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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크뉴스 › [단독] 문재인 부동산 대책 콕 집어 ‘압박 감사’…“조작 인정할 때까지”

랭크뉴스 | 2025.07.10 07:40:04 |
최재해 감사원장(왼쪽)과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오른쪽 물 마시는 사람). 연합뉴스

“여기선 의견을 묻지 않아. 모든 틀은 조작으로 가. 그냥 조작이야, 모든 결론은.”

2023년 봄, 한국부동산원 직원들은 반년을 넘긴 감사원 감사로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공식 감사 종료 나흘 전인 3월27일, 부동산원 직원 ㄴ씨와 ㄷ씨는 서로 ‘그 피로감’을 토로했다. ㄷ씨는 문재인 정부 시절 전 주택통계부장을 했고, ㄴ씨는 그 당시 주택통계부 직원이었다.

“대구(부동산원 본사)에서도 조작으로 계속 몰고 가?”

‘그렇다’는 ㄴ씨 맞장구에 ㄷ씨는 “여기서도 그렇다”며 감사원이 ‘무조건 통계조작이란 결론으로 간다’고 푸념했다. ㄴ씨가 그 대화를 휴대전화로 녹음하고 있다는 사실을 ㄷ씨는 알지 못했다. 그들의 대화는 ‘자괴감’으로 가득했다.

지난달 25일 대전지법 제12형사부(재판장 김병만) 심리로 열린 문재인 정부 통계 조작 의혹 사건 공판에서 부동산원 직원들 간 대화를 녹음한 녹취록이 공개됐다. 이 녹취록에는 부동산원 직원들을 상대로 한 감사원의 회유와 협박이 생생하게 담겼다.

ㄷ씨는 “감사관에게 ‘조작이라고 하는 건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부동산원 직원 99.9%에게 물어도 조작이라고 생각하고 일하는 사람이 어딨겠냐’고 하니까, 지난 통계들을 엑셀로 깔아놓고 ‘이때는 왜 그랬어?’ 꼬치꼬치 묻고 나는 기억도 안 나는데 ‘이거 때문에 그랬겠네요’라면서 자기들끼리 소설을 쓴다. 아니라고 하면 ‘그러면 부장님 기억을 더듬어 보세요. 생각해보세요’라고 한다”며 ‘그(조작)’ 말이 나올 때까지 감사관이 계속 묻고 또 물어서 ‘그냥 그렇게 하세요’라고 답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ㄷ씨가 “전화기록부까지 만들어서 감사관이 소설을 써준다. 그러면 나는 ‘그랬을 것 같다’고 한다”고 하자, ㄴ씨는 “나한테도 그랬다. ‘주 차별로 싹 다 볼테니, 새로 시작한다는 새 마음으로 조사받으러 오라’고 하더라”며 한숨을 쉬었다. 감사원의 부동산원 주택 가격 통계 조작 의혹 감사 과정에서 나온 대화다.

‘조작’을 말하는 녹취록 감사원은 2022년 9월26일부터 ‘문재인 정부가 국가 주요 통계를 조작했는지’를 감사했다. 유병호 당시 감사원 사무총장이 취임한 지 3개월여 만이었고, 부동산원과 국토교통부 등이 주요 대상이었다. 부동산원 직원들은 감사준비 기간에 이미 대구 본사에 설치된 감사장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

지난달 25일 대전지법에서 열린 ‘문재인 정부 통계조작 의혹 사건’ 재판의 증거로 제시된 ‘감사 문답서’와 ‘녹취록’ 내용에서, 부동산원 주택통계부 직원들은 감사 초반엔 일관되게 ‘부동산원의 지사 조사원이 올린 주택가격을 본사가 조정하는 것은 업무에 따른 당연한 검증행위이지 위법이 아니다. 부임 전부터 자료 메일수신처에 청와대가 있어서 메일을 보낸 것이지, 청와대와 직접 연락하진 않았다’는 식의 진술을 했다. 그러나 감사원 조사가 길게 이어지면서 답이 달라졌다.

공식 감사 시작 11일 전인 2022년 9월15일 불려가 조사받고 사흘 뒤 ㄴ씨는 다른 직원에게 “‘다음부터 조사 대상자들이 이런 식으로 협조하지 않으면 그냥 부동산원 단독 일탈로 검찰수사 의뢰, 통계청 통보하고 끝낼 것’이라고 하더라. 당신한테도 똑같이 할 것”이라고 말했다. ㄴ씨는 당시 부동산원에 내부 보고한 ‘감사 내용 요약문건’에도 이런 내용과 함께 “‘감사관이 다른 대상자들에게 오늘 들은 얘기를 잘 전달하고 머리를 맞대 어떻게 대응할지, 어떤 자료를 제출해 당신들은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을 입증할지 상의하라. 그렇지 않으면 부동산원과 그 직원들이 모든 책임을 지게될 것이니 잘 대응하라’고 했다”고 적었다.

감사 당시 부동산원 직원들끼리 대화가 담긴 녹취는 검찰 수사 과정에서 확인됐다. 검찰은 압수한 ㄴ씨 휴대전화에 있던 수십개의 녹취를 속기사를 통해 ‘녹취록’으로 만들었으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것을 수사에는 활용하지 않고 총 134권(7∼8만 페이지)의 재판 증거 중 하나로 제출했다. 지난해 5월22일 이 사건 첫 재판에서 피고인 11명의 변호인은 “공판 시작 전 기록 검토에만 최소 두 달은 필요하다”고 했지만, 검찰은 서울지법 사례까지 언급하며 “신속한 진행을 위해 이 재판만 다루는 재판부를 배정해달라”고 재촉하기도 했다.

피고인 쪽 변호인은 수만 페이지 재판 증거를 하나하나 분석하는 도중 이 ‘녹취록’을 발견했다. 지난달 25일 재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ㄱ씨(ㄷ씨 전임 주택통계부장)는 ㄴ씨가 대화를 녹음한 것을 “전혀 몰랐다. 검찰 조사 때도 듣지 못했다”고 했다. 6개월 넘게 조사가 이어지던 2023년 3월9일 다른 직원과의 대화에서 ㄴ씨는 “한두달이면 죽어 사는데, 벌써 7개월째다. 힘들어 죽겠다. (감사원이) 계속 쪼아대니 심리적으로 힘들다. 지금 조사 들어가면 새벽 3∼4시에 집에 보내준다. 통계 조작을 인정할 때까지 계속한다. 조작이라고 인정해야 내보내 준다”고 호소한다.

3월27일 대화에서는 ㄷ씨가 “‘국토부가 주택가격 통곗값을 하향뿐 아니라 상향 검토 쪽으로도 얘기 많이 했다’고 하면 (상향 검토 내용은) 감사관이 지운다. (감사원이 불리하니까) 올린 건 얘기 안 하고 나쁜 것만 얘기한다”고 하자 ㄴ씨는 “나도 감사관에게 ‘내가 2000개 수정했는데 1800개가 올린 거고 200개가 낮춘 거다. 이게 잘못이냐?’고 (주택가격 통곗값) 올린 것을 얘기했더니, ‘그런 얘기는 검찰청에서 하고’ 바로 그러더라”고 했다.

감사원 모습. 김혜윤 기자 [email protected]

‘문재인 부동산 대책’ 콕 집어 압박조사 감사원의 과녁은 ‘문재인 청와대’를 조준했던 걸까. 녹취록에서 부동산원 직원들은 “감사원이 ‘12.16 부동산 대책 탓에 국토부가 압박했지?’라고 자기들끼리 ‘소설을 쓴다’”고 입 모은다. 문재인 정부는 2019년 12월16일 서울 집값을 잡기 위한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으로 초고가 아파트 신규 대출 전면 제한과 보유세 인상 등 부동산 대책을 내놨다. 정권이 바뀌고 2년9개월 뒤 시작된 감사로 부동산원 직원들의 기억은 ‘12.16 대책’ 발표 전후로 강제소환 됐다.

감사 당시 한 대화에서 ㄷ씨는 “감사관이 ‘(12.16) 대책이 나오고 이렇게 바로 (주택가격 통계가) 떨어질 수 있냐’고 해서 ‘당시 시장 상황이 안 좋았고, 사실 12.16 대책은 인터넷이나 유튜브에도 이미 다 나왔었다’고 하니까 감사관이 ‘오늘은 그만하시고’ 이런다”며 “감사관이 그런 식으로 하니까 내가 ‘국토부에서도 아마 연락은 있었을 거다. 대책 나오고 그 사람들이 연락을 안 하지는 않았을 거다’라고 했더니 (감사관이) ‘그러면 결국에는 (12.16) 대책 탓에 국토부가 연락한 것이지요? 시장은 그냥 보합세(시세 변동이 거의 없는 것)인데’라고 자기들끼리”라고 말하자, 곧바로 ㄴ씨는 “또 소설 쓴다”고 끝말을 이었다.

이 대화 바로 이틑날인 2023년 3월28일 감사원 조사에서 ㄴ씨는 “통계 조작이 맞다. 국토부의 부당한 압력으로 그랬다”고 답했다. 5개월여 뒤인 그해 9월13일 감사원은 ‘주요 국가통계 작성 및 활용실태’ 중간 감사 결과 브리핑을 열고 “감사관 28명을 투입해 감사한 결과, 문재인 정부 청와대와 국토부가 94차례 이상 부동산원의 통계 작성과정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통계수치를 조작하게 했다”며 장하성·김수현·김상조·이호승 등 문재인 정부 청와대 정책실장 전원과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 등 22명에 대해 통계법 위반, 직권남용, 업무방해 등 혐의로 검찰에 수사를 요청했다. 지난 4월 발표한 감사보고서에선 수사요청서의 ‘조작’이란 단어만 ‘조정’이라고 고쳐 청와대·국토부가 총 102차례 부동산원을 압박했다고 적었다. 특히 감사원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대책 이후 그 효과가 큰 것처럼 보이게 통계가 조작됐다”고 강조했다.

바통을 넘겨받은 검찰은 총선을 한 달여 앞둔 지난해 3월14일 통계법 위반 등 혐의로 문재인 정부 대통령비서실의 김수현·김상조 정책실장과 홍장표 경제수석, 국토부의 김현비 전 장관과 윤성원 전 차관 등 11명을 기소했다. 당시 대전지검은 이례적으로 지청에 기자들을 불러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김수현 전 실장과 윤성원 전 국토부 1차관은 아직 발표하지도 않은 부동산 대책 효과를 변동률 산정에 반영하라고 지시하고, 김현미 전 장관은 부동산 대책 효과가 숫자로 나타나야 한다고 국토부 직원들에게 거듭 지시해 국토부 실장 등이 부동산원 직원들을 질책해 변동률을 낮추게 했다”며 “이런 내용의 명시적 지시가 있었음을 당사자 진술과 문자 내용 등으로 확인했다”고 문재인 정부 청와대와 국토부의 ‘조작 압박’ 혐의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검찰은 부동산원에선 누구도 기소하지 않았다.

지난 재판에서 피고인 쪽은 ‘녹취록’ 증거 내용을 짚으며 “감사원이 문재인 정부 청와대를 노리고 부동산원의 꼬투리를 잡아 회유·협박했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 다음 재판은 오는 16일 대전지법 230호 법정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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