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3법' 7일 국회 과방위 통과
민주당, 이달 내 본회의 통과 목표
방송사 이사 추천권 다양화가 핵심
시행되면 38년 만의 지배구조 변화
법 실효성에 전문가 의견 엇갈리지만
"여야 합의해야 목표 달성한다" 강조
지난달 26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 골목의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한 이재명 대통령이 '방송 3법 개정'을 촉구하며 1인 시위를 하던 이호찬 전국언론노조 위원장을 우연히 만나 대화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골자로 하는 ‘방송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는 7일 전체회의를 열고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방송3법 개정안을 차례로 의결했다. 이달 내 국회 본회의까지 통과시킨다는 게 민주당 목표다. 방송3법 개정안은 공영방송사를 정치 권력으로부터 독립시키는 것이 목표로, 법이 시행되면 1987년 이후 38년 만에 공영방송 지배구조가 완전히 바뀌게 된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정보통신방송법안심사소위원장인 김현 더불어민주당 간사가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국민의힘 불참 속 방송 3법 심사를 위한 법안심사소위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스1
방송3법, 무엇이 달라지나
방송3법 개정안은 공영방송 이사회의 이사 수를 늘리고 이사 추천 권한을 학회, 시청자위원회, 방송사 임직원 등으로 확대하는 게 골자다. 개정안에 따르면 KBS 이사 수는 현행 11명에서 15명으로, MBC·EBS 이사는 9명에서 13명으로 늘어난다. 지금까지 이사 추천 권한은 여야가 100% 갖고 있었지만, 개정안에선 국회의 이사 추천권은 40%로 낮아지고 나머지는 시청자위원회 등 외부 추천으로 진행된다. 이사 추천 단체 다양화로 공영방송에 대한 정치권의 입김을 최소화하겠다는 취지다. 현행법에서는 정권에 따라 공영방송의 이사·사장이 바뀌고, 사실상 방송이 정부에 종속된다는 비판이 지속돼왔다.
방송3법 개정안은 또 방송사 사장 선출 시 사장후보추천위원회 구성을 의무화하고, 사장 선임 시 이사 5분의 3 이상이 찬성하도록 한 특별다수제도 신설했다. 보도독립성을 위한 노사 동수 편성위원회 설치, 보도책임자 선임 시 구성원 과반의 동의를 얻도록 한 임명동의제도 법제화했다.
시각물_방송 3법 개정 전후 비교
이번 개정안은 과방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이 그동안 발의됐던 방송 3법 개정안을 통합해 만든 단일안이다. 방송 3법 개정을 거부하고 있는 국민의힘 의견은 반영되지 않았다. 언론·시민단체들은 법안을 환영했다. 방송기자연합회 등 언론현업단체들은 "공영방송에 대한 정치적 간섭을 차단하고, 시민·전문가·언론 종사자가 함께 참여하는 새로운 지배구조를 만드는 한국 언론 역사의 중대한 전환점"이라고 평가했다.
“방송 독립 위한 시도“ vs “오히려 독립성 훼손“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KBS 사옥. 한국일보 자료사진
미디어 학자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개정안이 방송의 정치화를 막을 대안으로 보는 의견도 있지만 이사 추천권 확대만으로 방송사 독립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홍원식 동덕여대 교양대학 교수는 “이사 추천 단체 다변화는 정치가 방송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기 위해 여러 필터를 두는 것”이라며 “현행법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시도해 볼 만한 법안”이라고 말했다. 조항제 부산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독자적·자율적으로 이사를 추천할 가능성을 높이자는 법 취지에 동의한다”며 “다만 운영의 묘를 살리지 않으면 국회 다수당의 의도대로만 흘러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최영재 한림대 미디어스쿨 교수는 “독일 등은 지역 대표 등 법적 근거가 있는 단체들이 방송사 이사를 추천하는데 개정안의 시청자위원회, 학회 등은 법적 근거가 없는 민간단체"라며 "결국 정권에 따라 공영방송에 낙하산 인사를 내려보내는 도구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6년 여야가 합의했던 방송 3법 개정안(박홍근 민주당 의원 대표발의)으로 되돌아가자는 의견도 있다. 이 법안은 여야 7대6의 추천으로 방송사 이사회를 13명으로 구성하고, 이사 5분의 3 이상의 동의로 사장을 임명 제청하자는 게 골자다. 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이 합의했지만, 민주당이 2017년 집권 후 입장을 바꾸면서 법 개정이 불발됐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여야의 정치적인 협상과 합의를 중시했던 법안"이라며 "당시 여야가 합의했던 만큼 이 법을 토대로 재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야 합의해야 방송 독립도 가능"
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민의힘 김장겸 의원실 주최로 열린 이재명 정부의 방송 3법 개악 저지를 위한 긴급좌담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당은 지난 1일 방송 3법 단일안을 공개하고, 이튿날 국회 과방위 법안소위에서 단독으로 법안을 통과시켰다. 닷새만에 과방위에서도 법안을 통과시킨 것을 보면 본회의 역시 속도전으로 밀어붙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야당과 합의 없이는 법안의 실효성도 보장할 수 없다고 본다.
최영재 교수는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통과시키면 새 정부에 의한 공영방송 장악이 또 시작됐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며 “방송 독립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려면 반드시 여야 합의로 통과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조항제 교수는 “합의 없이 통과시키면 정권이 바뀐 후 다시 원래 방송법으로 돌아가자는 움직임이 있을 수 있다”고 우려했고, 홍원식 교수는 “민주당은 법안의 취지는 살리되 각계각층의 의견을 더 꼼꼼히 반영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국일보
남보라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