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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점심 서울 중구 평양냉면집 ‘서령’ 앞에 차례를 기다리는 방문객들이 모여 있다. 신주은 기자

서울 중구에 위치한 평양냉면집 ‘서령’ 본점 앞에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평일 낮 시간도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30팀 이상이 대기 중이었고, 식당 앞에서는 “지금 등록하시면 1시간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안내가 반복됐다. 아쉬운 표정으로 발길을 돌리는 이들도 있었다. 지난달 25일 오후 12시40분의 풍경이었다.

평양냉면집을 찾아다닌다는 직장인 박주명(27)씨는 줄을 서서 기다리며 “어제는 마포구 평양냉면집 ‘능라도’를 갔고 오늘은 이곳을 찾았다”며 “예전엔 슴슴한 평양냉면 맛을 즐기지 못했는데 요즘은 자극적이지 않은 이 맛에 꽂혔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온라인에서 공유되는 ‘평냉 맛집 리스트’를 참고해 이곳저곳을 순례하는 중이라고도 했다.

평양냉면이 ‘미식 경험’으로 소비되며 어느 때보다 인기를 끌고 있다. 6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국내 냉면 판매액은 2021년 4133억원에서 2023년 5823억원으로 약 41% 성장했다. 냉면 판매의 성장세를 이끈 것은 평양냉면이다. 식당 예약 플랫폼 ‘캐치테이블’에 따르면 지난 5월 19일부터 지난달 15일까지 평양냉면의 검색량은 함흥냉면보다 11배 많았다. 검색 이용자의 84%는 20~30대였다. 트렌드를 이끄는 젊은 층이 평양냉면에 열광하고 있다는 게 확인되는 지점이다.

평양냉면을 본격적으로 찾는 이들은 자신의 입맛과 취향도 고려하지만 음식에 담긴 전통과 정성도 탐구한다. 담백한 메밀면과 고기 육수, 동치미 국물이 만들어내는 미묘한 맛의 차이를 비교하는 진지한 분위기가 적잖이 감지된다. 식당마다 지니고 있는 개성과 역사도 평양냉면 마니아들을 끌어들이는 요인으로 꼽힌다.
서울 4대 평양냉면집 중 하나로 언급되는 ‘우래옥’의 평양냉면. 화려한 고명 없이 정갈한 모습이다. 독자 제공


온라인에서는 ‘평양냉면 계보’와 추천 식당이 정리된 ‘평냉 맛집 리스트’가 공유된다. 나름의 코스도 있다. “우래옥을 갔다면 을지면옥도 가봐야 한다”는 식의 ‘도장깨기’ 소비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서울 4대 평양냉면집으로 불리는 우래옥·필동면옥·을지면옥·장충동 평양면옥은 맛과 정통성을 두루 인정받으며 상징적인 존재로 회자되고 있다.

계보를 추적하며 순례하듯 즐기는 흐름은 평양냉면을 ‘경험하고 기록할 만한 음식’으로 만들었다. 여기에 2018년 남북정상회담에서 의전 요리로 제공되고, 2022년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상징성이 더 커졌다. 김성용 가톨릭관동대 식품과 겸임교수는 “평양냉면은 숨어 있는 보석을 찾는 듯한 음식”이라며 “세계적으로 차가운 면요리가 흔치 않은 만큼, 냉면 자체가 한국 고유의 역사성을 지닌 음식이라고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신세계본점에 입점한 ‘서관면옥’의 평양냉면. 고전 평양냉면집에 대항하는 신흥 강자로 꼽힌다. 서관면옥 제공


유통업계의 ‘평냉 맛집 모시기’는 이런 맥락에서 나온 현상이다. 신세계백화점은 지난 3월 본점 식당가를 리뉴얼하면서 업계 최초로 ‘서관면옥’을 들였다. 롯데월드몰은 4월 미슐랭 빕 구르망에 선정된 ‘서령’을 유치했다. 두 식당은 고전 평양냉면집에 대항하는 신흥 강자로 꼽힌다.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갖춘 데다 “본점에 비해 대기가 덜하다”는 입소문을 타고 젊은 층의 유입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말 서령을 찾은 김모(25)씨는 “식기와 서비스가 고급스러워서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평양냉면은 높은 가격 탓에 냉면값 상승의 주범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한국소비자원 참가격에 따르면, 서울 지역 냉면 1인분의 평균 가격은 지난해 4월 1만1692원에서 지난 5월 1만2269원으로 올랐다. 주요 평양냉면집의 가격은 1만5000원에 달하거나 더 높은 수준이다. 이에 따라 집에서 즐길 수 있는 가정간편식 제품도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풀무원은 자사 평양냉면 제품군이 2021년부터 2024년까지 연평균 13.2%의 매출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평양냉면에 대한 관심에 대해 전통을 재해석하고, 경험을 기록하려는 젊은 세대의 소비 성향과 맞닿아 있다고 분석했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평양냉면은 소셜미디어에서의 공유와 셀럽들의 호의적인 반응을 통해 일반 냉면과는 다른 이미지로 소비된다. 맛없다고 말하기 어려운 음식이라는 점도 평양냉면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며 “2030 소비의 주요 키워드인 ‘경험과 기록’에 맞아 떨어지는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평양냉면의 인기는 레트로 트렌드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이영미 명지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전통의 재조명은 ‘2025년 10대 식음료 트렌드’로 언급될 만큼 전 세계적인 흐름”이라며 “대중매체에 자주 노출되면서 젊은 세대가 호기심을 느끼는 부분도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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