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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0년 특약으로 시장지배적 지위…공정경쟁 왜곡한 '경쟁사업자 배제' 반칙 제동
'스스로 만든 구조'에 거래사 '합의'…시장발전 막은 '갑' 행태에 "불공정" 과징금


코리안리
[촬영 안 철 수]


(서울=연합뉴스) 이미령 기자 = 장기간 독점의 그늘에 안주하던 재보험 시장의 코리안리재보험에 내려진 정부 과징금이 정당하다는 취지의 대법원 파기환송 판결은 비정상적 시장 행태에 제동을 걸고 법적 원칙을 명확히 한 판결로 풀이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독점을 문제 삼아 부과한 과징금이 정당하다고 본 이번 판결은 국내 대표적 재보험사인 코리안리가 민영화 이후로도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해 장기간 유지해온 독점적 행태에 경종을 울렸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지난달 5일 코리안리가 공정위를 상대로 낸 시정명령 등 취소소송에서 2심의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깨고 공정위 패소 부분을 다시 판단하라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코리안리가 보험사들과 일반항공보험 재보험 계약을 체결할 때 자사와 전량 계약한다는 등의 특약 조항을 마련한 것이 "시장지배사업자로서 경쟁사업자를 배제하기 위해 이뤄진 행위"로 공정위 제재 대상이라고 판단했다.

1963년 대한손해재보험공사에서 시작해 1978년 민영화된 코리안리는 이후에도 체질 개선보다는 국내 원보험사들이 우리나라 재보험사와 재보험계약을 체결해야 한다는 '국내우선출재제도' 등의 혜택을 누렸다.

이를 통해 한동안 독점적 지위를 보장받았으나 1990년대 해당 제도가 없어진 뒤에도 이른바 '특약 체제'를 통해 국내에서 시장지배적 지위를 유지했다.

대법원은 코리안리가 원보험사들과 합의해 외국 등 다른 재보험사를 배제하는 특약을 맺는 방식으로 경쟁업체와의 계약을 막는 것도 공정거래법이 막으려는 경쟁 제한적 행위로 보고 제재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이는 결국 재보험 업계 기능을 왜곡하고 건전한 시장 발전을 저해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비록 과거에 벌어진 사안이기는 하지만 대법원이 사법 판단을 통해 명확한 입장을 선언하고 기준을 제시한 셈이다.

대법원은 특히 특약에 대해 상대 보험사들이 합의했다고 하더라도 제재 대상에 해당함을 분명히 밝혔다.

이같은 조건으로 경쟁사업자의 시장 진출이 방해받아 경쟁 제한 효과에 대한 심사가 필요하다는 점은 시장지배 사업자에 의해 일방적·강제적으로 조건이 부과된 경우나 상대방이 조건에 합의한 경우가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일반항공보험은 헬리콥터나 소형 항공기가 드는 보험으로 사고가 날 경우 지급해야 하는 보험료가 커 보험사는 위험 분산을 위해 다른 보험사들과 재보험 계약을 맺는다.

이 재보험 시장에서 코리안리는 과거 정책적으로 독점적 지위를 보장받았다. 문제는 1993년 해당 정책이 폐지된 뒤에도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고자 특약 조항을 두면서 불거졌다.

코리안리 재보험
[코리안리 재보험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email protected]


시장 개방으로 원보험사는 여러 재보험사와 보험 계약을 맺어 위험을 분산하는 '재보험 플레이싱'이 가능했지만, 코리안리는 국내 원보험사와 1년 단위 계약을 맺으면서 재보험 물량 전부를 자사를 통해 가입하게 하는 특약 조항을 뒀다.

또 원보험사들이 일반항공보험을 인수할 때 사용하는 보험료율을 코리안리로부터 받도록 의무 조항을 뒀다.

나아가 코리안리는 높은 시장 점유율 탓에 재재보험 형태로 위험을 다시 분산시켜야 했는데, 이를 위해 재보험으로 인수하는 위험 중 일부를 국내 다른 보험사에 재재보험 형태로 재출재한다는 조항도 뒀다.

또 남는 위험은 코리안리가 잠재적 경쟁사업자인 해외 재보험사와 선제적으로 재재보험을 맺으면서 이들의 국내 재보험 시장 진입을 막는 효과까지 거뒀다.

이런 이중 삼중의 시장통제 '가두리' 행태에 공정위는 '배타조건부 거래(거래 상대방이 자기 또는 경쟁사업자와 거래하지 않는 조건으로 거래하는 행위)'로 잠재적 경쟁사업자의 진입을 막았다며 78억원의 과징금 '철퇴'를 부과했다.

서울고법은 문제의 특약 조항에 "국내 보험사들이 사무처리의 편의 등을 위해 각 조항 체결을 선호하고 있었고 코리안리가 보험사들에 체결을 강제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과징금을 취소하라고 했다.

대법원 전경
[연합뉴스TV 제공]


그러나 대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외관은 자발적 합의 형태를 띠었다 해도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설정한 구조 속에서 거래가 이뤄졌다면 권한남용 행위라는 취지다.

대법원은 코리안리가 한 일련의 행위가 유기적으로 연결된다며 "시장지배적 사업자로서 경쟁사업자를 배제하기 위해 단일한 의사 아래 이뤄진 행위"라고 봤다.

특히 해당 특약 조항이 '경쟁사업자와 거래하지 않을 조건'을 내걸었는지 여부는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의해 일방적·강제적으로 부과된 경우에 한하지 않고 거래 상대방과 합의에 따라 설정된 경우도 포함된다"고 제시했다.

합의 형태라도 그로 인해 '경쟁사업자의 해당 시장에 대한 진출이 방해돼 발생한 경쟁 제한적 효과에 대한 심사가 필요하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또 코리안리가 국내 보험사들과 재재보험을 맺도록 한 특약 체제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대법원은 "특약 체제에 참여하는 보험사가 증가할수록 그 보험사가 재재보험을 통해 수취할 수 있는 이익을 증대시키는 기능을 한다"며 "그 결과 국내 원보험사들이 원고가 제안하는 특약 체제로부터 이탈하지 않고 이에 참여하도록 하는 유인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코리안리가 선제적으로 해외 재보험사와 재재보험을 맺는 행위에도 "해외 재보험사들이 국내 일반항공보험 재보험 사업자로 진출할 유인을 감소시킨다"며 "그 결과 국내 원보험사들이 원고의 경쟁 사업자인 해외 재보험사와 재보험을 맺고자 하는 시도에 대한 장벽으로 기능한다"고 지적했다.

공정위 등에 따르면 코리안리 측은 과징금 처분 이후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기 위한 제도 개선에 나서왔다. 이번 대법원 판단은 이와 무관하게 위법적 불공정 거래 행태에 명확한 원칙을 재확인한 선도적 판결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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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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