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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의 마인드’ 핵심은 재미, 인내, 예의
재미 추구하면 자기만의 스토리 생겨
축구와 유튜브, 공부… 할수록 재미있어
메타인지? 감독의 눈으로 시선 동기화
‘말할 맛’ 나도록 들어주는 사람은 아내
유튜브 대본 직접 써, 선수 ‘까는’ 말 절대 경계

▲축구 분석과 경기 분석을 메인 콘텐츠로 하는 90만 구독자 유튜브 김진짜 Real KIM의 김진짜(본명 김찬희). 첫 에세이 ‘진짜의 마인드’는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됐다./사진=김흥구

서울대 출신 90만 유튜버 김진짜의 첫 책 ‘진짜의 마인드’를 읽었다. 삶의 본질에 집중하는 태도에 관하여, 라는 카피에 혹해서. 무엇보다 JTBC 축구 예능 ‘뭉쳐야 찬다’에서 본 그의 유니크한 플레이의 근원이 궁금해서.

안정환을 시작으로 이동국, 김남일, 박항서 등 축구계 레전드들이 어울려 팀을 이끌어가는 축구 예능 ‘뭉쳐야 찬다’에서 미드필더 김진짜의 존재감은 특별했다. 압도적인 피지컬을 갖춘 선수들 사이에서 왜소한 김진짜는 간결하고 정확한 동작으로 더 나은 공간을 만들어내곤 했다.

생계와 이상의 거리를 어떻게 연결하는가가 한 사람의 인생의 밝기와 역동성을 결정한다고 했을 때, 김진짜는 밝았다. 그의 밝음과 활력은 전염성이 강했다. 엉킨 실타래를 풀듯 영리하게 끊고 정확하게 찔러주는 김진짜의 ‘가성비’ 넘치는 플레이처럼 ‘진짜의 마인드’에는 35년 차 인생 플레이어가 실증한 성취의 노하우가 빼곡하다.

알려져 있듯 김진짜는 서울대 재학 중 축구부에서 활약했다. 졸업 후 스포츠 사이언스로 유명한 영국 러프버러 대학에서 운동생리학 석사과정을 공부하러 떠났다가, 중도에 UEFA 지도자 자격증을 따서 영국 9부 리그에서 축구팀 코치로 활약했다. 지금은 90만 구독자가 즐겨보는 축구 유튜버로 활약 중이다.

‘인간으로 태어났으니 최대한 재밌게 살아보자’라는 35살의 싹싹하고 씩씩한 남자를 만났다. 재미가 내적 동기가 되고 남의 시선이 부스터가 되어서 자연스럽게 성취의 근력이 쌓였다고 했다.

-이름이 왜 진짜인가요?

“과거에 미디어커머스 사업을 할 때 가짜 제품을 파는 분들을 많이 봤어요. 이걸 바르면 주름이 싹 없어진다, 이거 먹으면 건강이 좋아진다… 그런데 그런 제품들도 광고만 그럴듯하게 하면 당장은 팔려요. 소비자들이 혹하니까. 그런 분들 특징이 종목 자주 바꾸고 브랜드를 주기적으로 교체하고 그러다 결국 시장에서 사라지죠.

그런 사람들 보면 다이슨이나 애플 같은 브랜드가 다시 보여요. 요령 피우지 않고 찬찬히 가면서 소비자의 신뢰를 얻는 것, 그게 진짜구나. 내가 유튜브를 하면 진심을 담은 그런 ‘진짜’를 만들자. 그 열망을 이름에 담았습니다.”

▲정교한 경기 분석은 물론 ‘경기 도중 용변이 급하면 어떻게 할까?’같은 질문도 진지한 콘텐츠로 풀어낸다.

-호명사회에서 이름은 진짜 중요해요. 사회에 선포하는 자기 정체성이죠.

“맞아요. 고민이 될 때 특히 더 그런 것 같아요. 더 빠른 길, 더 쉬운 길이 없을까 싶다가도 이름을 기준으로 생각의 제동이 걸려요. 댓글에 ‘김가짜’ 이런 조롱이라도 달리면, 다시 한번 검증하고 마음을 다잡아요.”

김진짜는 2019년, 원하면 누구나 스피커가 되고 플랫폼이 되는 유튜브 세상에 진입했다. 처음엔 신제품 리뷰, 전문가 인터뷰 등을 업로드했지만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잭팟이 터진 건 손흥민 선수에 대한 영국 현지 트위터 반응을 리뷰해서 올렸을 때부터였다.

-처음부터 축구 콘텐츠로 시작하지 그랬어요?

“사실은 일부러 피해 갔어요. 제가 축구에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 지도자를 꿈꾸면서 영국 유학까지 갔잖아요. 자격증도 따고 9부 리그에서 코치 생활도 하다가 러프버러 대학교에 석사과정까지 밟았는데… 실제 경험해 보니 만만치 않아서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비유하자면 그때 저는 축구라는 첫사랑한테 버림받은 느낌이었어요.

내가 포기한 거지만 축구와 관련된 건 안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결국은 다시 축구로 돌아왔어요. 10년 동안 축구를 공부했고 그걸 바탕으로 내 나름의 분석 영상을 만들어서 올릴 때, 반응이 가장 크게 왔습니다.”

하지만 유튜브 세상은 생각 이상으로 치열한 전쟁터였다. 비슷한 콘셉트의 영상이 많아지자 김진짜는 자기만의 오리지널 콘텐츠와 제작 방식을 찾아냈다. 그 자신이 플레이어가 되어 주요 장면을 재현하고 코칭하는 영상, 그리고 축구 사진 저작권 해결이었다.

▲비글미 넘치는 김진짜의 재연 영상. 특유의 예능감이 빛을 발한다.

-터닝포인트가 있었나요?

“일단 어떤 것들은 제가 만든 영상인가 착각할 정도로 비슷했어요. 화살표 색깔, 움직임 같은 것들. 그래서 직접 제가 운동장에 나가서 디테일을 구현하기 시작했어요. 발목 꺾임, 허리 위치, 트래핑 자세… 재현 퍼포먼스를 보여줄 때도 해당 선수를 흉내 내서 캐릭터 가발도 쓰고, 코믹하게 웃기면서 하니까 점점 더 독특해졌어요.

그러다 기존에 맘대로 쓰던 해외 축구 영상 저작권이 문제가 되면서 채널이 삭제되는 일이 생겼고, 이후로 게티 이미지와 계약해서 축구 사진은 전부 저작권료를 내고 쓰고 있습니다.”

김진짜 이후로 축구 사진을 사용할 때 저작권 지불은 업계 표준이 됐다.

-뭐든 오래 끌지 않고 바로 수정하는군요?

“네. 생존해야 하니까요.”

-생존이요?

“네. 저는 생존이 중요해요. 제가 스물아홉에 결혼을 했어요. 축구 유학이며 미디어커머스 사업이며 유튜브며 할 때, 간호사로 일하면서 실질적인 가장 역할을 한 건 아내였어요. 그때까지 저는 제가 하고 싶은 거 하겠다고, 정말 꿈을 지저분하게 물고 늘어졌어요. 사업도 유튜브도 반응이 영 신통치 않으니까 아내가 그랬어요.

‘3년 동안 원하는 걸 해봐. 3년이 되고 2년이 되고 마지막 1년이 남았을 땐 한 달에 3백만 원이라도 벌어야 해. 그게 안 되면 취직하거나 체육 선생님으로 진로를 바꿨으면 좋겠어.’”

서른 살 즈음이었고 ‘생존’이라는 단어가 턱끝까지 추격한 느낌이었다고 했다. 그 밤에 아내 몰래 베개에 얼굴 파묻고 울었다. 시설 설비 일을 했던 아버지, 30년간 미용실을 했던 어머니가 ‘세상에 하고 싶은 거 하며 사는 사람 많지 않다’고 꿈을 만류할 때도 ‘재밌는 일 하면서 살겠다’는 고집을 꺾지 않았던 그였다.

▲김진짜는 초등학교 때까지 엘리트 축구를 했다. 군포의 산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를 거쳐 그토록 바라던 서울대학교 체육교육학과에 입학했다./사진=김흥구

-생계와 이상의 거리를 어떻게 연결하는가가 한 사람의 인생의 밝기와 역동성을 결정합니다. 당신은 재미를 밧줄처럼 붙들었군요.

“그게 제 기질이었던 것 같아요. 재미없는 일은 못 하는 사람.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축구를 너무 좋아했고, 중고등학교 때도 친구들이랑 팀 짜서 경기할 때가 제일 신이 났어요. 재밌게 하고 싶은 걸 하려면 일단 대학을 잘 가야겠구나, 공부도 그렇게 동기부여가 돼서 했어요.

친구들이 “찬희(김진짜 본명)는 축구도 공부도 곧 잘하는 아이’라고 봐줬는데, 봐주는 대로 살고 싶었어요. 결국 그 모습이 제 정체성이 됐어요.”

-축구와 유튜브 그리고 공부의 공통점이 뭐죠?

“알면 알수록 재미있다는 것. 그런데 공부는 대체로 투자한 만큼 보상을 받는데 축구는 안 그런 것 같아요. 더 어렵고 컨트롤하기 힘들죠. 격주로 수요일마다 JTBC 축구 예능 ‘뭉쳐야 찬다’ 경기를 녹화하는데, 경기 전날엔 컨디션을 위해 무조건 하루를 푹 쉬거든요. 충분히 운동량을 채우고 준비가 돼 있어도 실전에선 부진할 수 있어요.

그런 면에서 공부는 좀 더 정직한 거 같아요. 예전에 90년대 수능 만점자가 인터뷰에서 ‘공부가 너무 재밌다’고 했어요. 공부는 인류가 적립해 온 지식 중에 당대의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만 정리해서 전수하는 거라서, 그걸 차근차근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고요. 인류가 축적한 지식을 알아간다는 그 느낌이 중요한 거 같아요. 점수를 높이려는 목적보다 알아가는 즐거움에 대한 자각이 있다면...”

-공부는 즐거울 수 있지만… 혹시 수학도 즐거웠나요?

“(손을 내저으며)아니요. 수학은 정말 힘들었어요. 연세대학교를 다니다 서울대학교에 가기 위해 시험을 다시 치르기로 결심했을 때, 심리적으로 다 괜찮았지만 수학을 다시 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수학은 오로지 목표에 대한 열망 때문에 했어요. 정말 하기 싫었는데, 이것만 버티면 된다, 꾸역꾸역 가보자…

지금 생각하면 미숙한 나이인데도 저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생각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지금 한 3개월만 고통을 견디면 남은 인생이 좀 극적으로 변화될 수 있겠다… 저는 서울대 체육교육학과에 대한 열망이 정말 강했어요. 축구와 공부를 맘껏 할 수 있다니… 수능 만점을 받아도 나는 저 길로 가겠다! 그랬어요.”

▲재미있는 것을 찾아 올인한 지략가 김진짜.

-결국 ‘서울대 출신 90만 유튜버’라는 당신의 타이틀은 엘리트 능력주의를 증명하는 지표로 대중에게 어필하고 있어요. 실제 유튜브로 성공하는데 서울대라는 학력이 필요할까요?

“하하. 아니요. 이 일을 하기 위해 좋은 대학을 나와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학을 가지 않고 당장 유튜브를 시작해도 돼요. 하지만 학력이 주는 후광효과는 있어요. 축구 얘기를 쉽고 재밌게 풀어내는 사람인데 공부도 잘했나보다… 대중의 인식이 플러스가 됐어요.”

-AI가 나보다 똑똑한데 왜 대학을 꼭 가야 하냐는 아이들의 질문에는 뭐라고 답하겠어요? 참고로 저는 이렇게 얘기해요. 좋아하는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장기간의 수련이 필요한데 그 수련의 기본과 태도를 익히는 공간이 아직까지는 학교, 공부, 대학 입시라고. 지식 그 자체보다 문제해결 능력과 인내심, 성취의 기쁨을 경험하는 시간이라고요.

“맞아요. 공부를 하는 이유는 책임감과 꾸준함을 몸에 배도록 하는 거예요. 저는 제 두 아들도 이 비밀을 깨닫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썼어요. 공부와 태도의 연관성을 저는 사회생활 하면서 절감했습니다. 일 자체는 대학을 안 나와도 잘할 수 있지만,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했던 그 ‘열심’이 이 일을 지속할 수 있게 했어요.

대본을 쓰고 영상을 만들 때 저는 자신을 정말 고통스러울 정도로 밀어붙입니다. 그런데 그게 중학교 2학년 중간고사를 준비하던 제 모습과 너무 똑같아요. 조금 부족하면 ‘엄마, 저 새벽 4시에 깨워주세요’하고 마지막까지 밀고 늘어지는 태도가 지금까지 이어져요.”

-공부든 일이든 잘하고 싶은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은 김진짜만의 노하우가 있습니까?

“저는 무슨 일이든 목표를 잘게 쪼갰어요. 책 한 권 다 읽기보다 목차만 보기. 무엇보다 학창시절부터 제가 썼던 방법은 단권화와 누적 복습이에요. 다양하게 흩어진 정보를 한 권의 공책에 몰아서 정리했고, 암기해야 할 땐 2~3장 나갔다가 다시 앞으로 가서 또 보기를 반복했어요. 그 방법으로 힘든 입시도 치렀고, 군대 있을 때는 하루도 안 되는 시간에 A4지 10장 분량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외운 적도 있어요.”

따지고 보면 뇌의 기억력도 근육의 암기력도 근본은 다르지 않다. 불평 없는 반복은 효율적 루틴이 되고, 힘듦을 수용하는 묵묵함은 인격과 근육의 성장 시스템을 만들어낸다. 자연의 원리가 그렇듯, 반복과 재생 말고 더 빠른 답은 없다.

▲"공부를 하는 방법이 결국 좋아하는 일을 잘 해내는 방법이었어요" /사진=김흥구

-축구 얘기를 해보지요. 재능과 노력, 좋은 운과 나쁜 운 등 전체적인 변수를 고려했을 때, 우리는 인생 그라운드에서 각자의 포지션을 부여받습니다. 당신이 맡은 수비형 미드필더라는 자리는 어떤 자리인가요?

“수비형 미드필더는 경기장 가운데서 온갖 궂은일을 해요. 상대 팀 에이스를 괴롭히고 역습을 끊기 위해 파울도 자주 합니다. 원래 제 기질은 평화주의라 주말 조기 축구에 가서 경기할 때는 상대 선수와 몸싸움도 안 해요. 그런데 ‘뭉쳐야 찬다’ 녹화할 때는 달라요. 거기선 이겨야하기 때문에 누군가 그 역할을 해야 하죠. 파울 의도가 없었어도 역습을 저지하려다, 순간 나도 몰래 상대의 발을 걷어차서 욕을 먹어요.”

-자꾸 경고받으면 위축되지 않던가요?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저희 수비수들이 경고받는 것보다 제가 받는 게 훨씬 나아요. 제가 상대편 공격수를 방해하고 파울로 끊으면 제 뒤에 수비수들이 편하게 막을 수 있어요. 어떤 조직이건 팀 게임을 할 때는 각자의 롤이 있는 거예요.

저는 패스를 뿌려주고 역습을 끊어주는 게 제가 가장 잘하는 일이에요. 저희 팀에 최종우라는 공격수가 있는데 공을 너무 잘 차요. 그런데 팀이 공을 뺏겼을 때 그 친구도 수비하러 내려와야 하잖아요. 그러면 체력이 빨리 닳아요. 제가 그랬어요. ‘종우야 니가 수비하러 내려와 주면 좋지만, 조금 힘들면 천천히 내려와도 돼. 내가 조금 더 뛸게.’

우리 팀에 또 이용우라고 아주 빠르고 돌고래처럼 힘 좋은 선수도 있어요. 제가 용우처럼 빠르지 않고 종우만큼 공을 잘 차지 못해서 그 역할을 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그들이 내려오기 전에 더 많이 뛰고 더 부딪혀서 막아줘서 그들이 좀 더 편한 호흡으로 재능을 펼친다면 우리 팀의 승률이 올라가는 거거든요. 저는 우리 팀이 이겼으면 좋겠고 그게 승률을 높이는 길이에요.”

-이기는 게 그렇게 중요한가요?

“아니요. 다만 제가 이기는 걸 좋아해요. 저는 정말 이기는 걸 본능적으로 좋아합니다. 단적으로 우리 팀이 골을 넣으면, 선수들은 다 달려가서 골 넣은 사람과 세레모니를 해요. 저는 그 자리에서 물을 마시거나 호흡을 정리해요. 왜냐하면 그 선수들이 세레모니하느라 전력 질주해서 갔다 오면, 경기 재개될 때 다시 뛰기 힘들고 그때 골을 먹힐 수 있어요. 팀원들이 못 뛸 때 제가 미친 듯이 수비하러 뛰려고 저는 세레모니를 참아요. 골을 넣으면 항상 그다음을 생각해요. 이기고 싶어서, 방심하다 따라잡힐까봐.”

▲그라운드 전체의 판을 읽는 김진짜의 전략적 파울.

-플레이어가 되면 어쩔 수 없이 시선이 좁아져요. 어떻게 하면 전체를 볼 수 있지요?

“잘 보려고 노력하지만 잘 안 보여요. 그래도 경기 상황을 객관적으로 실시간 읽으려고 해요. 루이 판할이라는 세계적인 명장이 있어요. 맨유, 바이에른 뮌헨, 바르셀로나, 네덜란드 대표팀 다 감독하셨는데, 그분이 주장을 뽑는 기준이 있어요. 나이가 많은 선수, 오래 있었던 선수, 가장 잘하는 선수가 아니라 레퍼런스 코칭이 가능한 선수예요.

감독이 하고자 하는 축구를 현장에서 바로 반영해서 다른 선수들을 코칭할 수 있는 선수를 주장으로 씁니다. 지금 맨시티 최고의 감독으로 퍼거슨과 겨루는 펩 과르디올라가 루이 판할 감독이 이끌었던 바르셀로나팀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면서 주장 역할을 했었어요.

제 입으로 말하긴 부끄럽지만, 저희 팀 골키퍼 코치가 제가 그런 역할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감독의 눈으로 시선을 동기화해보면 가장 중요한 공간은 어디인가요? 골문 앞?

“아니요. 제 생각엔 골키퍼 앞 수비수인 센터백 앞 공간이요. 그 공간이 제일 중요해요. 미드필더가 젖혀져서 상대 공격수가 수비수랑 마주 보게 되면 끝이에요. 센터백 앞 공간을 얼마나 든든하게 지키느냐가 축구에서 가장 중요해요.

제가 타고난 신체 능력은 떨어져도 수비형 미드필더로 뛸 수 있는 이유가 그거예요. 슈팅 길, 패스 길을 보는 거죠. 상대 공격수가 중거리 슛을 때리려고 할 때, 직선거리로 달려가서 막아서지 않고 둥글게 이동해서 아예 슛을 못 때리도록 해요. 앞의 공간만 뺏으면 한번 피해서 찰 수 있지만, 원거리에서 차단하면 아예 슛을 못 때려요. 달려갈 때 미세한 각도 하나만으로 골이냐, 아니냐가 결정돼요.”

-킬 패스, 전환 패스, 뇌지컬, 중원의 지략가라는 세간의 평가에는 만족하나요?

“만족합니다. 저는 누군가의 패스를 받는 쪽보다 빠르고 잘하는 친구들에게 찔러주는 역할이 맞는 것 같아요. 제가 메시처럼 빠르게 돌파하거나 손흥민처럼 저돌적인 플레이를 좋아했다면 그 방향으로 노력했겠지만, 저는 어릴 때부터 지단을 좋아했어요.

저는 약하고 느리다 보니 지단처럼 좀 부드럽게 차는 걸 좋아했어요. 어릴 때 누구를 롤모델로 삼느냐에 따라갈 길이 정해지는 것 같아요. 짧게 짧게 찔러주다 뒷공간으로 멀리 킥을 때려주려고 해요.”

▲“아버지는 시설 설비, 어머니는 30년 동안 미용실을 하셨어요. 어머니는 지금도 청소 일 하시는데 너무 자랑스러워요.”/사진=김흥구

-확실히 에너지 효율이 높은 플레이죠. 수시로 대화하는 콜 플레이와 빠른 사과도 보기 좋았습니다. 강한 승부욕이 일으키는 불협화음을 최소화한달까요.

“축구가 사람 됨됨이를 연마하는 데 진짜 좋은 스포츠예요. 어릴 때부터 축구를 하면서 배운 게 그거예요. 상대가 정말 다치지 않기를 바라면서 일으켜 격려하고요. 심판 선생님께는 정말 호기심을 갖고 물어봐요. ‘이게 왜 파울이 되고 안되는 건지’...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끼리 대화하는 거죠.

초등학교 때부터 패배를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을 익혔고, 그래서 저는 경기 때 흥분을 잘 안 해요.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하죠. 옐로카드 받아도 인사하고 상대 선수가 쥐 나면 스트레칭해주고.”

-재미와 함께 예의를 잃지 않는 게 중요하군요.

“맞아요. 저는 그래서 오래 할 수 있었어요.”

재미를 좇아서 스토리가 생겼고, 예의를 지켜서 운이 좋아졌다고 했다.

“꽉 막히고 간당간당할 즈음에 한 번 더 치고 나갔을 때 빵 터졌어요. 축구 지도자 생활도 그렇고 축구 동영상도 그렇고. 조금만 더 해보자, 조금만 더해보자… 그런데 그게 재미있으니까 그럴 수 있어요.”

-심리학에서는 그 상태를 ‘최선의 고통’이라고 부르지요. 낯선 곳의 문을 두드릴 때도 두렵지 않던가요?

“아뇨. 두드리는 게 어렵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했어요. 너무 설레고 너무 즐거웠어요. 영국에서 하부 리그팀 코치 기회를 얻은 것도 용기 내서 먼저 제안했기 때문이에요. 180개 프리미어 리그 팀에도 전부 이력서를 넣었고, 레이턴이라는 지역에 살 때는 주변에 4부 리그 팀 리셉션에 찾아가 부탁했어요. 이 이력서를 수석코치한테 전해달라고요.

저만 그런 게 아니에요. 이강인 선수가 있는 파리 생제르맹팀에 코칭 스태프가 되고 싶어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365일 훈련장을 찾아갔다는 일본인 코치 지망생도 결국 좋은 기회를 얻었다고 들었어요. 안성재 셰프도 미국 최고의 일식집에서 일하고 싶어서, 문턱이 닳도록 찾아가고 전화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면서요.

사람들은 남들과 비슷하게 살면서 안도하지만, 또 다르게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해요. 축구 좋아하는 사람들은 선수로 못 뛰어도 지도자나 분석관, 심사위원 등등 뭐라도 하고 싶어 해요. 그것도 안 되면 집에서 축구팀 운영하는 게임이라도 하죠. 제 스토리를 좋아하는 분들이 하는 말이 ‘나는 집에서 꿈만 꿨는데 형은 진짜로 했구나!’예요. 저는 정말 구체적이고 고유한 저의 재미를 좇았는데 그게 결국 스토리가 됐어요.”

▲구체적이고 고유한 재미를 좇아 살아온 김진짜의 유니크한 이야기 ‘진짜의 마인드’.

-영국에서 9부 리그 코치를 할 때는 어땠습니까?

“성인 아마추어팀이었는데 처음엔 웬 동양인이 와서 코칭을 한다니 의심이 많았어요. 제가 항상 지난 경기에서 보완할 걸 개인별로 디자인해 주고 반복해 주고 열심히 하니까 점점 믿어줬죠. 경기 끝나면 라커 룸에서 얘기하고 같이 샤워하고 펍에 가서 맥주 마시고… 단톡방에서 ‘너의 훈련이 차이를 만들었다’는 문자를 받고 진짜 뿌듯했어요. 결국 내 역할을 해냈구나…”

재미와 예의라는 엔진으로 리스크를 낮췄다고 해서 좌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책에서 가장 기이한 대목은 그가 고교 시절부터 몇 년간 낭독 공포증을 앓았다는 부분이었다.

-상태가 심각했나요?

“음… 모두가 저를 비웃는 것 같아서 학교도 가기 싫고 자퇴를 하려고 했어요. 특정 상황에 대한 공포가 극심해진 거죠. 정규 수업 시간에 책을 읽어보라고 할까 봐 시험 기간이 계속 이어지길 바랄 정도였어요. 수업 시간에 발표를 피해 가면서 어찌어찌 졸업하고 대학에 왔는데, 그 상황에서 빠져나오고 싶었어요. 극복해 보자, 부딪혀보자, 결심하고 교수님께 쪽지를 보냈어요.

트라우마에 직면하고 싶으니 낭독을 시켜달라고요. 교수님이 짧게 한 줄씩 읽히고 과분한 칭찬을 해주셔서 차츰 자신감을 찾아갔어요. 대학교 3학년 때 발표 즈음에 감이 왔어요. 내가 완전히 낭독공포에서 벗어났구나. 너무 행복했고 짜릿했어요. 온몸의 세포가 환호하는 것 같았습니다.”

낭독공포증을 이겨냈기에 지금이 있다고 했다. “엄청난 전환점이 됐죠. 내가 이것도 극복했는데 못할 게 뭐 있나 싶은… 그때 이겨내지 못했으면 카메라 앞에도 못 섰죠. 정말 처절하게 했습니다.”

이후 그는 영국에서 영어로 축구를 가르쳤고 축구 해설위원으로 생방송 카메라 앞에 섰다. 해외 축구 스타들을 영어로 인터뷰했다. 맨시티 선수들과 영어 인터뷰를 진행할 때는 지금도 혼자서 머릿속으로 리허설을 100번쯤 반복한다.

▲영어와 축구, 재담과 논평, 퍼포먼스를 깔끔하게 송출하는 성실한 김진짜. /사진=김흥구

-지금은 언어와 언어 사이에 잡음이 거의 없습니다.

“지금처럼 말하기 위해서 평소에 생각을 정말 많이 해요. 어디서나 제 의견을 막힘없이 얘기하려면 준비되어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아내와 대화를 많이 해요. 상대에게 설명하면서 핵심을 정리하는 ‘공부법’과 유사해요. 특정 주제로 계속 대화하면 생각이 정리되거든요. 감사하게도 아내가 잘 들어주고 적절한 제동을 걸어줘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채널인 유튜브 콘텐츠를 설계할 때, 무엇을 가장 신경 쓰나요?

“유튜브가 좀 자리 잡았을 때 고민했어요. 캐릭터로 갈 것인가, 콘텐츠로 갈 것인가. 소스를 안에서 찾을지 밖에서 찾을지. 가령 캐릭터의 매력을 극대화하는 채널이 침착맨이라면, 콘텐츠 그 자체로 밀어붙이는 채널은 슈카 월드죠. 저는 후자 쪽에 무게를 두고 있어요.

생존에 관한 이야기도 했지만, 유튜브는 리스크가 큰 장르예요. 언제 끝날지 모르기 때문에 이 업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려면 후자가 더 낫겠다고 판단했어요. 제 안에서 꺼낼 수 있는 이야기보다 축구계에서 찾는 이슈가 훨씬 풍부해요. 축구 팬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발굴해서 제작자 마인드로 큐레이팅하고 제 소견을 살짝 얹는 정도가 가장 안정적입니다.

저의 또 하나의 정체성은 ‘문장을 만지는 사람’이에요. 작가 없이 직접 영상 대본을 쓰고 한마디 한마디 쓸 때 정말 고심해요. 경기 분석은 치열하게 하지만 선수에 대한 비판은 안 하려고 해요. 선수나 선수 가족이 봐서 상처가 될 말은 안 하고 싶어요. 아내는 논평은 빼고 큐레이팅만 하라고 하지만, 지금까지는 제 의견을 조심스럽게 얹고 있어요.”

앞으로도 사업이 아니라 작가의 마인드로 유튜브를 하겠다고 했다. 제작진과 광고 영업 시스템을 갖춘 돈 잘 버는 1인 방송국이 아니라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을 하며 좋은 콘텐츠를 쌓는 소통 플랫폼으로.

제품이 아닌 작품, 노동이 아닌 활동으로서의 일은 어떤 모습일까. 머지않아 영어 자막과 AI 영어 더빙으로 해외 구독자들이 늘어나면, 프리미어 리그의 레전드 스타들도 나올 수 있지 않겠냐고… 돈보다 재미를 중심으로 그려가는 그의 지속 가능한 비전은 경쟁과 효율이 보여주는 좁은 세상 너머로 우리의 시야를 끌어올린다.

▲김진짜와 손흥민의 사랑스러운 투 샷.

-살면서 맺었던 인연 중 기억에 남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두 사람이 있어요. 한 분은 서울대 축구부 시절 코치로 만났던 희호 형(김희호, 전 축구 코치)이요. 제가 동네 축구를 벗어난 것도 영국 유학을 떠난 것도 희호 형 덕분이었어요. 원래 저는 일차적인 감각 데이터에 의존해서 동네 축구를 했는데, 희호 형이 경기장 위에 드론을 띄워놓은 것 같은 넓은 시야를 가르쳐줬어요.

또 한 사람은 당연히 손흥민 선수. 손흥민 선수는 저희 집 가장입니다. 하하. 그분 덕분에 조회수가 터져서, 아기도 낳고 좋아하는 일 하면서 살 수 있었어요. 이번에 손흥민이 유로파 리그에서 우승한 후에 울먹이며 했던 말이 또 큰 힘이 됐어요. ‘저를 좋아하는 분들께는 우승이 너무 오래 걸려서 죄송하고, 저를 싫어하는 분들은 저를 조금 더 좋게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스케일이 큰 유명인이 대중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정말 많이 배웁니다.”

재미와 예의, 공부와 사랑을 오가며 대화는 파도를 탔다. 그가 세상에서 가장 ‘말할 맛’ 나게 들어주는 사람이라고 부르는 아내 ‘유정’의 이야기가 사이사이 쉼표처럼 곁들여졌다. 대화를 많이 해서 뇌가 서로 동기화되었다는 부부, 그럼에도 ‘실수를 직면하라’고 브레이크를 걸어주는 사람,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은 그녀를 사랑한 일이었다고 자신 있게 고백하며.

좋은 인연을 선물로 받으려면 내가 먼저 웃고 있으라고 했다. 내가 웃고 있으면 상대도 따라 웃고 ‘사람들은 나를 좋아한다’는 착각은 자격지심을 날려버린다고.

▲김진짜의 최고의 파트너 아내. 3호라는 닉네임으로 촬영도 하고 출연도 한다.

-두 아이의 아빠이면서 35년 차 인생 플레이어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가요?

“감사하게도 저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우연히 존재론적인 고민을 했어요.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유한한 삶에 대해 자각했습니다. 한 번뿐인 인생 재밌게 후회 없이 살자… 아이를 낳고 나서는 또 깨달아요. 얼마나 우연히 운 좋게 태어난 인생인지. 세상에 나오지 못하고 원자 형태로 우주에 그냥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그런 생각을 하면 이번 생이 선물처럼 느껴집니다. 그걸 잊지 말고 최대한 가볍게, 충만하게 살아보려고요.”

‘나도 주원이처럼 세상에 존재하지 않다가 뽕하고 나타났을 것이다… 만져보고 일어서고 넘어지고 친구를 사귀고 중간고사를 치고 킬패스를 찌르고 사랑을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와버린 것이다… 좀 더 가벼이 살아도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 가벼운 충만감이 조금만 더 오래, 더 멀리 퍼져갔으면 좋겠다.’-김진짜의 ‘진짜의 마인드’ 중에서.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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