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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GDP 5% 국방비 시대
英, 공중 핵전력 복귀 추진 서둘러
獨서도 금기 '핵 자주권' 주장 나와
서방 국가들 '이중적 태도' 논란 속
中·러·北 포함 국제사회 자극 우려
지난달 말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선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지만 극히 민감한 움직임이 있었다. 바로 핵무기 문제였다. 유럽권 나토 회원국의 3대 축 가운데 영국과 독일이 거의 비슷한 시점에 속내를 드러낸 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핵무기 보유국인 영국과 미보유국인 독일 간 입장 차이는 있지만 ‘궁극의 안보는 핵무기’라는 인식은 같았다. 핵무기 보유 ‘의도’와 ‘가능성’과 ‘의혹’을 이유로 이란을 공격했던 서방 국가들의 이중적 태도가 재확인된 셈이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런던=로이터 연합뉴스


영국은 올해 들어 사실상 핵무장 재정비 체제를 본격화하고 있다. 키어 스타머 총리가 이번 나토 정상회의 기간에 7억 달러를 들여 미국으로부터 F-35A 전투기 12대를 구매하겠다고 밝히면서 나토의 ‘핵 공유 임무’ 참여를 선언한 게 대표적이다. 영국의 공중 핵전력 복귀는 1990년대 중반 이후 공중 투하형 핵무기를 폐기하고 핵 억지 수단을 해상 전력으로 국한해왔던 패러다임 자체를 뒤집는 것이다. 이에 따라 영국은 이탈리아·벨기에·독일 등에 이어 핵무기를 항공기로 운반할 수 있는 나토 핵 공유 임무에 참여하는 여섯 번째 국가가 됐다.

스타머는 앞서 지난달 초 12척의 공격형 핵추진잠수함을 새로 건조하고 핵탄두 프로그램 성능 개발에도 나서는 내용의 ‘전략적 방위 재검토’ 보고서를 발표했다. 명분은 ‘러시아의 즉각적이고 긴박한 위험’에 대응한다는 것이었다. 보고서에는 탄약 생산능력 향상을 위한 대규모 공장 건설을 통해 7,000기 이상의 미사일·드론 등 장거리 무기를 확보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이를 위해 영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2.3% 수준인 국방비를 2027년까지 2.6%로 늘릴 방침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요구한 5% 달성 목표에 있어 프랑스와 독일보다 상대적으로 빠른 증액 계획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군사전략 변화 이상의 의미가 내포돼 있다”고 평가했다. 나토 내에서 핵 억지의 직접적 파트너가 됨으로써 미국·프랑스·영국의 ‘3강 핵축’을 형성함과 동시에 ‘포스트 미군 의존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독일에서도 그간 금기시됐던 핵전력 확보가 공개 거론됐다. 물론 핵무기를 보유하자는 게 아니라 자국 내 미국 핵무기에 대해 ‘독자적인’ 접근권을 갖자는 주장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전범국으로서 핵 관련 논의 자체가 좀처럼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던 독일에서 핵확산금지조약(NPT)을 위배하지 않되 일정 수준의 ‘핵 자주권’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옌스 슈판 독일 연합당(Union) 원내대표. 베를린=EPA 연합뉴스


특히 주목되는 건 금기를 깬 인물이 연합당(Union)의 옌스 슈판 원내대표라는 점이다. 코로나19 창궐 당시 앙겔라 메르켈 총리 정부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을 맡아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데다 ‘젊고 똑똑하고 유연한 보수’ 정치인으로 통한다. 진작부터 총리 후보감으로도 거론돼 왔다.

슈판은 자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뷔헬 공군기지에 배치된 미국 핵무기가 미국의 통제하에 운용되는 것과 관련해 “독일이 독자적으로 핵무기 접근 권한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독일이 프랑스나 영국의 핵무기 시스템에 접근하는 방안, 프랑스나 영국의 핵무기를 유럽 전체가 공유하거나 핵전략 리더십을 회원국 간 순환 구조로 운영하는 방안 등도 거론했다. 사실상 유럽의 핵 억지 체계를 전면 재편하자고 나선 것이다.

그래픽=신동준 기자


나토의 막대한 군비 증강 계획 천명과 맞물려 영국과 독일이 경쟁적으로 미국에만 의존하는 ‘핵 없는 방위전략’에서 벗어나겠다고 나선 건 극히 우려스럽다. 외견상 공인된 핵보유국이 늘어나는 건 아닐지라도 국제사회에선 ‘궁극의 안보는 핵무기’라는 인식이 훨씬 더 강화될 테고, 중국·러시아·북한·이란 등을 자극함으로써 지구촌 전체의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어서다. 자신들은 ‘궁극의 안보’를 추구해도 되고 추구할 수 있다는 이중성이 갈등과 대립을 격화시키는 건 물론 ‘치명적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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