 되던 2022년, 김 대표는 갑작스럽게 암에 걸렸다는 말을 들었다. 그것도 치유 불가능한 암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병원 측은 주치의를 일반의에서 호스피스 의사로 바꿨다.

-- 짧으면 3개월, 길면 6개월이란 말을 들었다고 책에 썼습니다. 오진이었나요.

▲ 아니요. 오진은 아니었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여러 병원을 돌아다녔는데, 모두 똑같은 진단을 내렸어요. 암이 너무 크고, 인근에 혈관이 지나 수술이 불가하다고요. 차라리 걸어 다닐 수 있을 때 여러 사람 만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어요. 살기가 어렵다는 뜻이었죠.

--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나요.

▲ 이 분야에서 경험이 풍부한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어요. 서울의 한 큰 병원 선생님이 '암이 너무 커 다른 장기를 압박한다'면서 외과 선생님을 추천해줬는데, 그 선생님이 진단한 결과 수술이 가능하다고 했어요. 그리고 수술이 성공리에 끝났습니다. 운이 정말 좋았어요. 진단을 잘한 선생님을 만난 것도, 이 분야 수술 경험이 풍부한 선생님을 만난 것도 모두 행운이었죠.

작가 한강이 보내준 친필 메시지
[김승복 대표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모든 암이 그렇듯, 재발 위험성이 있어 추적 관찰은 하고 있지만, 그는 3년째 별다른 일 없이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더불어 그의 사업도 순항 중이다. 다른 일본 출판사들과 미팅이 잇따르고, 출간할 책도 대기 중이다. 서점은 이제 10주년을 맞았다. 그는 직원들과 함께 책거리 10주년을 맞아 다양한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오리지널 굿즈를 만들자', '창립일이 있는 7월 한 달 내내 토크 이벤트를 열자', '책거리의 친구들이란 제목의 소책자를 만들자', '책거리 에코백을 만들자' 등 아이디어가 쏟아지고 있다고 그는 전했다.

책거리 김승복 대표
[달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병마와 싸우고, 출판사와 서점을 동시에 운영하며, 한국 문학과 책을 일본에 소개하는 중차대한 일을 하는 것. 심적, 육체적 부담감은 없었을까.

그는 "그저 하는 일"이라고 했다.

"제가 하는 일의 규모는 정말 작아요. 연간 20권 정도를 출간하는 출판사와 책방을 운영하고 있죠. 책만 팔아서는 운영이 어려워 다양한 이벤트로 손님을 끌어모으고 있습니다. 규모가 크지 않기에 큰 사명감을 가지고 하는 건 아닙니다. 제가 좋아하는 일을 그냥 하는 거죠."

그러면서 조용히 덧붙였다.

"바다 건너서도 열심히, 재미있게 하고 있어요."

[달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달. 2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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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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