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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서울 양천구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제80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겸 주말리그 왕중왕전 경기 중 한 선수가 이동식 에어컨 앞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다. 장종우 기자

체감 기온이 33.6도까지 치솟은 지난 7일 오후 1시께 서울 양천구 목동야구장, 투구를 마친 앳된 얼굴의 고등학생 선수가 공을 던진 팔을 ‘코끼리 에어컨’ 송풍구에 쑥 집어 넣었다. 다른 선수들은 금세 미지근해진 휴대용 얼음 주머니에 새 얼음을 채워 넣기 바빴다. 천연 잔디 대신 넓게 깔린 인조 잔디에서 넘어지면 화상을 입을 수 있어 선수들 모두 유니폼 안에 긴 팔 운동복까지 입은 채였다. 수비를 마치고 더그아웃(대기 구역)으로 돌아온 덕수고 중견수 이채훈(18)군이 기진맥진한 표정으로 전했다. “달궈진 아스팔트 위에서 야구 하는 것 같아요. 아지랑이까지 보여서 순간 집중력이 흐려졌어요.”

서울에 올해 첫 폭염 경보가 내린 이날 한겨레가 찾은 목동야구장에선 제80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청룡기 대회) 겸 주말리그 왕중왕전 16강 경기가 한창이었다. 올해 청룡기 대회(6월28일~7월12일) 경기는 16강까지 오전 9시와 11시30분, 낮 2시에 열렸다. 7월 초 이른 폭염과 무더위가 당연해진 가운데, 햇볕마저 쨍쨍한 시간대에 경기가 치러진 것이다.

한여름, 그것도 대낮에 국내 대표 고교 야구 경기가 치러지는 데는 여러 사정이 있다. 우선 9월 초 시작되는 대학 입시와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 일정에 맞추려면 여름 경기가 불가피하다고 한다. 청룡기 대회에 출전할 권역별 학교는 여름에 임박해 정해진다. 같은 이유로 대통령배와 봉황대기 등 다른 주요 대회도 7~8월에 열린다. 그렇다고 대회를 가을로 옮기면 학생 선수들의 대학 입시와 프로야구 선수 선발 절차에 문제가 생긴다. 한 고교야구 감독은 “입시와 드래프트를 미루지 않는 한, 한여름 경기는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야간 경기 또한 쉽지 않다. 서울시 체육시설관리사업소(사업소) 관계자는 “목동야구장의 경우 주변 아파트 주민들이 야구장 소음과 야간 조명에 민원을 제기하고 있어 저녁 6시 이후 경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사업소는 2023년 경기를 주최하는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에 오후 6시 전에 경기를 끝내 달라고 협조 요청 공문을 보냈다. 실제 이날 경기장 곳곳에도 “소음(응원·함성 등) 공해 이제 그만! 인접한 아파트 주민들이 힘들어합니다”라고 적힌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평일 오후 6시30분부터 프로야구 생중계가 이뤄지는 탓에 고교 야구는 낮에 생중계돼야 그나마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게 현실이다.

서울 양천구 목동야구장 안에 붙어있는 안내문. 장종우 기자

사정이 이렇다 보니 주최 쪽 고민도 크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쪽은 급한 대로 더그아웃마다 벽걸이 선풍기를 5대에서 9대로 늘리고 경기 감독관의 판단으로 3이닝마다 휴식 시간(쿨링타임)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오는 9일 이후 예정된 8강과 준결승 경기 중 오후 3시10분 예정 경기를 5시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다만 야간 경기 민원 우려가 해소된 것은 아니다. 협회 관계자는 “민원이 오면 학생 선수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취지를 충분히 설명하고 경기 무료 초청 등 상생안도 마련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학생 선수의 안전을 위해 야구계 전체가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고교야구 해설위원인 이재국 스포팅제국 대표는 “지난해 폭염으로 울산 문수야구장 프로야구 경기가 취소된 기간, 포항에서는 고교야구 대회가 강행됐다”며 “프로선수에 준하는 혹서기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황승식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성장하는 중·고등학교 선수들은 체온을 조절하는 능력도 성장 중이라 성인보다 온열 질환에 취약하다”며 “프로야구 구단이 원정을 떠날 때 프로야구 경기장을 빌려 야간 경기 위주로 편성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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