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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 잘 받고, 먹는 것도 조심하던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면, 약을 안 먹고 버린다거나 매운 라면을 확 먹고 혈변을 보는 등 사고를 치곤 하죠. 참고 참다가 폭발해 그런 것인데, 정말 짠하죠.”

심정옥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소아 염증성 장질환 환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전했다. 염증성 장질환은 장에 염증이 생기는 병이다. 크론병과 궤양성 대장염이 포함된다. 치료가 어렵고 발병 원인도 불분명하다. 가공식품 섭취 등 환경 영향으로 추정된다. 소아 염증성 장질환은 10년새 2배 수준으로 뛰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5년 4149명에서 지난해 7106명이 됐다.
서울대병원 심정옥 교수

설사, 복통, 혈변 뿐 아니라 식욕 저하, 피로, 빈혈, 관절염 등 다양한 증상이 나타난다. 환자들은 언제라도 갑자기 배가 아프거나 화장실에 가야 할 수 있어 수업, 시험, 여행 같은 일상 생활이 어려워진다. 영양 흡수가 잘 안 돼 또래보다 성장이 뒤쳐진다. 과자ㆍ라면ㆍ아이스크림 등 가공식품을 가려 먹어야 한다는 점도 아이들에겐 스트레스다. 심 교수는 “성장 지연과 삶의 질 저하를 동반해 아이들에게는 치명적인 병”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소아 환자는 특히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한다”라며“사춘기에 접어들면 ‘왜 나만 이런 병을 앓고 있나’ 비관하고, 우울증을 앓는 아이들이 많다”라고 전했다.

심 교수는 염증성 장질환을 앓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선사하기 위한 ‘CARE-KIDS(케어 키즈) 코호트’ 연구를 이끌고 있다. 심 교수를 비롯한 전국 20개 병원 의료진의 참여로 환자의 혈액, 대변, 내시경 조직 등 정밀 임상 정보를 모으고, 10년간 추적 관찰하는 대규모 장기 연구다. 2022년 시작해 현재까지 1041명의 환자와 5937 바이알의인체자원을 축적하는 등 아시아 최대 규모의 코호트로 성장했다.
이 연구는 고(故) 이건희 전 삼성 회장 유족이 소아암ㆍ희귀질환 극복에 써달라며 기부한 3000억원로 시작됐다. 심 교수는 “연간 새로 발생하는 환자가 800명 정도로 희귀한 질환이고, 발병 연령도 다양해 단일 병원 연구로는 국가 대표 자료를 만들기 어렵다”며 “기부금 덕분에 전국 소아 환자의 약 70%가 포함된 대규모 연구가 가능해졌다”라고 말했다.

연구 3년 만에 의미있는 성과가 쌓였다. 한국 소아 환자의 50%가 크론병 진단 시점에 이미 항문 누공(구멍)이나 농양(고름) 증상을 동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서구 환자(8~15%)보다 2~3배 높은 수치다. 심 교수는 “환자 유형에 따른 치료 전략의 근거가 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런 특성에 따라 일반적인 스테로이드 제제보다는 생물학적 제재를 쓰는게 치료 효과가 좋고, 장 절제 수술로 이어지는 비율도 낮춘다는 점을 확인했다. 또 국내 소아 궤양성 대장염 환자 51%는 진단 당시 이미 대장 전체에 염증이 다 퍼져있는 중증이라는 사실을 확인해냈다. 무엇보다 한국 소아의 치료 전후 장내 미생물 특성을 해외 자료와 비교 분석한 연구 결과로 바이오마커(몸 상태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지표) 개발 가능성을 제시했다.

김주원 기자
연구진은 반복적인 대장내시경 대신, 대변 속 마이크로바이옴 분석을 통해 질병 상태를 예측하는 정밀의학 개발로 나아가고 있다. “소아는 반복 내시경이 힘들다. 대변 속 세균 조합으로 재발 가능성을 예측하고, 치료 반응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비침습 바이오마커를 만드는 것이 연구 목표”라고 심 교수는 설명했다.

케어 키즈는 단순한 연구를 넘어, 전국 소아 환자가 병원 규모와 관계없이 동일한 수준의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기반으로도 작동하고 있다. “소아 염증성 장질환을 전문적으로 보는 의사는 전국에 50명이 안된다. 규모가 작고 인력이 부족한 병원에서도 함께 참여할 수 있게 된 건 이건희 기부금 덕분”이라고 심 교수는 말했다. 그는 “아이들이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끝까지 함께 가고 싶다”고 덧붙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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