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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오후 8시30분, 서울 노원구 수락산역 먹자골목 인근에 어두운 색 옷차림을 한 남성들이 모였다. 검은색 슬리퍼에 반바지, 모자를 눌러 쓴 모습이 영락없는 동네 주민 같았지만 이 남성들의 정체는 노원경찰서 범죄예방대응과 A경위 등 경찰관들이었다. 이날은 노원·강북·성북·중랑·중부·용산·관악·양천·종로경찰서에서 온 12명의 형사가 함께 보도방(노래방 등에 술 접객을 하거나 성매매를 하는 여성을 공급하는 조직) 합동 단속을 벌이는 날이었다. A경위는 “몇 차례 단속 기간 동안 업주 등에게 얼굴이 노출돼 모자를 썼다”며 “범행 장면을 증거로 확보해야해서 사복 차림으로 변장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4일 저녁 서울 노원구 수락산역 먹자골목 사진. 마사지샵과 노래방, 고기집 등이 활발하게 영업 중이다. 신혜연 기자

수락산역 인근은 주거 밀집 지역이지만 주말엔 등산객과 관광객으로 붐비는 지역이다. 영상 27도에 습한 공기가 내려앉은 이날 밤에도 식사를 마치고 2차로 갈 술집 등을 찾는 사람들이 부지런히 발길을 옮겼다. 대부분의 보도방 종업원이 유흥업소와 노래방 등으로 출근하는 시간도 이때쯤이다. 골목 골목마다 술집과 마사지 가게, 노래방의 간판이 네온사인 테를 두른 채 번쩍거렸다.

A경위도 이곳저곳 장소를 옮겨가며 보도방 업주들의 동선을 따라잡으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노래방이 너무 많아 어느 곳에 종업원을 공급할지 예측하기 어려웠다. 유력한 노래방 근처에 미리 가서 기다려야 하는데, 업주가 나타날지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지난 4일 저녁 서울 노원구 수락산역 인근에서 형사들이 사복 차림으로 불법 보도방 관련 단속을 벌이고 있다. 신혜연 기자
잠복하던 중 짙은 색으로 창문을 코팅한 하얀색 스포츠유틸리티(SUV) 차량이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자 곳곳에 흩어져있던 형사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단체 채팅방에서 차량 동선 정보를 분주히 주고받았다. A경위는 동료 형사들에게 전화를 걸며 보도방 업주 차량으로 의심되는 차들의 동선을 좇았다.

하지만 종업원을 차에 태우고 이동한 뒤 노래방에 연결해주는 과정까지 전부 증거로 남기는 일은 쉽지 않았다. 곳곳에 노래방이 빼곡한 데다 다른 곳에 종업원을 내려주고 가버려서 증거를 남기기 어려웠다.

이때 단속에 성공했다는 다른 팀의 메시지가 SNS 채팅방에 떴다. A경위를 비롯해 사복 차림으로 변장해 있던 형사들은 전력 질주해 현장에 도착했다. 검거된 보도방 업주는 “먹고 살기 어려운데”라며 울상을 지었다. 노래방 업주도 “보도방과 연계되지 않으면 사실상 생계가 어렵다”고 목청을 높였다. 이날 단속으로 보도방 업주 1명과 노래방 업주 1명, 보도방 종업원 1명이 검거됐다.



개별 경찰서만으로 단속 어렵자 합동 작전
이들은 지난해부터 노원경찰서 범죄예방대응과장의 주도 아래 협업 간담회를 열고 보도방 합동 단속을 논의해왔다. 개별 경찰서의 풍속 담당 인원이 1~2명에 그쳐 단속이 어렵자 합동 단속을 꾀한 것이다. 올해 총 4차례 진행된 단속은 주로 112 신고가 들어오는 지역에서 진행됐고, 총 보도방 업주 4명과 보도방 종업원 4명, 노래방 업주 3명을 포함해 11명이 검거됐다.

보도방 업주는 관할 지역자치단체에 등록 없이 무허가 직업소개소를 운영하고 노래방에 접객부를 알선한 혐의(직업안정법 위반)를 받는다.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노래방 업주에겐 음악산업법 위반 등 혐의가 적용된다. 특히 주류를 판매한 경우 10일에서 3개월 동안 영업이 정지될 수 있고, 반복 적발될 경우 영업 허가 취소 및 영업장 폐쇄 명령도 나올 수 있다. 도우미 알선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이 내려질 수 있다. 보도방 종업원에게도 음악산업법 위반 혐의가 적용된다.

수락산역 인근 지역 주민들은 보도방 단속에 반색했다. 중학생 자녀를 둔 주민 이모(46)씨는 “밤마다 검은색 봉고차에서 여성들이 내리는 모습이 아이들 교육에 좋지 않다는 생각이라서 일부러 먹자골목을 피해서 다녔는데 단속에 나선다니 반갑다”고 했다. 노원경찰서 관계자는 “앞으로도 합동 단속을 이어갈 방침”이라고 전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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