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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풍력발전단지.

■ 제주도, 전국 최초 '일시적 RE100' 달성

올해 4월 14일은 국내 에너지 전환에 있어 기념비적인 날입니다. 바로 제주에서 일시적 'RE100'을 달성했기 때문입니다. 'RE100'은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하는 국제 캠페인입니다. 이날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제주는 전체 전력사용량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했습니다.

2025년 4월 14일 13시 기준 제주지역 신재생에너지 수급현황.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제주도의 전체 전력 수요를 넘어서면서 일시적 ‘RE100’을 달성했다.

사실 전력은 생산과 수요가 일치해야 합니다. 쓰려는 양보다 발전한 양이 많거나, 반대로 적으면 대규모 정전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는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불규칙하죠. 그래서 전력 생산량 일부는 반드시 화력이나 원자력 같은 안정적인 발전원으로 충당하고, 발전량이 너무 많을 때는 재생에너지 발전기를 멈춥니다.

그렇다면 일시적 'RE100'을 달성한 날에는 제주의 화력발전기가 가동하지 않았던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재생에너지로 전력 수요의 100%를 충당하고, 남는 전기는 다른 지역으로 보냈습니다. 이렇게 남는 전기를 다른 지역에 보내면서 일시적 'RE100'을 달성한 배경에는 바로 최신 HVDC 기술이 적용된 제3연계선이 있었습니다.

■ HVDC 기술이 뭔가요?…더 효율적인 송전 방식

HVDC를 풀어쓰면 '고압 직류 송전(High Voltage Direct Current transmission system)'입니다. 높은 전압의 직류로 전기를 보낸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가야 할 내용이 있습니다.

첫 번째, 전기는 직류와 교류 방식으로 구분되는데, 전기를 보낼 때 효율성 측면에서는 직류가 낫습니다. 교류로 보낼 때 손실률을 10%로 가정하면, 직류로 보낼 때는 1%에 불과합니다. 거리가 멀어질수록 교류의 효율성은 더 떨어집니다.

두 번째, 전기를 보낼 때는 전압이 높을수록 효율이 좋습니다. 그렇다면 높은 전압의 직류 전기로 보내는 게 가장 좋겠죠. 그런데 문제는, 교류는 변압기로 쉽게 전압을 올릴 수 있지만 직류는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현재 대부분의 송전망이 교류 방식을 선택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HVDC 기술 모식도. 기존 송전망에서 교류로 들어온 전기를 직류로 바꿔 보낸 뒤 다시 교류로 변환해 송전망에 연결한다.(그림제공: 히타치에너지)

그런데 전력 반도체 기술이 발전하면서 직류 방식이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예전과 비교해 직류 방식도 전압을 높여 멀리 보내기가 용이해진 겁니다. 이것이 바로 HVDC 기술입니다.

HVDC는 바다나 땅 밑으로 전기를 보낼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교류 방식은 케이블의 표피효과와 정전용량 때문에 전송 효율이 떨어지지만, 직류는 그렇지 않습니다. 따라서 주민 수용성 측면에서도 교류보다 낫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다만 비용이 비싼 게 단점인데, 해저로 전기를 보낼 때 거리가 100km를 넘거나 발전소의 발전 용량이 1GW를 넘을 경우에는 HVDC가 더 경제적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 제주에 설치된 건 '전압형' HVDC…실시간 역송 가능

제주와 육지를 잇는 제3연계선은 지난해 12월 준공됐습니다. 해저케이블을 포함해 약 105km 구간을 잇고 있습니다.

제주와 육지를 잇는 HVDC 해저연계선 현황(출처: 한국전력)

제3연계선이라는 건, 다른 연계선이 두 개 더 있다는 뜻이겠죠. 앞선 두 연계선도 HVDC 기술이 적용됐습니다. 제주의 전력이 부족할 때 다른 지역에서 가져오기 위해 설치했습니다. 하지만 제주에 재생에너지 보급이 늘면서, 이제는 전력이 부족하기보다는 남는 게 더 큰 문제가 된 상황입니다. 따라서 제3연계선은 기존 연계선과 다른 HVDC 기술이 적용됐습니다.

HVDC 기술은 크게 전류형과 전압형으로 나뉩니다. 비교적 예전 기술인 전류형은 대용량의 전기를 보낼 때 유리하지만, 전기를 보내는 방향을 바꾸려면 하루 정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반면 비교적 최신 기술인 전압형은 송전 방향을 즉시 바꿀 수 있습니다.

제주의 제1,2연계선은 전류형이, 제3연계선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전압형 HVDC가 적용됐습니다. 제3연계선 가동으로 이제는 전력 수급 상황에 따라 유연한 대처가 가능해졌습니다. 전력이 남을 때 실시간으로 송전 방향을 바꿔 일시적 'RE100'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겁니다.

■ 세계 HVDC 시장은 급성장 중…공장도 미리 예약해야

세계 HVDC 시장은 누가 주도하고 있을까요? 히타치에너지를 비롯해 지멘스와 GE가 3강 구조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제주의 제3연계선에도 히타치에너지가 참여했습니다.

세계 HVDC 시장은 2020년 70조 원에서 2030년 159조 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히타치에너지가 막대한 투자를 이어가는 이유입니다. 실제로 히타치에너지의 수주 잔고는 2020년과 비교해 3년 만에 3배로 늘었습니다. 히타치에너지는 2023년까지 30억 달러를 투자했고, 같은 기간 인력도 1만 5천 명이나 고용했습니다. 앞으로 2027년까지는 60억 달러를 추가로 투자할 계획입니다.

니클라스 페르손 히타치에너지 그리드통합부문 총괄이 취재진에게 HVDC를 포함한 사업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사진제공: 한국언론진흥재단 공동취재단)

세계 HVDC 시장이 커지는 이유는 장거리 송전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것도 있지만, 재생에너지 확산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전압형 HVDC는 재생에너지와 궁합이 잘 맞기 때문입니다.

재생에너지는 날씨에 따라 전력 생산량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그다지 안정적인 발전원은 아닙니다. 기존의 전력망에 부담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전압형 HVDC는 전력망의 전압과 주파수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그리드 포밍(grid-forming)' 기능을 갖추고 있어 전력망의 부담을 줄여줄 수 있습니다.

이처럼 HVDC 수요가 늘면서 구매 방식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히타치에너지는 현재 '설비 용량 예약 계약' 방식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나오지 않았더라도, 앞으로 진행될 프로젝트 수요를 고려해 공장이나 인력 같은 생산 용량을 미리 확보해두는 계약입니다.

니클라스 페르손 히타치에너지 그리드통합부문 총괄은 "갑자기 프로젝트를 진행하자며 제안한다면 납기일이 굉장히 길어질 수 있다"면서 "초기 계획 단계부터 공급사와 논의하는 구매 방식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했습니다.

■ 국내 HVDC 기술 현실은?… "지속적인 투자와 기술개발 필요"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HVDC 현실은 어떨까요? 우리나라는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늘고 있지만, 생산지와 소비지가 다르다는 근본적인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재생에너지는 제주와 전남 등 남부지역에 밀집해 있지만, 전력의 소비지는 수도권에 몰려있는 구조입니다. 결국 대규모 송전망 건설이 필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전력 생산지에서 바로 전력을 소비하는 게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지만, 단기간에 이런 구조를 바꾸기는 쉽지 않습니다.

정부가 기후위기 대응과 재생에너지 전환을 위해 '에너지 고속도로' 구축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것도 이런 이입니다. 그리고 '에너지 고속도로'의 핵심은 바로 HVDC입니다.

서해안 에너지고속도로에서 확장되는 단계별 구축안(출처: 민주연구원)

하지만 국내 HVDC 기술은 전류형이나 전압형 모두 세계 시장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게 중론입니다. 특히 컨버터 같은 전압형 HVDC의 핵심 기술들은 해외 의존도가 높은 것도 사실입니다. 문제는 외국산에만 의존할 경우, 전력망을 유지보수하거나 고장이 났을 때 대응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입니다. 또 해외 공급업체들이 납기를 늦출 경우 속수무책입니다.

물론 우리 기업도 가만히 있는 건 아닙니다. 한국전력과 효성중공업이 전압형 HVDC 국산화 기술 개발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특히 효성중공업은 지난해 7월 국내 최초로 독자기술을 활용한 전압형 HVDC 변환설비를 만드는 데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전력을 보내는 단계까지는 아니지만, 전압형 HVDC의 주요 설비를 개발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해외 선도 기업들과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투자와 기술 개발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장길수 고려대학교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AI 때문에 전력 수요가 크게 늘어나는 상황에서 적기에 전력설비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주민수용성 문제가 덜한 HVDC 기술의 확보가 중요"하다면서 "당장에 외국 기술 적용을 배제할 순 없지만 향후 유지보수나 비용적인 측면에서 국산 기술에 대한 투자를 이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5년 KPF 디플로마 기후테크(전기화) 프로그램 지원을 받아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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