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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오컬트의 유행
저승사자들이 단체로 춤을 춘다니, 과거라면 코미디 프로에 나왔을 설정이다. 하지만 휘날리는 검은 도포 아래로 가죽바지와 시스루 톱을 드러내며 실제 유명 K팝 프로듀서들이 만든 노래를 ‘칼군무’와 뛰어난 가창력으로 소화하고 있다면 다른 얘기다. 관중이 점차 홀리는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 이 기이한 아이돌 ‘사자 보이즈’의 정체는 ‘악귀(데몬)’이며, 이들 뒤에서 무대효과처럼 타오르는 불꽃은 관중의 영혼을 먹어 치우려 대기 중인 최종 보스 ‘귀마’다. 지금 넷플릭스에서 전 세계적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소니픽처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얘기다. 한 편의 뮤직비디오로도 손색 없는 이 장면의 유튜브 영상은 3일 기준 조회수 1000만 회를 넘겼고, 9000개에 달하는 영어·한국어·스페인어·불어 등 다국적 댓글이 달렸다. “너무 좋다, 그냥 내 영혼 가져가라” “조공(팬들이 아이돌에게 보내는 선물)은 제삿상으로 하면 되냐” 등등. K팝과 결합한 K귀신의 힘이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중에서 악귀 아이돌 '사자 보이즈'. 이들의 곡 '유어 아이돌'은 4일 현재 미국 스포티파이에서 1위를 차지했다. [사진 넷플릭스]
수퍼스타 3인조 걸그룹 ‘헌트릭스’가 귀신 잡는 ‘데몬 헌터’로 몰래 활약한다는 설정의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지난달 20일 넷플릭스에 공개된 후 2주간 영화 부문 글로벌 1위를 지켰다. 우선, 테디 같은 실제 K팝 프로듀서들이 협업한 뛰어난 퀄리티의 노래들이 큰 역할을 했다. 헌트릭스의 ‘골든’과 사자 보이즈의 ‘소다 팝’ 등이 빌보드 및 전 세계 음원 차트에 올라 상위권을 휩쓰는 중이다. 극 중 인기곡이 현실의 인기곡이 된 것.

한국 악령의 노래, 전 세계 차트 휩쓸어
노래와 춤으로 악귀 잡는 아이돌 '헌트릭스'. [사진 넷플릭스]
'헌트릭스'의 라이벌인 악귀 아이돌 '사자 보이즈' [사진 넷플릭스]
또한 한국의 전통문화에 관심 있는 이들은 도깨비·물귀신·저승사자 같은 K귀신이 등장한 점, 대를 이어 노래와 춤으로 악귀들을 몰아내 온 데몬 헌터스의 원조가 무당들로 설정된 점, 이 애니의 최고 인기 캐릭터로 등극한 ‘호랑이과 까치’가 무속화를 포함한 조선 후기 민화에 바탕을 둔 점 등에 주목한다. 연출자인 한국계 캐나다 감독 매기 강은 “처음부터 K팝 영화를 만들려고 한 게 아니라 오래 전부터 한국 문화에 대한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었다”며 “특히 악귀 디자인이 멋질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넷플릭스 인터뷰에서 밝혔다. “‘데몬 헌터’는 대부분 숨어서 하는 일이다 보니 정체를 숨기기 위한 무언가가 필요했고 이때 K팝이 떠올랐다”며 악귀 잡는 여성 수퍼히어로를 인간적 면모를 지닌 K팝 걸그룹으로 창조했다는 것이다.

‘씬 스틸러’로 떠오른 호랑이와 까치. 조선 민화에서 모티프를 따왔다. [사진 넷플릭스]
조선시대 '까치 호랑이' 민화 중 하나인 경기대학교 소성박물관 소장 '호질도(虎叱圖)'. 지본채색, 68x74cm [사진 경기도미술관]
특히 강 감독은 원조 데몬 헌터가 무당이라는 점에 대해 “굿이라는 건 음악과 춤으로 요괴들을 물리치는 것이다 보니, 이 영화의 콘셉트와 딱 맞을 것 같았다. () 그리고 한국 무당은 거의 다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 수퍼히어로와) 좀 더 연결이 잘 되는 부분도 있었다. 어떻게 보면 굿이 최초의 콘서트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샤머니즘박물관(서울 은평구) 관장이며 평생 무속을 연구해 온 양종승 박사는 “한국인의 삶과 정체성을 이야기하는 원형적 설화를 구전으로 전승 해온 것이 바로 무속”이라며 “그러니 한국 신화·전설에서 모티프를 찾으려면 무속을 참고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한 무속이 조선시대에는 유교문화에 의해, 그 후에는 일제의 민족정신 말살 정책에 의해, 근대화 과정에선 서구적 사고에 의해 억압당했다”며 “그러나 21세기에 와서 역설적으로 과학의 발전으로 미지의 영역이 늘어나면서 그와 관련된 영의 문화에 관심이 증가하고 무속의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오컬트 판타지 웹툰 ‘미래의 골동품 가게’. [사진 네이버 웹툰]
실제로 지난 몇 년 간 무당이 일종의 여성 수퍼히어로나 해결사로 등장하는 K콘텐츠가 늘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2022년 대한민국콘텐츠대상 만화 부문 대통령상을 수상하고 지금도 인기리에 연재 중인 네이버 오컬트 판타지 웹툰 ‘미래의 골동품 가게’다. 지난해 천만 관객을 모은 영화 ‘파묘’에서는 MZ세대 무당 이화림(김고은 역)이 화제가 됐다.

최근 드라마화된 오컬트 학원 로맨스 웹툰 ‘견우와 선녀’. [사진 네이버 웹툰]
지난 달 종영한 SBS 드라마 ‘귀궁’과 최근 새로 시작한 네이버 웹툰 원작의 tvN 드라마 ‘견우와 선녀’도 소녀 무당이 주인공이다.

이에 대해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최근 몇 년 간 유행하게 된 K오컬트의 특징은 오컬트에 다양한 장르를 혼합해 근본적으로 다른 색깔을 띤다는 것이다. 본래 서구의 오컬트 영화는 굉장히 공포스럽고 기분 나쁜 뒷맛을 남기는 게 특징인데 K오컬트는 판타지 액션, 로맨스와 섞이는 경우가 많고 여기에 ‘귀궁’은 사극, ‘견우와 선녀’는 학원물을 추가로 섞었다”고 설명했다.

오컬트 판타지 로맨스 사극 ‘귀궁’의 한 장면. [사진 SBS]
K오컬트에 나오는 귀신에 대해서는 “본래 한국적인 귀신은 서구 귀신과 달리 산 사람을 이유 없이 해코지하기보다 인간적인 한을 갖고 소통을 원하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무당의 굿도 서구의 구마 의식과 달리 귀신을 달래서 보내주는 것”이라며 “그런 면에서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데몬, 특히 사자 보이즈의 리더 진우도 한국 귀신의 특성이 보인다. 국내 작품이 아닌데도(일본 소니그룹의 미국 자회사 소니픽처스 제작) 귀신의 면모에 한국적인 요소를 잘 섞었다”고 평했다. 귀신이 단순한 악이 아니라 풀지 못한 이야기와 매듭짓지 못한 감정으로 정서적 깊이를 제공한다는 것.

정 평론가는 한국 대중문화에서 무속인의 지위가 변한 것에 대해 “예전에는 무속인이 천형을 받은 사람처럼 그려졌는데 서구에서 오컬트 장르가 들어와 한국화되면서 서구 오컬트의 구마 사제가 맡는 구원자 역할을 이제 K오컬트에서는 무속인이 맡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현실에서도 MZ세대 무당들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등 무속인에 대한 시선이 긍정적으로 달라졌고, 그들이 하는 위로나 치유의 역할이 현대인에게 상당한 판타지를 주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 진우와 호랑이 더피 [사진 넷플릭스]
20세기 한국의 대표 공포 콘텐츠인 KBS TV시리즈 ‘전설의 고향’(1977~ 1989)만 해도 무당은 조연에 불과하거나 악당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무당과 무속의 이미지가 최근 몇 년 간 변화한 데는 현대미술이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일찍이 박생광(1904~1985) 등 미술가들이 한국의 원형적 설화를 전달하고 민중의 무의식을 표출하는 매개체로서 무속과 무당을 진지하게 탐구했다. 비디오아트 거장 백남준(1932~2006)은 직접 굿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다.

백남준 굿 퍼포먼스 등 무속 이미지 바꿔
지금 활동 중인 대표적인 선구자는 박찬경(60)으로, 민간신앙을 통해 한국의 굴곡진 현대사와 근대화의 한계를 고찰하는 작품을 창작해왔다. 큰 무당 김금화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만신’(2014), 6·25전쟁과 광주민주화항쟁 등의 희생자들에 대한 일종의 씻김굿 영상시 ‘시민의 숲’(2016) 등이 대표작이다. 형인 영화감독 박찬욱과 공동 연출한 단편 영화 ‘파란만장’(2011·베를린 국제영화제 단편영화부문 황금곰상 수상) 역시 속죄와 환생의 무속적 의례를 그린 작품이다.

박찬경 연출 영화 '만신' 포스터
박 작가는 최근 대중문화에서 무속 소재가 유행하게 된 것에 대해 “이미 ‘신도안’(계룡산 종교 취락에 대한 2008년작)을 만들 때 예감했다”면서 “할 이야기가 많고 우리 삶에 깊숙이 관련돼 있는데도 금기시되고 억압 됐던 주제가 결국은 폭발적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이전에 ‘분단’ 소재가 그랬다”고 평했다. 문화로서의 무속의 의미에 대해선 “무속은 마을 축제 같은 것이며 춤과 노래로 정화하고 즐기고 감정적 유대로 공동체를 유지하는 것”이라 설명하며 “현대에는 OTT나 유튜브가 그 역할을 하지만 너무 파편화 되고 고독한 형태로 이루어진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김금화 만신께서 ‘복은 나누고 한은 푸시게’라고 하셨는데 그게 한국무속의 핵심적인 메시지 아닌가 싶다”고 강조했다.

박찬경 작가가 기획한 '아득한 오늘' 전에 나온 조현택 작가 사진 '조각난 두상들' [사진 국제갤러리]
현재 박 작가가 기획한 미술가들의 그룹전 ‘아득한 오늘’이 서울 국제갤러리 한옥 공간에서 진행 중이다. 민간신앙 등을 포함한 ‘제도 밖 전통’을 통해 ‘맹목적 현대성’을 비판적으로 돌아보는 전시다. 도시 변두리에서 발견되는 민간신앙의 잔재를 추적해 사진으로 포착한 조현택의 작품, 소셜 미디어 등 현대와 공존하는 오랜 원시 신앙과 미신을 영상 매체로 탐구하는 임영주의 작품 등이 인상적이다. 임 작가는 최근 제3회 프리즈 서울(9월 3일~6일)의 아티스트 어워드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처럼 K콘텐츠는 이제 억압 됐던 귀신, 무속 이야기와 화해하고 있다. 과거의 금기를 오늘의 창조로 전환하는 문화적 전복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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