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어딘가, 학대 받는 아이]
①탈출기: 지후의 어린 시절
8년간 학대에도 주변인 신고 없어
엄마도 폭력 시달려 아들 보호 못해
'보호관찰'로 끝난 아동보호법 처벌
마약류관리법으로 가해자 구속되며
장기간 학대받던 모자 새 삶 속으로
①탈출기: 지후의 어린 시절
8년간 학대에도 주변인 신고 없어
엄마도 폭력 시달려 아들 보호 못해
'보호관찰'로 끝난 아동보호법 처벌
마약류관리법으로 가해자 구속되며
장기간 학대받던 모자 새 삶 속으로
아동학대 피해자 지후(가명)군이 학대 가해자인 아빠에게 썼던 편지 중 일부. 지후군은 아빠에게 '저도 웃는 아이가 되고 싶다' '가족끼리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서 때리지 말아달라고 간절히 부탁했다. 원본 편지에서 일부 발췌해 글씨체 등을 변형해 재구성했다. 원다라 기자
"아빠 전 항상 겁에 질려 있어요. 아빠가 항상 매일매일 겁이 나게 해요. 간절히 부탁드릴게요. 저에게 욕, 물건 던지는 모습, 저를 때리지 마세요. 간절히 부탁드려요."
2023년 1월 경기 지역 한 아파트에서 발견된 지후(가명·현재 14세)군이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빠에게 썼던 편지다. 편지를 쓴 후 2년 뒤, 지후는
직접 112신고를 해서 경찰에 의해 구조
됐다. 경찰이 문을 뜯고 집 안으로 들어갔을 당시 내부 창문은 널빤지 등으로 꽁꽁 가려져 있었고, 지후는 벽에 다리를 올린 채 손으로 바닥을 지탱한 엎드려뻗쳐 자세를 하고 있었다. 함께 발견된 엄마는 몸무게가 30㎏ 후반까지 빠진 여윈 모습이었다. 경찰은 아빠를 체포해 아동학대 혐의로 송치했다.선생님이 멍 등 학대 징후 발견했지만···
지후는 구조 직후 지방자치단체,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에 연계돼 사례 관리 대상이 됐다. 지후가 8년이나 당해온 학대 실상은 참혹했다. 아빠는 지후를 수시로 폭행하거나, 욕설을 퍼부었다. 뿐만 아니라 밥을 먹지도, 잠을 자지도 못하게 했다. "너는 역겹게 생겼다"는 말에 "네, 저는 역겹게 생겼어요"라고 답하게 하거나, "네 엄마가 오늘 남자랑 카톡했지?"라고 묻고선 그렇다고 대답할 때까지 엄마와 나란히 무릎을 꿇고 있게 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지후는 경찰 조사, 아보전 면담 등에서
"정말 죽을 것 같은데 엄마는 못 할 것 같아서 내가 신고했다"
고 말했다. 구조 전 아동학대 사실을 '눈치챈' 사람은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이던 2019년 학교 담임 선생님이, 친구들에게 '나는 여기 파랗다'고 말하며 바지를 올려 허벅지를 보여주던 지후 몸에서 멍을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선생님의 전화를 받은 엄마가 '아빠가 조금 훈육한 것'이라고 했고, 선생님은 추가 면담이나 경찰 신고 등 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후 아빠는 머리카락이 멍과 혹을 가려주는 머리를 집중해서 때렸다. 폭력은 아빠가 사업 실패로 집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며 점점 더 심해졌다.
어린 나이에 결혼해 사회 경험이 적었던 엄마는 아빠 앞을 막아서는 것 외에는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고, 아빠가 입버릇처럼 하는 "네가 막으면 네 새끼가 죽는다"고 하는 협박이 정말 사실이 될까봐 숨죽여 살았다.
게티이미지뱅크
가해자는 보호관찰 처분 그쳐
8년이나 자행된 아동학대에 대한 죗값은 보호처분관찰과 상담 6개월뿐이었다. 재판부는 경찰이
아이를 구조한 '그날'에 대한 범죄사실에 대해서만 인정
했다. 판결문에 적힌 아동학대혐의는 "피의자는 2023년 1월 오후 5시 30분쯤 '새끼야 엎드려' 라고 언어폭력을 하고 오줌을 쌀 때까지 무릎을 꿇고 양손을 들고 있으라며 약 15분간 체벌, 엎드려뻗쳐를 약 20~30분간 시키고 휴대폰을 기어서 가지고 오라고 하는 등 피해자인 아동의 정신 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 행위를 하고 피해자의 손바닥을 아이의 자를 이용해 2회 때리는 등 아동의 정상적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신체적 학대행위를 하였다"는 내용뿐이었다.
지후와 엄마는
오랜 피해사실을 경찰 조사에서 진술했지만, 목격자나 영상과 같은 '증거'가 없다는 이유
였다.지후 엄마는 재판 결과를 본 뒤, 남편이 아이를 정말 죽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황이 심각했던 만큼 즉각 분리 대상이었지만, 남편은 지후 엄마에게 '아이를 시설로 보낼 테니 당신은 남으라
'
고 조건을 걸었기에 엄마는 한동안 그 집에서 더 남편과 지내야 했다. 남편은 보호관찰 기간 동안 상담을 받고 돌아오는 날이면 특히 더, '어떻게 아들이 아빠를 신고할 수 있냐'고 분노를 표출했다. 휴대폰까지 빼앗긴 엄마가 집 안에 갇혀 있는 동안 유일하게 바깥 소식을 들을 수 있었던 TV에선, 죽어가면서까지 부모에게 '사랑한다'고 했다는 '인천 초등생 학대 사건'이 나왔다. "저 일이 우리 일이 될 수도 있겠구나, 지후가 집에 돌아오면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절망 속에서, 뜻밖의 '반전'은 마약류관리법 덕분에 이뤄졌다. 마약 사건을 수사 중이던 경찰이 남편이 마약을 판매한 증거를 확보해 집으로 찾아왔기 때문이다. 경찰은 마약 소지·판매·투약 혐의로 아빠를 체포해 송치했다.
8년에 걸친 아동학대 혐의는 6개월의 보호관찰에 그쳤지만, 마약 관련 혐의가 밝혀지면서 남편은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수감
됐다. 아이의 속마음 "저는 병에 걸렸어요"
남편에게 놓여난 엄마는 무척 바빴다. 주어진 1년의 시간 동안 남편에게서 완전히 아이를 떼어놓아야 했기 때문이다. 지자체 공무원, 아동보호전문기관의 도움을 받아 거처를 새로 구하고 직장을 구했다. 법률자문을 받아 법정이혼까지 해냈다.
지난달 20일 자택에서 만난 지후 엄마는
"내가 아이를 지켰어야 했는데 오히려 지후가 신고한 덕분에 저도 살 수 있었다. 미안한 마음이 너무 크다"
고 했다. 지후 엄마는 요즘 매일 새벽 다섯 시면 출근길에 오른다. 오랜 기간 학대를 당해온 아이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조차 선뜻 답하지 못했다. 그저 심리상담사에게 털어놓은 첫 속마음은 "저는 병에 걸렸다"는 것이이었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고도 했다.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을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된 친부와 계모가 2023년 2월 16일 인천 미추홀경찰서와 논현경찰서에서 각각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안타까운 아동 학대 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으며, 부모에 의해 자행되는 가정 내 사건일수록 외부로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뉴스1
한창 사춘기를 만끽해야 할 나이지만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는 집 안에 누워 홀로 시간을 보내곤 했다. 무엇보다 학대를 당한 것은 자신인데, 엄마에 대한 죄책감이 컸다. 지후의 사례관리를 담당했던 아동보호기관 담당자는 "새벽부터 나가서 일하는 엄마가 고생하는데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이 큰 편이었다"며 "학대를 당한 아이들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낮아진 자존감에 자신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일상을 찾아가고 있는 아이가 감사해하는 것들은 너무도 소소하다. "
밥을 마음 편하게 먹을 수 있게 돼서 좋고, 잠을 잘 수 있게 돼서 좋아요.
" 지후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빠에게 썼던 편지에도 이렇게 적었다. "저는 가족끼리 행복하게 살며 여행도 가고 담소도 나누고 웃는 게 좋아요. 저도 항상 웃는 아이가 되고 싶어요. 아빠가 도와주세요."
※민법이 개정돼 부모라도 아동을 체벌할 권리는 없으며, 아동에게 신체적·정서적·성적 학대 등을 하면 최대 10년 이하 징역 등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아동학대가 의심되면 112에 신고하고, 아동 양육·지원 등에 어려움이 있으면 129(보건복지상담센터)와 상담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