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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어딘가, 학대 받는 아이]
②구조기: 전담 요원의 현실
조사 거부·민원 제기·협박 '다반사'
현장 대응 위축…아동 안전에 영향
업무 고충에 전담공무원 보직 기피
"전문 경력관 도입, 권한 확대해야"
게티이미지뱅크


“당신이 뭔데 남의 아이를 마음대로 데려간다는 거야!”

충남 지역 아동학대 전담공무원 A주무관은 ‘아이 옷차림이 지저분하다’는 초등학교 사회복지사의 신고를 받고 정우(가명) 형제 집을 찾았다. 어른은 없었고 아이들끼리 산 지 오래된 듯했다. 집 안에선 라면봉지가 나뒹굴었다. 조사해 보니 유일한 보호자인 아빠는 가끔 들러 냉동식품과 라면을 채워 두고 가고 평소에는 여자친구 집에서 지내고 있었다. A주무관은 정우 형제를 이대로 둘 수 없어 설득 끝에 아동보호시설로 데려갔다.

아빠는 “아이를 굶긴 것도 아닌데 무슨 학대냐”며 노발대발했다. “지방에서 일하느라 며칠 떨어져 지냈을 뿐인데 공무원이 아이를 빼앗아 갔다”며 온라인에 비방 글도 올렸다. A주무관은 “폭언과 욕설은 흔한 일이고, 때로는 인신공격을 당하기도 한다”며 “경찰 입회 아래 아동을 분리했는데도 ‘아이가 납치, 유괴됐다’며 경찰에 신고하는 부모도 많다”고 토로했다.

일러스트= 신동준 기자


아동학대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은 높아졌지만, 대응체계는 아직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학대피해아동을 구조하고 보호하는 전담요원들이 학대 행위자인 부모들의 거센 반발과 악성 민원, 신변위협에 시달리는 탓이다.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현장에서 대응력이 떨어지면 아동학대 해결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아동학대 대응 절차경찰에 아동학대 의심 신고가 들어오면 시군구에 통보되고, 즉시 아동학대 전담공무원이 출동해 경찰과 함께 현장조사를 실시한다. 학대 수준이 심각할 경우 아동을 즉각 분리해 학대피해아동쉼터와 위탁가정 등에서 보호한다. 2023년에는 전체 아동학대 사례 2만5,739건 가운데 5.6%(1,431건)가 즉각 분리 조치됐다.

이후 시군구 사례회의에서 현장 조사 내용을 토대로 아동학대 여부를 결정하고, 전담공무원은 그 결과에 따라 아동보호계획을 세워 민간 위탁인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연계한다. 아동보호기관 상담원들은 피해아동 심리상담, 가족 회복프로그램, 부모 양육교육 등 심층 사례 관리를 맡는다.

아이를 구조하고 괴롭힘에 시달렸다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학대피해아동을 표현한 이미지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우선 경찰과 전담공무원이 현장을 확인하려 해도 부모가 아예 문조차 열어주지 않거나 “남의 가정 일에 왜 끼어드냐”며 조사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아동의 생명을 위협하는 물리적 폭력뿐 아니라 방임, 유기, 정서학대도 엄연히 학대이지만, 순순히 학대를 인정하는 부모는 거의 없다. 부모가 협조하지 않으면 아동의 치유가 힘들어지는 건 물론이고 재학대 위험도 높아진다.

대구 지역 아동학대 전담공무원 B주무관이 구조한 예지(가명)가 그런 사례다. 예지는 쓰레기로 가득 찬 집에서 부모의 돌봄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과거에도 방임 신고가 들어와 지자체가 부모에게 양육 교육과 청소 지원을 했는데 또 같은 일이 반복됐다. 예지의 안전이 우려됐다. 하지만 엄마는 예지를 끌어안고서 거칠게 저항했고, 경찰이 제지한 뒤에야 간신히 진정됐다. B주무관은 “그래도 예지 엄마는 지자체 도움으로 정신과 치료도 받고 가족 회복 프로그램에도 참여했다”며 “아이를 분리할 때는 난리를 치더니 나중엔 아이 면접조차 귀찮아하는 부모도 있다”고 말했다.

악성 민원도 끊이지 않는다. 대전 지역 아동학대 전담공무원 C주무관은 부모에게서 신체학대를 당한 아동을 분리 보호했다가, 1년 반 동안 괴롭힘에 시달렸다. 법무 직종에서 일했던 부모가 법 지식을 이용해 지자체장 면담 신청, 감사 청구, 국민신문고 게시, 인권위원회 진정 등 온갖 민원을 연달아 제기했다. 마지막에는 행정심판까지 청구했다. C주무관은 “
정당한 행정 집행이라는 점을 인정받았지만 너무 억울해 손발이 떨리고 잠도 못 잤다
”며 “민원으로 업무가 마비되고 정신이 피폐해질 지경이라, 하는 수 없이 (아이가) 학대피해 심리치료를 받은 것을 근거로 아이를 돌려보냈다”고 털어놨다.

사례 관리를 맡는 아동보호기관 상담원도 사정은 비슷하다. 충북 한 아동보호기관은 몇 년 전 출입문을 지문 인식 개폐 시스템으로 바꿨다.
학대 행위자가 “칼 들고 찾아가겠다”며 협박
한 탓이다. D상담원은 “상담원 연령대가 낮은 편이라 부모들이 ‘애는 키워 봤냐’며 대놓고 무시하거나 대답을 건성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며 “부모와 소통이 안 되면 사례 관리가 힘들어지기 때문에 계속 부모를 찾아가고 설득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했다. 학대 행위자가 사례 관리를 거부하면 과태료 처분도 가능하지만, 실제 처분이 이뤄지는 건 극히 드물다.

기피 보직 된 아동학대 전담요원

업무 고충으로 힘들어하는 직장인의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이런 고충이 계속되면 현장 대응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혹시 과잉 조치로 징계 받지 않을까’ ‘민원에 휘말리면 골치 아플 텐데’ 하는 두려움이 앞서면서 ‘부모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줄까’ 고민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동학대 판단율이 낮은 것도 이런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2023년 아동학대 의심 신고(중복신고 및 일반상담 제외) 4만5,771건 중 아동학대로 판단된 사건은 2만5,739건으로 56.2% 수준이다. 정서학대나 방임처럼 학대 물증이 없고 진술이 부족한 상황에서 부모의 극심한 반발에 맞닥뜨리게 되면 아동학대 전담공무원들이 적극적인 판단과 개입을 주저하게 된다고 한다.

여기에 더해 인력 부족도 현장 대응력을 약화시키는 요인 중 하나다.
정부는 아동학대 전담공무원 1인당 연 50건 이하를 권고
하지만, 인력 기준을 충족하는 곳이 많지 않을뿐더러 시군구별로 편차가 크다. 일례로 2022년 전담공무원 1인당 담당 건수는 최소 44건(강원),
최대 94건(울산)
으로 두 배 넘게 차이가 났다.

업무 강도가 높고 스트레스도 심하다 보니 아동학대 전담공무원은 기피 보직으로 통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기준 전국 17개 지자체 전담공무원 평균 근속 기간은 14.9개월에 불과했다. 근속 기간이 가장 긴 곳(경북)도 18.7개월로 2년이 채 안 됐고, 가장 짧은 곳(세종)은 고작 9.2개월이었다. 주기적인 순환 배치 때문이기도 하지만, 도중에 부서를 이동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아동보호기관 상담원도 마찬가지다. 상담원 평균 근속 기간은 3.3년에 불과하고 이직률은 34%에 달한다(2021년 아동권리보장원 조사).
상담원 1인당 사례 관리 수는 2022년 기준 36.7건으로, 미국의 권고 기준인 12~17건보다 2배 이상 많았다.


서울 한 아동보호기관 E팀장은 “상담원이 자주 바뀌면 사례자 입장에서도 적응 문제, 관리 지연 등 불편을 겪는다”며 “인력을 확충해 사례 관리 수를 줄여야 상담원 이탈을 막고 아동과 가정에 맞춤형 지원을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담요원 전문성·권한 강화 모색해야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표현한 이미지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악성 민원과 과중한 업무, 인력 이탈 문제는 아동학대 대응 체계가 전문화·고도화되기 어려운 원인 중 하나다.

아동학대 대응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보직 이동 없이 장기 근무하는 ‘전문 경력관’ 제도를 전면 도입하자는 제안이 나온다. 업무 연속성이 보장돼야 전문가들이 현장을 오래 지킬 수 있고 아동 안전 인프라도 탄탄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전문 경력관을 둔 지자체는 전국에서 서울 강남구 한 곳뿐
이다.

전담요원 권한 확대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최근 서울 한 자치구 아동학대 전담공무원 F주무관은 생후 두 달 된 아기가 뇌출혈로 실려 온 사건을 담당했다. 명확한 학대 증거는 없고 부모는 아기가 왜 아픈지 모른다며 잡아떼 조사는 한계에 부딪혔다. 의심을 거두지 않은 F주무관은 끈질기게 진실 규명에 매달렸고, 의사 도움을 받아 의무기록 등을 토대로 학대 정황을 입증해 냈다.

F주무관은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압박감이 크지만 수사기관이 아니다 보니 조사 범위나 방식이 제한적”이라며 “
최소한 고위험 가정만이라도 전담공무원에게 강제 조사권을 부여하고 경찰, 법원, 교육청 등에서 상시적으로 정보를 공유받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고 지적했다.

※ 민법이 개정되어 부모라도 아동을 체벌할 권리는 없으며, 아동에게 신체적·정서적·성적 학대 등을 하면 최대 10년 이하 징역 등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아동학대가 의심되면 112에 신고하고, 아동 양육·지원 등에 어려움이 있으면 129(보건복지상담센터)와 상담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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