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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AI혁명 현장을 가다〈중〉
김경진 기자
중국 상하이 도심에서 차로 1시간 거리에 위치한 외곽 지역 칭푸(青浦)구. 여의도 절반 크기(1.6㎢)로 조성된 한 호숫가 부지 위로 2량짜리 빨간색 트램이 승객들을 싣고 호수 주변을 오갔다. 축구장 225개 넓이에 배치된 다채로운 외관의 건물들 사이로는 보행로와 함께 잔디밭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겉보기에는 대학 캠퍼스나 미니 신도시를 떠올리게 하는 이곳은 실상 미·중 기술 패권 다툼의 최전선이자 2만4000명에 달하는 중국 최고 두뇌들이 모인 중국 반도체 기술의 심장부다. 우아한 건물은 고급 호텔에 들어선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뉴욕타임스(NYT)에 실린 “미래는 미국에 있지 않았다”는 칼럼으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곳, 화웨이의 ‘롄추후(練秋湖) 연구개발(R&D) 센터’다.
중국 상하이 칭푸(青浦)구에 위치한 화웨이의 ‘롄추후(練秋湖) 연구개발(R&D) 센터’. 축구장 225개 규모(1.6㎢) 부지에는 무선통신, 반도체, 클라우드 등 핵심 기술 연구단지가 들어섰다. 장진영 기자

2018년부터 본격화된 미·중 무역전쟁에도 화웨이는 살아남아 진화하고 있었다. 지난해에는 보란듯이 역대 둘째로 높은 175조원의 매출을 올렸다. 스마트폰·전기차·인공지능(AI) 분야의 성장세를 놓치지 않고 뛰어들어 성과를 냈다. 미국의 전방위 제재에도 ‘자체 기술력 확보’에 집중한 덕분이다.

지난달 30일 ‘평화 오디세이’가 찾은 롄추후 R&D 센터는 여전히 기술 굴기가 한창이었다. 센터 내 거리에는 ‘2025 플래그십 휴대폰 혁신대회’ 개최를 알리는 안내판이 눈길을 끌었다. 야근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안내 직원은 ‘9·9·6’(오전 9시 출근·오후 9시 퇴근·주 6일 근무)이 중국에선 보편적이라고 귀띔했다.

사무실에선 반팔과 반바지를 입은 직원들도 눈에 띄었다. 화웨이 관계자는 “평균연령이 31.6세로 젊지만 직원의 78%가 석·박사 학위를 소지하고 있다”며 “무선통신, 반도체, 컴퓨팅, 제품 개발 등 다양한 사업 부문이 한데 모여 다각화된 연구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화웨이 롄추후 R&D센터는 쾌적한 근무 환경을 위해 우아한 경관과 카페 등 편의시설 확충에도 중점을 두고 설계됐다. 연구원들은 호수를 중심으로 8개 역을 순환하는 트램을 이용해 단지 내를 이동한다. 장진영 기자
전 세계 AI 혁명을 주도 중인 미국 엔비디아는 최근 2년 연속 화웨이를 경쟁사로 지목했다. 현재 엔비디아는 반도체칩 설계 기업을 넘어 AI 인프라 기업으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첨단산업의 열쇠로 떠오른 AI 관련 기술·장비·서비스 시장을 선점하려는 전략이다. 이에 대응해 세계 최대 통신장비 업체인 화웨이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화웨이는 이미 다양한 분야에서 AI 전환을 주도하고 있다. 상하이 루이진 병원의 AI 보조 진단 시스템, 선전 항만의 무인 컨테이너 트럭, 사우디아라비아 태양광발전소의 AI 인버터 등이 대표적이다. 화웨이 관계자는 “AI를 실생활에서 구현하는 핵심은 네트워크 기술”이라며 “이 분야에서 화웨이는 세계 1위 경쟁력을 갖췄다”고 말했다.

미국 제재의 직격탄을 맞은 반도체 분야도 자신감을 드러냈다. 중앙처리장치(CPU)와 신경망처리장치(NPU) 2개를 결합한 신형 AI가속기, 122테라바이트(TB) 용량의 저장장치(SSD), 방열 성능을 높인 쿨링팬 등을 잇따라 소개했다. 모두 AI 서버 구축에 필수적인 제품들로, 화웨이는 자체 설계와 개발을 거쳤다고 밝혔다.

직접 제품을 살펴본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화웨이가 자국 기업과 함께 독자적인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움직임이 위협적이다”고 말했다. 앞으로 한국이 대중국 반도체 수출 감소는 물론, 글로벌 시장에서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을 갖춘 중국 반도체 제품과의 경쟁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화웨이는 생존 비법을 R&D 수치로 제시했다. 전체 직원 20만8000명 중 55%가 R&D 인력, 지난해 매출액 대비 R&D 투자 비중은 20.8%다. 삼성전자(11.6%)와 SK하이닉스(7.5%)를 크게 웃돈다. 전체 R&D 비용의 3분의 1은 수학·물리학·화학 등 순수 기초 이론 분야에 투자한다. 주완 김앤장 변호사는 “한국은 투자뿐만 아니라 연구 환경도 더 불리하다”며 “주52시간제에 발목 잡힌 한국의 R&D 현실이 떠올랐다”고 우려했다.

한국이 ‘AI 3대 강국’을 목표로 한다면 AI 인프라에 대한 준비가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최현만 전 미래에셋증권 회장은 “중국은 응용 생태계와 인프라 측면에서 압도적인 규모와 속도를 보여주고 있다”며 “이제는 기업들이 AI를 산업에 어떻게 접목시키느냐에 따라 사라지거나 거대 기업으로 바뀌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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