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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와 윤리의 진화, 창작자의 소진은 극복 과제
[박영실의 이미지 브랜딩]


제28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 참석한 황동혁 감독. 사진=AFP·연합뉴스


“제일 먼저 홀가분합니다.” 6월 27일 ‘오징어 게임 시즌3’이 전 세계 동시 공개됐고 황동혁 감독은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시즌1을 집필하던 6년 전에는 아무 기대도 없이 시작했지만 지금 그는 세계적인 성공과 부담을 모두 짊어진 상태에서 시즌3을 마무리했다.

그가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바는 단지 서바이벌 게임의 잔혹성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게임을 통해 우리가 어떤 세계를 만들고 있으며 어떤 세계를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고 있는지를 직시하라는 통렬한 질문이었다.

시즌3은 출산과 희생, 세대 전환을 핵심 서사로 다뤘다. 주인공 성기훈이 끝내 죽음을 선택하며 남긴 마지막 대사는 ‘사람은…’이었다. 그 뒤를 채우는 건 시청자의 몫이었다. 황 감독은 이 열린 결말을 통해 ‘말보다 행동’이 더 중요하다는 주제를 다시금 강조했다.

이처럼 작품은 끝났지만 질문은 계속된다. 황 감독의 말과 행동, 심지어 무대 위에 선 그 순간의 옷차림마저도 그가 전하고자 하는 세계관의 일부처럼 기능하고 있다.

Appearance
무대 위 시그니처 옷차림, 철학을 입다


황 감독의 옷차림은 단순한 스타일을 넘어 그가 전하고자 하는 철학과 메시지를 담은 하나의 ‘비언어적 담화’다. 그는 공식 석상에서 블랙에 가까운 짙은 차콜그레이 테일러드 재킷과 이너웨어로는 화이트나 라이트 그레이 등 무채색 티셔츠를 선택해 일관되게 착용해왔다.

이 무광 재킷은 진중하고 지적인 인상을 주며 불필요한 시각적 자극을 배제함으로써 메시지에 집중하게 만든다. 넓은 노치드 라펠은 고전적이면서도 절제를 상징하고 이는 감독이라는 창조적 리더의 이미지와 절묘하게 부합한다.

전체적으로 장식 없이 미니멀한 구성은 ‘겉치레보다 본질에 집중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남긴다. 특히 이처럼 정제된 스타일은 패션 심리학의 ‘상징적 상호작용론’ 관점에서 볼 때 개인의 내적 가치와 정체성을 외부에 투사하는 도구로 기능한다.

그의 옷차림은 지배적 권위보다는 책임의 무게를 전하며 ‘게임의 심판자’가 아니라 ‘사회 구조를 응시하는 사상가’의 이미지를 환기한다. 이는 연출가로서 해야 할 역할과 동시에 시대를 통찰하는 철학자의 태도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한편 ‘2025 K-콘텐츠 서울 여행주간’ 행사에서는 리넨 체크 셔츠와 밝은색 팬츠 그리고 ‘오징어 게임’ 상징 도형이 새겨진 모자를 착용하며 대중과의 거리 좁히기를 시도한 ‘연결의 제스처’를 선보였다.

특히 모자에 새겨진 도형은 콘텐츠의 상징을 시각적으로 확장한 브랜딩 전략이었다. 황 감독의 옷차림은 장르와 문법을 넘는 시각적 언어이며 그의 철학과 창작 세계를 몸으로 ‘입는’ 비언어적 제안이자 철학적 메시지로 작동하고 있다.

6월 28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오징어 게임 시즌3' 팬 이벤트에서 배우 이정재, 황동혁 감독, 이병헌이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Behavior

조용한 지도력, 목소리보다 깊은 울림


황 감독은 인터뷰에서 늘 절제된 어휘와 낮은 목소리로 자신을 표현한다. 그는 격한 감정 없이도 날카로운 통찰을 드러낸다. 최근 서울 종로구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는 “개인의 욕망이 미래 세대를 위협한다”는 문제의식을 이야기하며 작품 속 아이 출산 장면과 부모의 희생을 연결했다.

감독으로서 그는 배우와 제작진을 ‘이끄는’ 사람이 아니라 ‘조율하는’ 사람이다. 현장에서 그가 중심에 나서기보다 출연진을 배려하며 말을 아끼는 모습은 여러 차례 목격됐다. 그는 스포일러에 대해서도 “전체의 힘은 맥락과 완성도에서 나온다”며 흔들림 없이 대응했다. 그의 리더십은 조용하지만 설득력 있는 울림을 가진다.

Communication
말보다는 세계관, 침묵으로 설득하다


황 감독은 ‘화려한 수사’보다 ‘의도된 침묵’으로 강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케이트 블란쳇의 깜짝 등장으로 관심을 모았던 시즌3 언론행사에서도 그는 “이건 미국판 암시가 아니라 오징어 게임이 세계에서 계속된다는 의미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명쾌하고 간결한 답변은 불필요한 해석을 차단하고 그의 주제를 선명히 한다.

그는 대중과의 소통에서도 거리 두기를 하면서도 꼭 필요한 주제는 분명히 던진다. “사람은…”이라는 성기훈의 마지막 대사는 그 대표적인 예다. 그가 그 이후의 대사를 의도적으로 비워둔 이유는 시청자 각자가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인간의 본성을 정의하라는 요청이자 커뮤니케이션의 궁극적인 형태다. 이는 말보다 ‘빈칸’을 통해 메시지를 강화하는 고도의 연출 전략이다.
그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구조적이다. 그는 콘텐츠 안에서 구조를 말하고 무대 위에서는 언어의 구조를 이용해 침묵과 여백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말을 덜어냄으로써 더 많은 말을 하게 하는 방식’이야말로 황 감독 소통의 정체성이다.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시리즈를 연출한 황동혁 감독. 사진=넷플릭스


브랜드의 틀을 깨라 : 서사·윤리·창작의 3중 과제


황 감독은 ‘오징어 게임’을 통해 명실상부한 글로벌 브랜드가 됐다. 그러나 그가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높다. 시즌1~3을 아우르는 성공 이후 창작자로서 그는 ‘무엇을 더 보여줄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직면했다.

첫 번째 과제는 ‘오징어 게임’ 시리즈의 반복되는 게임 구조와 시각적 장치들은 서사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이제 황 감독은 이 고착화된 서사 틀을 어떻게 확장하거나 탈피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스토리의 진화를 통해 ‘반복’이 아닌 ‘진보’로 나아갈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두 번째는 ‘세대를 위한 윤리’라는 화두의 진화다. 시즌3은 부모 세대의 희생으로 아이를 지키는 서사로 마무리됐지만 이제 관객은 그 아이가 어떤 세상을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또 다른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마지막으로, 창작자 개인으로서 황 감독은 건강과 삶의 균형을 회복하며 ‘사람 황동혁’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는 인터뷰에서 “치아 두 개를 뺐고 체중이 59kg까지 줄었다”며 쉬운 길이 아니었음을 털어놓았다.

창작의 지속가능성은 결국 ‘브랜드 유지’가 아닌 ‘철학의 지속’을 가능케 하는 생존의 조건이다. 황 감독은 지금까지 말없이 말했고 멈춤으로써 전진했다. 그의 다음 행보가 브랜드의 반복이 아니라 사유의 진화가 되기를, 그리고 그 선택이 다시 한번 우리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 되기를 전 세계가 기대하며 주목하고 있다.

박영실 퍼스널이미지브랜딩랩 & PSPA 대표·숙명여대 교육학부 겸임교수·명지대 교육대학원 이미지코칭 전공 겸임교수·<성공하는 사람들의 옷차림> 저자. 사진=퍼스널이미지브랜딩랩 & PSPA 제공


박영실 퍼스널이미지브랜딩랩 & PSPA 대표·숙명여대 교육학부 겸임교수·명지대 교육대학원 이미지코칭 전공 겸임교수·‘성공하는 사람들의 옷차림’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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