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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억 원대 빚 때문에 부부 극단 선택
개인회생, 상속 포기 몰라…자녀들 비극
공포 느껴 홀로 탈출…8월 첫 공판
지난달 2일 전남 진도군 임회면 진도항에서 일가족이 탑승한 채 바다로 돌진한 차량이 인양되고 있다. 목포해양경찰서 제공


지난달 1일 오후 2시 22분. 광주의 한 고등학교 교사가 무단결석한 학생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이 학생의 행방을 수소문하던 경찰은 이날 0시 49분쯤 학생의 가족이 탄 승용차가 전남 진도항으로 향한 정황을 찾았다. 진도항으로 달려가 확인한 폐쇄회로(CC)TV에는 이 차량이 바다를 향해 돌진하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바다에서 인양한 차 안에서는 학생을 포함해 세 명의 시신이 발견됐다. 이튿날 오후 9시 학생의 아버지이자 차량을 운전한 지모(49)씨는 광주 서구에서 붙잡혔다. 가라앉는 차 속에서 혼자만 빠져나온 것이다. 지씨만 살아남고 배우자 정모(49)씨, 큰 아들(18)과 둘째 아들(16)은 사망한 비극은 곧 세상에 알려졌다. 무슨 이유로 지씨는 일가족을 바다에 빠트려 살해했을까.

5일 이 사건을 수사한 광주경찰청 등에 따르면 지씨는 건설 현장의 철근 노동자를 감독하는 십장(十長)이었다. 십장은 소규모 인력을 직접 관리하는 책임자로 건설 현장에서는 공식적인 고용계약 없이 구두계약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다. 건설사나 하청업체는 십장에게 돈을 주고, 십장은 일당 형식으로 노동자에게 나눠준다.

지난 2월 지씨는 광주지방고용노동청에서 임금 체불로 조사를 받았다. 공사 대금을 받지 못해 자신이 고용했던 인부들에게도 임금 3,000만 원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임금 체불로 건설 현장 일이 끊긴 지씨는 대출을 받아 생계를 이어왔다. 2, 3년 전부터 전세로 살던 아파트에서 나와 원룸으로 이사하는 등 생활고를 겪었는데, 일을 하지 못하는 동안 갚지 못한 카드값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5월에는 연체된 카드 빚이 8,000만 원까지 늘었다. 제2금융권에서도 대출을 받아 체불 임금을 제외하고도 빚이 2억 원에 달했다.

이 무렵 가족들과 다툼도 잦아졌다. 아내 정씨는 10여 년 전부터 조울증 치료를 받아왔다. 5월 초쯤 정씨가 아들과 다투던 중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발언을 했고, 수면제까지 다량 복용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때쯤 지씨는 아내와 함께 범행을 공모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자신과 아내가 극단적 선택을 하면 남은 두 아들들이 채무를 떠안게 될 것으로 생각했다.

수면제 나눠 먹어비극으로 끝난 가족여행

생활고를 비관해 처자식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지모씨가 지난달 4일 광주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광주=연합뉴스


지씨 부부는 5월 26일쯤 범행 계획을 세웠다. 앞서 5월 22일 전남 무안군의 한 펜션으로 3박 4일간 가족여행을 떠나기로 약속했는데, 이 여행을 범행 실행 시점으로 잡았다. 같은 달 28일 오전 정씨는 수면제의 일종인 졸피뎀 15정을 처방받았고, 약국에서 수면제를 넣을 자양강장제도 구입했다.

범행 당일인 30일 고등학교에 다니는 지씨의 두 아들은 학교에 "가족여행을 간다"며 교외 체험학습을 신청했다. 교사는 모의고사가 코앞이라 신청을 반려했지만 두 아들은 결석을 하고 지씨 차에 올라 그날 오후 5시 27분쯤 무안으로 출발, 7시 30분쯤 펜션에 도착했다. 가족들은 하룻밤을 묵은 뒤 이튿날 오전 10시쯤 진도항으로 향했다. 비극의 장소가 진도항인 것을 감안하면 사전에 범행 현장을 답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가족들은 진도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펜션에 돌아와 조금 쉬다 오후 6시쯤 목포로 향했다. 목포에서 저녁을 먹은 이들은 오후 10시 30분쯤 목포 평화공원에 들렀다. 공원을 한 바퀴 산책한 지씨 부부는 "피로를 풀라"며 차 트렁크에서 수면제를 탄 자양강장제를 꺼내 두 아들에게 건넸다.

지씨 부부는 10여 분쯤 드라이브를 한 뒤 펜션을 향해 출발했다. 펜션으로 가던 중 두 아들이 잠들자 돌연 차를 진도항으로 돌렸다. 잠든 아들들을 태우고 1일 0시 49분쯤 다시 진도항에 도착한 부부는 자신들도 수면제를 나눠 먹었다. 10여 분쯤 대화를 나눈 부부는 오전 1시 12분쯤 차량을 몰고 바다로 돌진했다.

공포 느껴 혼자 탈출... 44시간 만에 체포



막상 범행을 실행에 옮긴 지씨는 극심한 공포감을 느꼈다고 했다. 살고자 하는 본능이었을 것이다. 지씨는 운전석 창문을 통해 혼자 빠져나왔다. 폐쇄회로(CC)TV에는 지씨가 오전 1시 53분쯤 진도항에서 멀지 않은 서망항 쪽 도로로 올라와 공용화장실로 들어가는 장면이 포착됐다. 그는 뭍으로 올라온 뒤 야산에 숨어 하룻밤을 보냈다. 이어 지난달 2일 오후 3시 38분쯤 인근 주민의 휴대폰을 빌려 자신의 친형에게 범행 사실은 숨긴 채 데리러 와 달라고 부탁했다.

형은 지씨와도 친분이 있는 지인에게 연락했다. 같은 날 오후 6시 16분쯤 약 3㎞ 떨어진 인근 마을에서 지씨는 형의 지인과 만나 그의 차를 얻어 타고 광주로 향했다. 광주에 도착해 이동하던 지씨는 오후 9시 9분쯤 서구 양동시장 인근에서 추적에 나선 경찰에게 긴급체포됐다. 범행 44시간 만이었다.

조사 결과 보험금을 노린 가족 살해는 아니었다. 부인과 두 아들 명의로 각각 건강보장보험 1건씩 가입돼 있었는데, 치료비 지원 목적의 상품이라 별도의 보상금은 없었다.

빚을 아들들에게 떠넘길 수 없었다는 살해 동기를 일관되게 진술한 지씨. 자신이 임금 체불로 구속될 것이라 걱정했을 뿐 개인 회생절차나 상속 포기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은 지난 26일 지씨를 살인 및 자살방조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지씨의 첫 공판은 오는 8월 22일 광주지법 301호 법정에서 열릴 예정이다.

한국일보는 자살예방 보도준칙을 준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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