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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남 방송 중단, 인천 강화군 당산리 가 보니>
과거 소음으로 평균 70㏈ → 소음 중단에 25㏈
주민들, 소음 공세에 환청·불면증 등 피해 호소
방송 멈춰 '행복'... 언제든 재개 가능성에 '불안'
역대 정권, 남북관계 따라 확성 방송 중단·재개
주민들 "정권 상관없이 확성기 틀지 말아 달라"
전문가 "남북 모두 피해… 주민 고려해 중단을"
2일 오후 인천 강화군 송해면 당산리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야산에 설치된 북한 대남 방송 스피커(빨간색 원). 오세운 기자


"25㏈(데시벨)."
2일 오후 3시 인천 강화군 송해면 당산리에서 기자의 휴대폰 애플리케이션(앱)으로 5분간 측정한 소음의 평균 ㏈ 수치다. 이는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시냇물 소리나 나뭇잎 스치는 소리 등과 같이 매우 조용한 수준이다. 실제 북한과 불과 1.8㎞ 떨어진 이곳은 이날 참새가 지저귀는 소리만 들릴 정도로 고요했다.

당산리는 한 달 전까지만 해도 평균 소음 수치가 70㏈ 이상이었을 정도로, 북한 접경 지역 중 소음 피해가 가장 컸던 곳이다. 무엇이 한적한 시골 마을을 이토록 시끄럽게 뒤흔들었던 것일까. 다름아닌 '확성기'다. 지난해 7월 남북 관계 악화로 시작된 북한의 대남 확성기 공세는 낮과 밤,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았다. 시도 때도 없이 24시간 울려대는 확성기 소리에 당산리 주민들 삶은 황폐해졌다. 대부분이 수면제를 복용하지 않으면 잠들지도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랬던 이곳에 약 1년 만에 평화가 찾아왔다. 지난달 11일 정부가 선제적으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자, 북한도 소음 방송을 멈추며 호응한 것이다. 소음 공해에서 해방된 지 3주가 지난 시점, 당산리 마을을 찾아 일상을 회복한 주민들 목소리를 들어 봤다.

대남 방송 소음, 10m만 떨어져도 대화 힘들어



이날 당산리 마을회관에 모인 어르신 5명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어 있었다. 소음이 멈춘 뒤 다시 평온한 삶을 누리게 된 덕분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악몽과도 같았던 지난 1년을 떠올렸다. 3년 전 암 투병을 위해 조용한 당산리로 이사했다는 이모(70)씨는 이곳에서 소음으로 고통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이씨는 "소음에서 그치지 않고 연평도처럼 북한에서 포격까지 날라오지 않을까 두려웠다"고 말했다.

추모(70)씨의 경우 집에선 소음이 거의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게 들렸다. 환청이었다. 밭일을 하러 나갔다가 소음을 듣고 오면, 그 소리가 집 안에서도 귓가에 맴돈 탓이다. 실외에선 10m만 떨어져도 소음으로 인해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였다고 한다. "소음 때문에 7개월간 신경안정제를 먹었는데, 지난달부터 약을 안 받아 가니깐 약국에서 저한테 '축하한다'고 했습니다."

당산리 토박이인 박혜숙(75)씨는 어릴 적부터 '대남 확성기' 방송을 수차례 겪었지만, 이번처럼 소음이 심했던 적은 없다고 했다. 노래 가사 또는 한국 정부를 비난하는 내용 등이 흘러나온 과거 대남 방송의 소음은 참을 만한 수준이었던 반면, 지난해부터는 말로 설명하기도 힘든 정체불명 굉음이 나와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박씨는 "하도 소음을 듣다 보니 나중엔 진짜 전쟁이 나서 공습 경보가 울려도 평상시 소음으로 생각할 것 같았다"며 한숨을 쉬었다.

소음은 주민들뿐 아니라 자영업자에게도 큰 피해를 남겼다. 당산리 인근에 위치한 한 글램핑장은 소음 때문에 손님이 점점 줄면서 올해 초 결국 문을 닫은 것으로 전해졌다. 다른 숙박시설도 마찬가지다. 송해면 한 펜션의 이웃집 주민 정모(68)씨는 "최근까지 소음 때문인지 펜션 투숙객이 눈에 띄게 줄었다"며 "숙박한 손님들이 퇴실하는 날 소음 관련 불평을 늘어놓더라"라고 귀띔했다.

2일 인천 강화군 송해면 당산리에 위치한 폐교 운동장 공터. 이곳은 올해 초만 해도 글램핑 장소로 운영됐으나, 확성기 소음 문제가 본격화하면서 운영 중단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오세운 기자


"확성기 소음 피해 재발 방지책 절실"



지옥 같은 소음에서 벗어난 건 오래되지 않았다. 안효철(67) 당산리 이장은 지난달 11일 오후 6시 10분, 북한의 대남 방송 중단 순간을 똑똑히 기억했다. 당시 안 이장은 한국군이 그날 오후 2시쯤 대북 방송을 멈추자, 마을 사람들과 함께 밖에 나가 북한 쪽 확성기가 언제 꺼질지 계속 지켜봤다고 한다. 그는 "그동안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대북 방송을 꺼 달라고 수도 없이 요청했는데 듣질 않았다. 소음 피해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인데, 정권이 바뀌니까 그제야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더라"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주민들은 소음이 멈춰 기뻐했지만, 언제 또 소음이 찾아올지 모른다며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북한이 갑자기 태도를 바꿔 대남 방송을 재개할 수도 있다고 의심하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소음 피해 관련 참고인으로 출석해 무릎 꿇고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을 호소해 화제가 됐던 안미희(38)씨는 "(남북 관계) 정세 변화에 따라 언제든지 소음 공해가 다시 일어날 수 있으니, 접경 지역 주민들이 이런 일이 또 벌어졌을 때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현행법을 개정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천 강화군 당산리 거주민 안미희씨의 초등학교 2학년생 딸이 북한의 대남 확성기 방송이 방송이 멈춘 뒤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낸 그림과 편지. 안씨는 대통령실로부터 '편지를 이 대통령에게 잘 전달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안미희씨 제공


정부도 대남 확성기 방송 재개를 막기 위해 북한을 자극하는 '대북 전단 살포 행위' 등을 엄중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날 강화대교에선 강화도로 들어오는 일부 차량에 대한 경찰 검문이 진행됐다. 이른바 '대북 전단 살포 명소'로 알려진 고려천도공원에선 경찰기동대 승합차가 주차돼 있었고, 경찰관들이 지역 일대를 순찰하기도 했다. 인천경찰청은 지난달 27일 대북 전단 살포 등에 대응하기 위해 안보·경비·교통 등 관련 부서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 운영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당산리 주민들은 한목소리로 어떤 정부든 상관없이 대북 확성기를 울리지 말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확성기 소음' 피해가 더 이상 재발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의 표출이다. 한 주민은 이재명 대통령이 자주 인용하는 표현인 '흑묘백묘론'(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을 언급하면서 "지도자들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소음으로 당장 일상생활이 무너질 수 있는 자국민의 고통을 우선적으로 이해해 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2일 인천 강화군 송해면 당산리 소재 고려천도공원에 '대북 전단살포 위험구역' 현수막이 게시돼 있다. 이곳은 민간단체가 대북 전단 살포를 위해 많이 찾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오세운 기자


"구시대적 심리전 멈춰야… 관건은 남북 관계"



대북 확성기 방송은 역대 정부에서 북한의 도발에 대응하는 수단 중 하나였다. 남북 관계 양상에 따라 중단과 재개가 반복됐다. 1962년 북한이 대남 확성기 방송을 시작하자, 한국군도 이듬해 처음으로 대북 확성기 방송을 통해 대응 조치에 나섰다. 이후 남북은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을 계기로 확성기 방송을 상호 중단했다. 그러나 8년 만인 1980년, 북한이 대남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고 한국군 또한 대응 차원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다.

2000년대에 들어선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합의를 통해 남북은 상호 선전 활동을 중지했다. 그러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북한의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 도발 사건으로 인해 한국은 11년 만에 확성기를 재가동했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직후인 2016년 1월에는 이동식 확성기를 처음으로 투입하기도 했다. 그리고 2년 3개월 후인 2018년 4월, 문재인 정부는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전격 중단했다. 지난해 6월 북한의 오물풍선 살포로 인해 재개된 이번 대북 방송은 1년 만인 올해 6월에야 멈췄다.

전문가들은 확성기 방송이 양측 모두에 해를 끼치는 '구시대적 심리전'이라며 다시는 재발해선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전 세계를 통틀어 분쟁 지역에서 상대 국가에 확성기를 트는 나라는 남한과 북한 이외엔 없다"며 "'대북 전단' '대북 확성기' 등은 정전협정을 위반하는 비정상적 대응 수단인데, 우리는 이를 마치 정상적인 수단인 것마냥 써 왔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대응은 국제사회에서도 '선전 포고'로 인식되는 게 일반적이기에, 어떤 국가든 접경 지역 주민들 안전을 고려하면 실행할 수 없는 일이라는 얘기다.

관건은 결국 남북 관계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남북 간 확성기 문제는 서로가 서로에게 피해를 주기에 양측 모두 실리적 관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며 "접경지 주민들 생활을 고려하면 '확성기 방송 중단' 조치가 유지되도록 주변 환경을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짚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대북 방송을 실시하는 건 당시 정권이 북한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냉전 시대로 회귀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꼴"이라며 "확성기 공방의 직접적 피해자는 접경 지역 주민들이기에 다시는 상대방을 향해 확성기 방송을 하지 않는, 서로가 노력하는 남북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2일 인천 강화군 송해면 주민 박동서(94·파란색 원)씨가 김매기를 하고 있다. 박씨는 고령으로 귀가 어두워졌음에도 그동안 북한의 대남 방송 소음 탓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박씨 옆으로 경찰관들(빨간색 원)이 '대북 전단 살포 예방' 관련 순찰을 하고 있다. 오세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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