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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서울 중구 남창동의 한 상가에서 판매중인 이브 진통제 제품의 모습. 4종 모두 국내 반입이 불가하다. /이호준 기자

“여자친구가 사 오라고 했는데요…”

지난 1일 오후 4시,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 수입상가 지하에 있는 한 상점에서 기자가 쭈뼛대며 이렇게 말을 걸었다. 상인은 비슷한 사람이 많은 듯 바로 눈치를 채고 “아, 이브(EVE)?”라고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상인은 진열대에 놓여 있는 네 종류의 제품을 가리키며 “어떤 걸 원하냐”고 했다. 그러면서 “구하기 힘들어졌으니, 여기 올 때마다 사서 쟁여두는 게 좋다”고 했다.

이브는 일본산 진통제로, 생리통과 두통에 효과가 좋다고 알려져 한때 여행을 가면 사와야 하는 ‘필수 아이템’으로 불렸다. 그러나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가 이 약에 의존성을 일으킬 수 있는 성분이 들어 있다며 마약류관리법에 따라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했고, 관세청은 통관을 막았다. 그런데 수입상가에서는 눈에 잘 띄는 곳에 버젓이 진열돼 있었다. 이 주변에서는 10곳 이상의 상점에서 이 약을 팔고 있었다.

1일 서울 중구 남창동 남대문시장 내 한 수입상가의 모습. /이호준 기자

식약처가 판매 금지한 약품 잘 보이는 곳에 진열… 상인 “쟁여두세요”
남대문 수입상가에서 주로 판매하는 품목은 외국산 과자나 인스턴트 라면 등 주로 식료품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국내 판매가 제한되어 있는 수입 약품을 진열해 놓고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상점에서는 수면에 도움을 멜라토닌도 팔고 있었다. 이 약은 미국 등지에서는 쉽게 구할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의사의 처방을 받아야 살 수 있다. 한 상인은 “멜라토닌을 처음 드신다면 용량 3㎎짜리를 드시는 게 좋을 거다” “잠들기 30분 전 한 알을 먹으면 된다” “처음에는 3㎎로 시작해서 효과가 없으면 두 알을 먹으면 된다” 등 마치 의사처럼 자세한 설명도 해줬다.

이브 진통제는 지난 1일 서울 서초구 강남고속터미널 맞은편 상가에 있는 수입 식품 판매점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 기자가 “여자친구에게 주려고 한다”고 말하자, 상인은 진열대 뒤쪽에서 제품 두 개를 꺼내 보여줬다. 그러면서 “제품이 4종류 있는데, 그렇다면 ‘퀵DX’가 좋다”고 말했다. 부산 깡통시장 등 다른 지역 수입상가에서도 비슷하게 외국산 의약품을 쉽게 구할 수 있다고 한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이브 진통제를 남대문 시장에서 판매하고 있다는 내용의 글. /네이버카페 캡처

보따리상이 몰래 소량 갖고 입국해 수입상가에 판매
약사법에 따르면 당국이 허가 없이 의약품을 수입하거나 판매해서는 안 된다. 관세청은 식약처가 정한 ‘반입 금지’ 의약품은 통관을 제한하고 있다. 몰래 들여오다 공항이나 항만에서 세관에 적발된 의약품은 252건이다. 금액으로는 약 1300만원어치다.

그러나 상인들은 보따리상을 통해 제품을 계속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A씨는 “보따리상들이 과자 같은 식품을 사오면서 약도 1~2개 갖고 들어온다. 덕분에 이렇게 진열해 놓을 수 있다”고 말했다. B씨는 ‘이제 한국에 이브 진통제를 들여올 수 없는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소량만 몰래 가져 오면 세관이 잡기 어렵다”고 했다.

다만 상인들도 불법적으로 의약품을 판매하고 있다는 점은 인식하고 있었다. 점포 곳곳에는 ‘사진 촬영 금지’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단속은 쉽지 않다고 한다. 불법 의약품 판매 단속은 자치구와 경찰이 하지만 실적은 거의 없다. 서울 중구 관계자는 “공무원은 수사권이 없고, 경찰은 의약품 지식이 부족해 협업 단속을 나간다”면서도 “단속한다는 소문이 돌면 상인들이 문을 닫는다. 인력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반입 불가 의약품을 판매하는 데 대해 소비자 반응은 엇갈린다. 수입상가에서 만난 김모(47)씨는 “얼마 전까지 여행 갔다가 돌아올 때 자주 사오던 약이 반입 금지됐다고 해 당황스러웠다”며 “수입상가에서라도 살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했다. 반면 수입 과자를 사러 온 권모(27)씨는 “금지된 성분이 포함된 약을 대놓고 판다니 이상하다”며 “부작용도 걱정되고, 약효가 좋다고 해도 살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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