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속도경쟁에 ‘주7일 배송’ 확산
노동자 36%가 5인 미만 사업장 근무
국정과제로 주4.5일제 검토하지만
영세사업장 근로시간 단축 선결돼야
노동자 36%가 5인 미만 사업장 근무
국정과제로 주4.5일제 검토하지만
영세사업장 근로시간 단축 선결돼야
서울 금천구에 위치한 CJ대한통운 가산 서브터미널에 택배 박스들이 배달을 위해 분류돼 있다. 연합뉴스
“주6일 동안 뼈 빠지게 일하며 단 하루 쉬는 날만 기다립니다. 우리의 삶이 더 이상 희생되지 않도록 대책 마련을 부탁드립니다.”
지난 4월 국민동의 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택배기사들의 휴식권 보장 및 과로사 방지 대책 촉구에 관한 청원’에는 이 같은 호소가 담겼다. 해당 청원은 국회 소관위원회 회부 기준선인 5만명을 넘어 환경노동위원회 심사에 배정됐다.
정부가 주4.5일제 도입을 포함한 노동시간 단축을 핵심 국정과제로 검토 중이지만 택배기사나 영세사업장 근로자 등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저임금 업종을 중심으로 한 장시간 노동 문제 해결이 선결과제라는 지적이다.
8일 노동계에 따르면 택배노조 CJ대한통운본부는 최근 CJ대한통운 대리점연합회와 ‘주7일 배송’ 잠정합의안을 도출했다. 8~9일 조합원 찬반 투표를 진행 중이다. 합의안에는 산재보험료를 사측이 내기로 한다는 점 등이 담겼다. 노조가 중앙노동위원회에 쟁의 조정을 신청했다가 철회하는 등 주7일 배송을 둘러싼 첨예한 갈등 끝에 나온 결론이다.
앞서 쿠팡 로켓배송을 필두로 ‘빠른 배송’을 선호하는 고객 수요가 커지면서 올해 1월부터 CJ대한통운이 주7일 배송을 시작했고, 지난 4월부터 한진택배도 주7일 배송을 시범 시행했다.
주7일 배송이 ‘뉴노멀’이 되면서 인력이 비교적 충분해 주5일 근무가 가능한 쿠팡을 제외하고, 현재 대부분 택배사 기사들은 주6일 이상 근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2인 1조, 3인 1조 등 조를 짜서 한 명이 여러 구역을 담당하고 번갈아 휴식을 가지는 식의 교대근무를 할 수 있지만, 그마저도 인력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불가능하다.
택배기사 A씨는 “교대근무의 업무 강도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그것도 사람이 있어야 가능하다”며 “인력 충원 없는 주7일 배송은 주7일 근무를 강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이나 지방의 영세업체에도 근로시간 단축은 비현실적인 요구다. 지난해 기준 전체 사업장의 84.7%, 전체 노동자의 36.3%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다. 이들 노동자는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도 아니다. 근로시간을 단축하려면 직원을 추가 채용해 업무를 분산시키거나 자동화, 기계화를 통해 인력을 대체할 수 있어야 한다. 구인난에 허덕이는 이들 업체에는 불가능한 얘기다. 중소기업 노동자 B씨는 “주5일 근무도 못하는 마당에 주4.5일제는 딴 세상 얘기로 들린다”고 말했다.
중소병원 등 병원보건의료업계도 열악한 인력 사정 탓에 노동시간 단축이 어려운 업종 중 하나다. 동료들의 업무 부담이 늘어나고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 것이란 우려에 육아휴직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정부는 일괄 입법을 서두르기보단 사회적 대화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입법 타임라인이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았다”며 “자발적으로 주4.5일제를 실시하는 기업의 성과 등을 보며 점진적으로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