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 7일 국회에서 혁신위원장직을 사퇴하고 당대표 출마 선언을 한 뒤 취재진에게 사퇴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국민의힘의 실낱같은 회생 기회는 혁신위원회에 있었다. 안철수 의원이 혁신위원장에 내정돼 “사망 직전 코마(의식불명) 상태인 당을 반드시 살려내겠다”고 호언한 것이 이달 2일이다. 닷새 만인 7일 안 의원은 혁신위원장을 돌연 사퇴하고 당권 도전을 선언했다. 혁신위는 당 지도부인 비상대책위원회가 혁신위원 7명 중 6명의 인선안을 의결·발표해 정식 출범한 지 약 30분 만에 공중분해됐다. 자신이 승인하지 않은 “날치기 인선안”이라고 안 의원은 반발했고, 송언석 비대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제3자인 양 “안타깝고 당혹스럽다”고 했다. 여러모로 황당한 야당 풍경이다.
안 의원과 송 위원장은 대선 패배 책임자 인적 청산과 혁신위 구성을 놓고 부딪쳤다. 안 의원은 대선 당시 김문수 후보에서 한덕수 후보로의 교체를 주도한 권영세 전 비대위원장과 권성동 전 원내대표 출당 약속을 요구했으나, 송 위원장이 거부하자 혁신위원장직을 던진 것으로 알려진다. 안 의원이 추천한 일부 혁신위원도 퇴짜를 맞았다고 한다. 친윤계 성향의 비대위가 혁신위에 전권을 주지 않은 채 기득권을 지키며 ‘입맛대로 혁신’을 하려다 파국을 자초한 것이다.
명분을 십분 이해하더라도 안 의원 처신은 아쉽다. “인적 쇄신이 핵심이라 (비대위로부터) 미리 약속받으려 했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인적 쇄신을 포함한 과감한 혁신안을 만들어 정치력과 리더십을 발휘해 관철시키고, 이를 위해 싸우는 과정에서 당의 혁신 의지를 확인하는 것이 혁신위원장의 역할이다. 당과 보수정치의 미래가 걸린 중책을 맡아 놓고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한 것은 무책임하다. 혁신위 해체와 동시에 당대표 출마를 선언한 것도 민망할 지경이다.
결국 희생이라곤 없이 저마다 사심, 사익만 두드러진 것이 국민의힘 현주소다. 당 지지율이 20%대로 내려앉은 비상 상황인데도 책임지겠다는 사람은 없고 당대표 경선에 나오겠다는 사람만 넘쳐난다. 정부·여당이 민생·개혁 이슈를 선점하고 질주하는데도 지켜보기만 한다. 대선 패배 이후 국민의힘엔 "해체 수준으로 환골탈태해야 한다"는 자성과 주문이 쏟아졌다. 이제는 과연 고쳐 쓸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