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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크뉴스 › “국민연금처럼?” 퇴직연금 대수술, 방향이 잘못됐다! [수술대 오른 퇴직연금②]

랭크뉴스 | 2025.07.07 10:48:08 |
[커버스토리 : 수술대 오른 퇴직연금]


올해 하반기 당신의 ‘노후 지갑’ 퇴직연금의 운명을 바꿀 개혁이 시작된다. 연이은 대통령 탄핵과 정권교체로 10년 가까이 멈춰 있었던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 논의가 올해 하반기 다시 본격화될 전망이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3월 전문가 자문단을 출범시키고 법안 발의를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여당과 대통령의 연금개혁 공약까지 맞물리며 정권 차원의 개혁 과제로 재점화될 가능성도 커졌다. 어쩌면 국민연금 개혁만큼이나 중대한 퇴직연금 개혁이 당신이 모르는 사이 조용히 진행되고 있을지 모른다. 2% 수익률 뜯어보니‘2%대 수익률’ 위기의 퇴직연금이 수술대에 올랐다. 2005년 도입 이후 디폴트옵션(조건부 투자일임제도) 등으로 수익률 개선을 시도해 왔지만 이번엔 운용 주체 자체를 바꾸는 ‘기금형 제도’가 다시 부상했다. 근로자가 각자 굴리던 퇴직연금을 국민연금처럼 통합 운용하자는 방식이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3월 전문가 자문단을 출범시키고 하반기 법안 발의를 목표로 논의를 진행 중이다. 당초 6월 말까지 자문을 마무리할 예정이었지만 새 정부 출범 등에 따라 일정은 7월까지로 연기됐다.

이재명 대통령도 대선후보 시절 “퇴직연금 수익률이 물가상승률도 못 따라간다”며 개편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더불어민주당도 7월 중 관련 법안 발의를 앞두고 있다. 여당과 대통령 공약까지 맞물리면서 10년 넘게 표류하던 기금형 전환 논의에 속도가 붙는 분위기다.



문제의 출발점은 ‘2% 수익률’이다. 표면상으로 퇴직연금의 수익률은 국민연금이나 사학연금에 한참 못 미친다. 2019년부터 2024년까지 6년 평균 수익률을 보면 국민연금은 연 8.69%, 사학연금은 8.66%인 반면 퇴직연금은 2.82%에 그쳤다. 고용노동부가 ‘연금 구조 개혁의 출발점’으로 퇴직연금을 정조준할 만큼 수익률 격차는 분명하다.

이 공적연금의 간극을 줄일 해법으로 주목받는 것이 ‘기금형 제도’다. 기금형은 여러 가입자의 퇴직연금을 모아 집합적으로 운용하는 방식이다. 대표적 사례가 국민연금 방식이다. 반면 현행 제도는 민간 금융사와 기업이 계약을 맺는 ‘계약형 구조’다. 이 방식에선 가입자가 스스로 투자 상품을 선택하고 관리해야 한다.

기금형 도입을 주장하는 측은 이 ‘운용 주체의 구조적 한계’를 문제 삼는다. 금융에 익숙하지 않은 직장인들이 직접 자산 배분과 리밸런싱을 수행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결국 퇴직연금 자금이 80% 이상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묶여 있는 현실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특히 DB형(확정급여형)에서는 원리금보장형 비중이 93%에 달해 제도 도입 20년이 지났음에도 구조적 개선이 미진하다. 이에 기금형을 주장하는 이들은 전문성과 규모의 경제를 활용할 수 있는 기금형 전환이 수익률 제고의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민주당에서 퇴직연금제도 개혁 법안을 발의한 안도걸 의원도 그중 하나다. 안 의원은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으로 수익률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가입률을 높여 퇴직소득이 현재 수준의 2배 이상 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 의원은 기금별로 약 50조원 이상의 공동기금을 조성해 국민연금 수준의 장기·분산 투자 시스템을 구축한다고 했다. 운용 주체는 연금사업자 컨소시엄, 국민연금공단 위탁, 산업별 수탁법인 등 다양한 방식이 논의된다. 영국의 ‘국가퇴직연금신탁(NEST)’을 모델로 삼았다.

반면 기금형을 반대하는 이들은 우선 2%대 수익률의 실상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평균’ 수익률만 보면 국민연금이 압도적 우위를 보이지만 이는 두 제도의 운용 환경이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간과한 단순 비교라는 지적이다.

실제 같은 퇴직연금 제도 안에서도 국민연금과 유사한 자산배분전략을 구사하는 자산배분형 실적상품, 특히 TDF(Target Date Fund)의 수익률을 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대표적인 TDF2045의 경우 2019~2024년 6년 평균 수익률은 8.58%로 국민연금(8.69%)과 거의 유사한 수준이다. 특히 이 기간 중 2022년과 2023년을 제외한 나머지 4개 연도에서는 TDF2045가 국민연금보다 더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계약형 제도 내에서도 운용 전략만 잘 세우면 경쟁력 있는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자산배분형 8%, 국민연금과 같다? 저조한 수익률의 더 큰 문제는 ‘구조’다. 현재 퇴직연금 적립금의 83%가 여전히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치우쳐 있다는 점이 본질적 한계로 지목된다. 한국의 디폴트옵션 제도는 선진국과 달리 원리금보장형 상품까지 기본 선택지에 포함하고 있다. OECD 국가 가운데 디폴트옵션에 원리금보장형을 허용한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결국 가입자가 스스로 포트폴리오를 선택해야 하는 구조 속에서 원금 손실에 대한 불안감은 초저위험 상품 쏠림 현상으로 이어진다.

실제 2024년 말 기준 디폴트옵션 가입자의 85%가 연 3%대의 초저위험 상품에 머물고 있다. 반면 수익률이 높은 고위험 상품(연 16.8%)을 선택한 가입자는 전체의 15%에 불과하다. 퇴직연금 평균 수익률을 끌어내린 근본적인 원인이다.

이에 기금형을 반대하는 전문가들은 “기금형은 ‘대수술’인 반면 지금 필요한 건 ‘현실 처방’”이라고 잘라 말한다. 현행 제도 안에서 운용 환경만 바꿔도 수익률 개선은 충분하다는 지적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굳이 복잡하고 어려운 기금형 제도를 들고 나올 필요가 없다”며 “호주처럼 디폴트옵션을 제대로 설계하고 가입자는 사업자만 선택하면 자동으로 운용되는 방식이면 수익률은 지금보다 훨씬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호주의 사례처럼 가입자가 원하는 경우에만 직접 운용하게 하고 그렇지 않으면 기본 자산배분이 자동 적용되도록 시스템을 설계하면 디폴트옵션의 도입 취지를 살릴 수 있다는 뜻이다.

이 같은 제도 보완만으로도 ‘기금형 전환 없이’ 국민연금 못지않은 수익률 달성이 가능하다는 것이 업계의 현실적 판단이다. 자본시장연구원 남재우 연구위원은 “수익률 제고는 분산된 위험의 투자 포트폴리오 구축이 핵심이며 이는 외부 전문가에 의한 효율적인 간접투자기구를 통해 달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한 제도적 장치로 디폴트옵션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며 “원리금보장상품을 배제하고 위험등급별 단일 상품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밝혔다. 또 “기금형 퇴직연금제도는 민간 금융기관의 적극적인 참여와 운용 성과 중심의 경쟁 환경 조성이 전제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금형=고수익’?‘기금형 전환이 곧 수익률 개선’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표면적으로 국민연금의 수익률이 퇴직연금보다 높다고 해도 국가 간 연금제도의 운용 여건은 크게 다르다. 투자 문화와 법제도, 교육 수준, 제도 설계의 전제가 상이한 상황에서 단순 수익률 비교는 무의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다 실증적인 비교는 기금형과 계약형이 공존하는 동일 국가 내 사례에서 가능하다. 대표적 사례가 일본이다. 일본의 최근 10년(2014~2023년) 연평균 수익률을 비교해보면 계약형 퇴직연금(3.77%)이 기금형(3.63%)보다 오히려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이는 기금형이 반드시 우수한 성과를 낸다는 보장이 없으며 오히려 운용 구조나 제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제 어떻게 운용하느냐’는 운용 전략과 실행력임을 시사한다.

김성일 이음연구소장은 “‘기금형=고수익’이라는 주장은 아직 실증되지 않은 정치적 구호에 불과하다”며 “이미 지난 10년간 압도적 성과를 보여준 사업자 투자일임형 모델을 저비용으로 확대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이 큰 2030세대의 반발을 무시한 채 기금형 가입을 강제할 경우 현 정권의 지지 기반마저 흔들 수 있는 정치적 리스크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업계 한 관계자 또한 “기금형이 마치 만병통치약처럼 논의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실적배당형의 수익률 격차가 이미 좁혀지고 있다”며 “가입자의 자산배분 여건을 개선하는 방향이 더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민간 금융회사들이 모아진 퇴직연금을 집합적으로 운용할 수도 있도록 해주는 것만으로도 시장경쟁과 수익률 제고가 가능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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