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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여름이 혹독해지고 있다. 최근 10년간 폭염일수와 열대야 일수가 크게 증가했고, 온열 질환자가 늘어나는 등 불볕더위가 도민 일상을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여름이 지나면 폭염에 대한 경각심은 금세 사라지고, 제주도의 대응은 해마다 비슷한 수준의 정책을 반복하는 데 그치고 있다. 실효성 있는 중장기 계획을 수립해 체계적으로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름이 무서워졌어요”
하귀에 사는 74세 고정혜씨는 여름이 두렵다. 더위가 숨을 못 쉴 정도로 강해졌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운전면허증을 반납하고 가까운 거리는 걷거나 버스를 이용해 생활하는데, 여름의 거리는 도저히 걸을 수 없을 만큼 뜨겁다.

고씨는 “마트나 병원처럼 자주 가는 시설이 멀리 있는 것은 아닌데 15~20분 남짓 걷는 거리도 선뜻 나서지 못할 만큼 일상이 고역”이라고 했다. 고씨는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여름이 지치고, 점점 더워지고 있다는 생각에 두려움과 무기력감을 느낀다”고 했다.

여름이 가혹해졌다고 느끼는 것은 나이 때문이 아니다. 제주의 여름이 실제 점점 더워지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제주의 폭염일수(제주지점 기준)는 67일(1996~2005년), 82일(2006~2015년), 180일(2016~2025년)로 지난 30년간 3배 가까이 늘었다.

올해 여름이 이제 시작된 것을 고려하면 최근 10년간 폭염일수는 180일에서 더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2000년 초 연중 7일이 무더웠다면, 지금은 평균 18일이나 폭염을 견뎌야 한다.

같은 기간 열대야 일수도 269일(1996~2005년), 299일(2006~2015년), 441일(2016~2025년)로 함께 늘었다.

제주도의 연평균기온은 매년 높아지고 있다. 특히 지난해에는 2월, 4월, 8~10월 지속적으로 고온을 보이며 평균기온(17.8도)·폭염일수(21.3일)·열대야 일수(63.5일)가 기상관측 사상 역대 1위를 기록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보름 빠른 6월 17일에 첫 폭염특보가 발령됐다. 열대야는 지난해보다 9일 빠른 6월 20일에 첫 발생했다.

일상을 위협하는 무더위
제주는 습한 날씨 탓에 열지수가 높다. 실제 기온보다 도민들이 더 덥다고 느낀다. 해양성 기후의 영향으로 밤 기온이 잘 떨어지지 않아 열대야 일수도 전국에서 가장 많다. 오르는 수은주만큼 온열질환자도 증가했다. 최근 10년간 매해 7월 5일까지 발생한 온열질환자 수를 보면 2016년 6명에서 올해 20명으로 3배 이상 늘었다.

폭염특보가 발효 중인 2일 경북 고령군 다산면의 한 밭에서 파 모종을 심던 농민이 얼음물을 마시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연합뉴스

이달 6일에는 오전 시간대 비닐하우스에서 일하던 40대 여성이 구토 증상을 느껴 병원으로 이송됐다. 하루 전인 5일에는 텃밭을 손질하던 80대가 쓰러져 사망한 상태로 발견됐다. 80대 어르신은 구조 당시 체온이 40도였다. 앞가슴과 얼굴에서 2도 화상이 관찰됐다. 정확한 사망 원인은 부검을 통해 밝혀낼 예정이지만, 소방당국은 온열 손상에 의한 심정지로 추정하고 있다.

제주도는 2020년 이후 매년 인구 10만명당 온열질환자 발생이 가장 많은 지역으로도 꼽힌다. 비닐하우스나 밭에서 직접 햇빛을 받으며 일하는 1차산업 종사자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같은 기간 전국 온열질환자 수도 2016년 149명에서 올해 806명으로 5배 이상 증가했다. 집계 기간을 여름 전체로 넓히면 환자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무더위쉼터는 늘렸는데”
이처럼 여름 폭염이 불편을 넘어 인명피해로 이어지고 있지만, 제주도는 여전히 실효성 낮은 대책을 반복하고 있다.

제주도 안전건강실이 지난 27일 발표한 ‘폭염 종합대책’을 보면 전담반 확대 편성, 폭염 취약계층 보호 체계 구축, 무더위쉼터 확대, 그늘막·쿨링포그 설치 정도가 앞단에 자리했다. 그 외엔 홍보물품 배부와 폭염 예방 행동요령을 안내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무더위쉼터는 올해 613곳이 가동된다. 지난해 569곳에서 44곳 늘렸다. 무더위쉼터는 여름철 폭염으로 인한 건강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정부와 지자체가 지정한 공공 냉방 휴식 공간이다.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도는 동아오츠카·제주개발공사가 제공하는 음료와 생수를 무더위쉼터 등에 비치해 폭염 취약계층의 여름나기에 도움을 준다는 계획이다.

7일 무더위 쉼터로 지정된 제주시 내 한 경로당의 출입문이 굳게 닫혀있다. 이날 오후 제주의 낮 최고기온은 31도를 넘었다. 문정임 기자

그러나 무더위쉼터는 주된 폭염 대응 정책으로 보기에 역할이 제한적이다. 제주도 전체 무더위쉼터의 70%를 차지하는 경로당의 경우 마을마다 있어 접근성이 높지만, 일반 공공기관과 달리 운영시간이 일정하지 않다.

최근 도내 일부 경로당을 돌아본 결과 무더위쉼터로 지정됐지만 경로당 앞에 쉼터를 알리는 지정판이 없거나, 낮 시간대에도 문이 굳게 닫혀 있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재난업무를 총괄하는 행정안전부가 올해부터 경로당을 ‘특정대상 이용시설’로 분류하면서 시설 관리주체가 동의한 경우에만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게 됐다. 무더위쉼터 수가 실제 무더위를 피할 수 있는 장소를 의미하지 않게 된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생수나 이온음료 등의 폭염 예방 물품은 읍면동주민센터를 통해 도내 경로당 등 기존 무더위쉼터에 배분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폭염지도, 나무 심기… 더 근본적인 대책 나와야”
제주연구원은 앞서 2019년 ‘기후 전망에 따른 제주지역 폭염 대응 방안’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에서 폭염지도 제작, 용천수 등 제주 자원을 활용한 폭염 대응 시설 마련 등 적극적인 제주형 폭염대응 종합대책 수립을 제안했다.

제주는 기후변화 영향에 의해 극한기후 변동성이 매우 높은 지역이며, 실제 폭염과 열대야 일수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보고서에는 도내 지역별 폭염 발생 특성과 여건을 분석해 읍면동별 폭염 상습발생지역과 위험지역을 분석하는 폭염 지도가 필요하다는 내용이 담겼다. 폭염 지도와 안전취약계층의 분포 지역을 비교해 폭염 대응 정책의 우선 순위와 대응 방법을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무더위쉼터, 용천수 등 일상생활 주변에 폭염 대피공간을 확대하고, 지붕이나 도로 시공 시 온도 저감을 유도할 수 있는 건축자재를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도시녹지를 늘리고 친수 공간을 조성하며 양산 쓰기 생활화 캠페인 등의 실질적인 대응 방안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호주 멜버른은 기후위기에 대응한 도시숲 전략을 수립하면서 나무의 유효 수명과 거주 주민의 연령 분포 등을 조사해 식재 사업이 먼저 추진돼야 할 거리를 선별했다. 지도에 표시된 점들의 색깔이 붉은 색에 가까울수록 위험도가 높다는 것을 나타낸다. 관련 자료 캡쳐.

2000년대 초 역사상 최악의 가뭄과 산불, 폭염을 경험한 호주 멜버른은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도시에 나무를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2011년 계획을 수립할 당시 22%였던 도심 공공영역 나무 그늘 비율을 2040년 40%로 확대해 도시 기온을 3~4도 낮춘다는 목표를 정했다.

멜버른 시는 ‘매년 3000그루의 큰 나무를 도시의 가장 필요한 곳에서부터 늘려간다’는 대원칙을 세웠다. 그 과정에서 가로수 현황과 거주민 연령 분포, 거리별 온도 등을 분석해 식재 순서를 정했다.

멜버른 시가 정한 우선순위는 ‘식재 또는 나무 교체의 계획이 잡혀 있는 거리’ ‘다른 지역보다 도시 온도가 높고, 열에 취약한 5세 미만 영유아나 74세 이상 노인이 많이 사는 거리’ ‘다른 지역보다 온도가 높은 거리’ ‘향후 10년 이내에 나무 교체가 요구되는 거리’ 순이다.

제주도 관계자는 “올해 폭염이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종합대책 기간을 예년보다 5일 당겨 5월 15일부터 9월 30일까지로 조정하는 등 비상대응 체계를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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