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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대통령의 30일, 언론이 묻고 국민에게 답하다'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무실은 있었지만 정작 일하는 사람은 없었다. 2016년부터 9년간 자리가 비어 있던 특별감찰관 얘기다. 대통령 친인척을 감찰하는 역할인 이 자리를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조속히 채우라고 지시했다. 특별감찰관을 임명하겠다고 했으면서도 결국 임명하지 않은 문재인·윤석열 전 대통령과 이 대통령은 다른 길을 갈까.

이 대통령은 지난 3일 취임 30일을 맞아 연 기자회견에서 “권력은 권력을 가진 본인 안위를 위해서라도 견제받는 게 좋다”며 특별감찰관 임명을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지금이야 취임 한 달 밖에 안 돼서 비리를 하려 해도 시간이 없는데,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을 미리 예방하고 봉쇄하는 게 모두를 위해 좋겠다”며 “특별감찰관 후보 추천을 지금 국회에 요청하라고 해놨다”고 했다.

특별감찰관 임명은 이 대통령의 공약 사안이다. 대선 공약집엔 “대통령 친인척 등에 대한 감찰 기능을 강화하겠다”며 ▶특별감찰관 즉각 임명 ▶실질적 권한 보장 방침이 적혔다.

현행법상 특별감찰관 임명은 대통령의 의무다. 특별감찰관법에 따르면 국회가 3명의 후보자를 추천하면, 대통령은 추천한 날로부터 사흘 안에 후보자 중 한 명을 지명해야 하고, 결원이 발생하면 30일 이내 후임자를 임명해야 한다. 감찰 대상은 명확하다. ▶대통령의 배우자 및 4촌 이내 친족 ▶대통령실 수석비서관 이상의 공무원이 특별감찰관의 사정(司正) 범위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감찰 내용을 누설한 혐의로 고발당한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이 2016년 10월 28일 피고발인 신분으로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에 출두하고 있다.

당연히 지켜야 할 법적 의무를 이 대통령이 공약한 것은 전임 대통령들이 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통령 직속으로 특별감찰관을 두는 건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공약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당선 뒤인 2014년 박범계·전해철 의원 등 당시 야당 의원 주도로 특별감찰관법이 입법됐다. 이듬해 3월 박 전 대통령은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을 임명했지만 그는 처음이자 마지막 감찰관이었다. 이 전 감찰관은 우병우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 감찰과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 게이트’ 내사에 나섰다가 청와대와 마찰을 빚고 2016년 9월 사실상 해임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7년 5월 취임 직후 “특별감찰관 기능을 회복시킬 필요가 있다”면서 국회 추천을 요구했다. 여당인 민주당은 “매의 눈과 사자의 심장으로 대통령 눈치를 보지 않고 샅샅이 감시한 포청천 같은 특별감찰관을 추천하겠다”(박홍근 원내수석부대표)고 화답했다. 하지만 여야는 추천 방식을 놓고 갈등을 빚다가 이후 민주당이 특별감찰관 대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립에 집중하면서 논의 자체가 중단됐다.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가 2024년 2월 12일 오후 경남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를 방문해 문 전 대통령을 예방하고 있다. 뉴스1

민주당의 태세 전환을 이끈 건 당시 청와대였다. 2017년 12월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현재는 공수처법 처리에 집중할 시기다. 공수처가 만들어지면 특별감찰관은 흡수될 것”이라고 했다. 두 기관의 기능이 일부 중첩되니 특별감찰관이 필요하지 않다는 논리였다. 당시 여권에선 이 발언을 “문 전 대통령의 의중”으로 받아들였다. 2018년 6월 지방선거 압승을 거둔 뒤 문 전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조국 당시 민정수석에게 “민정수석이 중심이 돼 청와대와 정부 감찰에서 악역을 맡아 달라”고 주문했다. 법적으로 특별감찰관이 맡게 돼 있는 ‘악역’을 민정수석에게 본격 이양한 셈이었다.

임기 말인 2021년 5월 청와대는 4년째 공백인 특별감찰관에 대해 뒤늦은 변을 내놓았다. “국회가 여야 협의를 통해서 3명을 추천해주는 게 있어야 대통령이 임명할 것 아니냐. (후보 추천이라는) 앞의 행위가 없는데 무조건 대통령이 왜 임명 안 하느냐고 공박하면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철희 정무수석)이란 얘기였다. 하지만 야당은 “대통령이 한 차례도 국회에 추천을 공식 요청한 적이 없다”(김도읍 국민의힘 의원)고 반박했다.

〈YONHAP PHOTO-4532〉 윤석열 대통령,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 면담 (서울=연합뉴스) 홍해인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 파인그라스에서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를 만나 대화하고 있다. 이 자리에는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배석했다. 2024.10.21 [대통령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email protected]/2024-10-21 18:12:13/ 〈저작권자 ⓒ 1980-2024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

문재인 정부와 차별화를 내걸고 당선된 윤석열 전 대통령은 특별감찰관 임명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2022년 8월 김대기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은 “특감 후보가 국회에서 결정되면 100% 수용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반대하는 북한 인권재단 이사 추천과 특별감찰관 후보 추천을 연계해 진행하자는 입장을 유지했다. 핑계를 댔지만 결과적으로 ‘시간 끌기 전략’이었다.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먼저 ‘침대 축구 전략’을 폈던 민주당 역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그렇다고 법정 조직을 없앨 수도 없기에 ‘특별감찰관 없는 특별감찰관 조직’은 사무실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으로 매년 10억원에 가까운 예산을 꼬박꼬박 집행했다. 서울 종로구 청진동에 위치한 특별감찰관 사무실 임차료와 관리비 등으로 5억원가량을 쓰고, 남은 인건비 등의 예산은 다시 반납하는 식이었다. 정치권 관계자는 “그간 여야 모두 특별감찰관을 공석으로 두는 것에 대한 이해관계 일치가 있었다”며 “이 대통령이 직접 지시한 만큼 이번에 달라질지 지켜볼 일”이라고 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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