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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 더 무비'로 보는 리더십 교훈 세 가지
/사진 제공=워너브라더스코리아

[서울경제]

“느린 게 부드럽고, 부드러운 게 빠르다.”


시속 320킬로미터(km) 이상으로 속도를 내며 0.1초차의 승부를 생명으로 삼는 ‘포뮬러원(F1)’에서 베테랑 소니 헤이스(브래드 피트)가 정비팀에 말한다. 처음 본 경기에서 합을 맞출 때 차량이 피트 박스에 진입해서 타이어를 교체하는 ‘피트 스탑’에 걸린 시간이 7초를 넘어섰을 때였다. 통상적으로 숙련된 피트 크루들이 네 개의 타이어를 교체하는 데 2초 남짓이 걸리는 것을 고려한다면 처참한 수치로 기록이 늦춰진 상태였다. 헤이스는 경기가 끝난 뒤 고개를 잔뜩 숙이고 있는 팀을 질책하는 대신 이 같은 말을 던졌다.

“느린 게 부드럽고, 부드러운 게 빠르다.” 이 말은 피트 크루들에게 ‘만트라’가 된다. 그들은 누구보다 점차 날렵하게 타이어 교체를 마무리하며 피트 스탑 시간을 단축한다.
(여기부터는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다)


/사진 제공=워너브라더스코리아


완성된 팀을 남기고 떠난다


최근 국내 개봉한 영화 ‘F1 : 더 무비’는 일종의 ‘버디 무비’다. 한때 천재적인 명성을 떨쳤으나 비운의 사고로 30년째 재야를 떠도는 베테랑소니 헤이스가 어느 날 미션을 받는다. 재능은 있지만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 조슈아 피어스와 한 팀을 이뤄 달라는 것. 브래드 피트가 열연한 베테랑 드라이버 소니 헤이스는 서투른 루키인 조슈아 피어스를 팀원으로 삼은 채 2% 부족한 제품인 APXGP의 머신, 조직화되지 않은 정비팀과 함께 레이스에 나선다. 두 사람은 끊임없이 충돌을 겪지만 결국에는 후배 세대를 성장하게 한다. 그 과정에서 꼴찌에 대책 없던 팀도 보다 큰 그릇을 가지게 된다. 임무를 완수한 베테랑의 선택은 어떨까. 완전히 달라진 팀을 후배 세대에게 물려준 채 유유히 트랙을 떠난다. 그가 받은 미션은 우승 트로피였지만 그가 스스로 정한 목표가 따로 있던 셈이다. 완성된 팀을 남기고 떠나는 것.

최근 실리콘밸리에서는 중간관리자 중심의 조직 구조가 빠르게 무너지면서 리더의 역할에 대해 혼란을 겪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메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 기업들이 저마다 중간관리자 역할을 줄이고 개인 기여자(Individual Contributor) 비중을 늘리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사람만을 관리하는 매니저가 때로는 정보의 흐름을 막고 막대한 소통 비용을 발생하고 조직 내 비효율의 주범이 된다는 것이다. 리더십은 이제 단순히 사람을 관리하는 일이 아니라 영향력과 시스템 설계 능력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F1: 더 무비’는 몇 가지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몇 가지 교훈을 준다.

/사진 제공=워너브라더스코리아


교훈1 개인보다는 팀의 리듬이 중요하다


소니 헤이스가 등장하기 전 꼴찌팀이었던 APXGP에서 각각의 팀의 중요성은 보이지 않는다. 코칭 스태프와 엔지니어, 피트 크루, 데이터 분석가, 홍보 담당자 등 80여명이 합을 이루지만 사실상 ‘드라이버’와 ‘비(非) 드라이버’로 나뉘어 두 명의 드라이버를 익명의 나머지가 지원하는 구조였다. 수평적인 대화나 피드백도 이뤄지지 않는다. 조슈아 피어스는 차량이 특정 구간에서 속도가 나지 않는 것을 답답해 하지만 스스로 원인을 찾기보다는 데이터 분석팀에서 이를 해결하기를 원한다. 어디에 문제가 있는 것 같은지 물어보자 “그런 것 하라고 당신들이 있는 거잖아요”라며 그가 내놓는 대답은 팀에 대한 그의 태도를 보여준다. 연습이나 시합 당일에도 그는 항상 가장 늦게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소니 헤이스가 등장한 뒤 ‘드라이버 대 비 드라이버’ 구조는 깨진다. 가장 먼저 트랙에 도착해 달리기를 하는 그는 어느 순간 엔지니어, 피트 크루들과 달리기를 시작한다. 함께 트랙을 달리는 행위를 통해 이들의 호흡은 경기 시작 전부터 맞춰진다. 몇 차례의 경기를 거치면서 APXGP 팀의 기세는 달라지기 시작한다. 소니 헤이스가 기존의 방식으로는 승부를 볼 수 없다고 생각해 ‘전투(Combat) 모드’를 전략으로 내세우자 온 팀이 ‘전투’ '전투’하며 책상을 치고 구호를 외치는 장면에서는 달라진 팀의 기세에 관객들도 흥분감이 전염되는 것을 느낀다. 이후 소니 헤이스가 주문하는 것은 단 한 가지다. 각 사람의 역할로 0.1초씩 단축시켜달라는 것. 이상적인 이야기로 들리지만 각 팀원에게 0.1초 단축의 책임을 부과했을 때 이들이 보여주는 결과물은 엄청난 시간 단축으로 이어진다.

/사진 제공=워너브라더스코리아


교훈2 과감히 플랜C로 판을 뒤집다


두 번째는 이전에는 아무도 시도하지 못한 방식으로 판을 뒤집고 이에 따른 리스크를 기꺼이 감당하는 리더십이다. 소니 헤이스는 APXGP의 기존 차량으로는 우승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단숨에 파악한다. 이에 기술 총괄인 케이트 매케나에게 차량을 보다 전투 모드로 바꿔줄 것을 요청한다. 코너에서 보다 상대 차량을 밀어 붙일 수 있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차량의 구조적 안정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차체 균형과 내구성을 해칠 수 있고 무엇보다 충돌 시 충격 흡수가 제대로 되지 않아 드라이버가 치명적 부상을 입을 위험이 있다. 이를 감수해야 하는 건 소니 헤이스 자신이다. 그는 30년 전 사고로 여전히 악몽을 꾸고 있지만 과감히 리스크에 베팅을 한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코칭 스태프에서 플랜A와 플랜B를 내놓자 가만히 이를 듣고 있던 그가 엉뚱한 대답을 한다. “우리는 플랜C로 갑니다.” 플랜C는 초반부터 ‘소프트 타이어’로 가자는 것. 소프트 타이어는 부드럽고 접지력이 뛰어나 초반 랩에서 빠르게 랩타임을 기록해 빠르게 순위 상승을 노릴 수 있다. 타이어의 온도가 빠르게 올라가기 때문에 출발 직후부터 최적의 성능을 발휘할 수 있어 워밍업도 빠르다. 다만 타이어를 자주 교체해야 해 피트 스탑에서 속도가 늦춰질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소니 헤이스는 과감히 소프트 타이어를 택하고 타이어 교체를 최소화하면서 버티고 최대한의 기록 단축을 챙긴다. 모두가 반대하는 플랜C를 과감히 밀고 나간 전략이다. 동시에 많은 이들의 사고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페널티를 얻지 않는 선에서 경기상 요소들을 추가 시간을 확보하는 데 과감히 활용한다. 이를 테면 차량 충돌로 인한 잔해를 치우기 위해 세이프티카가 출동하면 차량들이 트랙에서 모두 속도를 낮춰야 한다는 점 등을 자유롭게 활용해 페라리 등 우승팀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는 방식이다. 리더십이 창의성을 발휘하는 순간 일종의 예술적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교훈3 리더의 몰입 그 자체의 가치


30년 째 재야를 떠도는 소니 헤이스는 F1에서는 멀어졌지만 단 한 번도 레이싱의 세계에서 멀어진 적은 없다. 사막에서 드라이버를 구하는 일이든 24시간 경주를 하며 승부를 가리는 ‘데이토나24’든 그는 달리는 일이라면 어디든 간다. 차를 모는 조건을 묻는 사람들에게 그는 “돈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럼 무엇이 중요할까. 이는 영화를 관통하는 또 다른 질문이기도 하다. 처음에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던 소니 헤이스는 영화 후반부에 우승을 목전에 둔 마지막 몇 개의 랩에서 그 답을 찾아낸다.
‘몰입(Flow)’
이다.

그는 기술 총괄인 케이트 매케나에게 경기에 몰입할 때 느껴지는 감정을 이야기한다.

“이럴 때면 정말로 나는 것 같아요. 모든 게 느려지고, 잡생각이 사라져요. 오직 차와 트랙 그리고 나만 남아있는 느낌잉에요.”
관객들도 이 같은 몰입의 상태를 경험할 수 있는 씬이 있다. 조슈아 피어스의 도움으로 다른 모든 차들을 제치고 마지막 세네 바퀴를 도는 동안 소니 헤이스와 같은 차량에 탑승한 느낌으로 무중력과 무소음을 경험한다. 가장 빠르게 달리고 있지만 가장 고요한 어떤 상태를 함께 경험하는 셈이다. 극도의 몰입과 집중이 만들어낸 순간이다. 리더가 되고 나면 어느 순간 관리에 익숙해져 스스로가 잘해왔던 것들로부터 멀어져 진정한 몰입을 경험할 일이 드물다. 하지만 리더의 몰입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때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있던 브라이언 체스키 에어비앤비 창업자가 지난해 ‘창업자 모드’를 주장하며 가장 먼저 최고제품책임자(CPO) 역할로 복귀해 제품 만드는 일을 하나하나 감독하게 된 것도 이 같은 대표적인 사례다. 이는 빅테크가 많은 인재들이 스스로 가진 전문성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개별 실무 기여자의 비중을 늘리려고 하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리더가 계속해서 현업의 감을 놓지 않고 자신의 전문성으로 극도의 몰입을 추구할 수 있는 상태가 구성원 전반의 몰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결국 리더란 속도를 내는 사람이 아니라 리듬을 만드는 사람이다. 누군가의 손을 붙잡아 출발선에 세우고, 각자의 자리에서 0.1초씩 줄이게 만들고, 그 흐름이 팀 전체를 하나의 유기체로 움직이게 할 때 리더는 완성된다. 그가 떠난 자리에 남은 건 한 명의 스타가 아니라 완성된 팀이다. 기존의 리더십이 형태를 바꾸고 많은 이들이 고민할 때 어떤 팀을 만들 수 있을 지 고민하는 게 리더의 첫 고민이 되어야 한다.

“기술은 따라잡을 수 있어도 조직은 복제할 수 없다.”

회사를 키웠지만 문화를 남기지 못해 아쉬워하는 창업자가 많습니다. 문화가 없는 조직은 구성원의 입장에서도 큰 아쉬움입니다.

진짜 조직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분들을 위해 ‘오래가는 기업은 어떻게 다른가’를 다각적으로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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