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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냉면 동호회 ‘무심한 듯 슴슴한 너’
올 상반기 평냉 마니아들 사이에 급부상한 냉면집 우주옥의 평양냉면


무심한 듯 슴슴한 너. 무더운 여름이면 늘 생각나는, 나직하게 불러보는 그 이름. ‘평양냉면’이다. 이처럼 무구하고 질박한 맛의 음식도 없을진대, 이처럼 예송논쟁 저리가라할 번잡스러운 설전과 갈등을 빚어온 음식도 없다. 메뉴 자체로 장르가 된 음식. 탐구와 분석의 대상이 되고 계보도까지 거느린 평양냉면은 단순한 먹거리 이상의 무엇이다.

‘무심한 듯 슴슴한 너’는 페이스북에 기반한 평양냉면(이하 평냉) 동호회 이름이다. 2013년 개설돼 5100여명의 ‘평냉인’을 보유하고 있는 이 모임은 집단지성의 힘으로 전국 방방곡곡 냉면집의 현황과 각종 정보가 실시간 집대성되는 아카이브이기도 하다. 개설자인 김지인씨(그램퍼스 대표)는개성 출신인 외할머니 손에 이끌려 유년기때부터 40년 이상 평냉에 길들어 온 마니아다. 김씨를 포함해 김성준씨(국순당 해외사업부장), 정성익씨(바 801 대표), 이한주씨(디지털터빈 한국지사장), 김종혁씨(모리사와 코리아 대표), 전효재씨(온육집 대표) 등 6명의 평냉인이 지난달 25일 서울 청담동 냉면집 우주옥에 모여들었다. 우주옥은 올 상반기 평냉마니아들 사이에 ‘핫하게’ 떠오른 곳이다. 맑고 깔끔한 육수에 100% 메밀로 반죽한 면, 그 위에 수비드한 홍두깨살을 고명으로 올린 맛과 감각으로 입소문이 났다. 지디가 만든 피스마이너스원 하이볼 같은 ‘힙한’ 평냉이라나 뭐라나. 평냉에 소주 한 잔. 늘상 먹는 평냉이지만 언제나 기대감으로 설렌다는 이들의 평냉이야기에 귀 기울여봤다.

평냉의 매력은

무심하고 슴슴한 그 맛이다. 외양도 수수하다. 하지만 한 그릇의 냉면이 만들어지기까지 인고의 시간과 노력이 있다. 고기를 삶아 맑은 육수를 만들어야 하고 메밀의 양을 적절히 배합해 반죽한 뒤 면을 뽑아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단순하고 순박한 모습 이면엔 생각지 못한 미학적 여정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때문에 여름철만 되면 ‘냉면값이 비싸다’는 관성적 지적들이 나오는 게 가슴 아프다. 냉면은 비쌀 수밖에 없는 음식이니 말이다.

평냉은 첫입에 매료되기는 쉽지 않다. 어찌 보면 소설 ‘어린 왕자’ 같다. 스무 살 때, 서른 살 때, 또 쉰이 되어 먹을 때마다 맛이 다르다. “기뻤을 때, 마음이 안 좋을 때, 혹은 소주와 곁들일 때. 먹는 상황과 기분에 따라 맛이 달라져요. 이렇게 지루하지 않은 음식은 아마 평양냉면밖에 없지 않을까요.”

평양냉면 동호회 ‘무심한 듯 슴슴한 너’ 회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평양냉면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무엇이 평냉인가

‘면스플레인’이라는 말은 평냉 때문에 나왔다. 이렇게 먹어야 한다, 진짜 평냉은 이런 거다… 위작 여부를 감정하듯 평냉의 정체성을 두고 왈가왈부 설왕설래가 오랫동안 이어졌다. 하지만 2018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공개됐던 옥류관의 평냉은 남한의 수많은 마니아를 충격에 빠뜨렸다. 달아오르던 면스플레인도 주춤해졌다. 대신 평냉을 즐기는 인구는 크게 늘었다. 이때를 기점으로 동호회 회원 수도 1000명대에서 3000명대로 껑충 뛰었다.

“엄밀히 말해 남한에 있는 평냉은 ‘서울식 냉면’으로 불러야겠죠. 진짜 평양냉면이라면 북한 고려호텔에서 요리하던 분이 만드는 서초동 설눈을 꼽을 수 있겠네요. 북한 출신 요리사들이 많지만 가장 최근까지 북한에 계셨던 분이거든요.”

2018년 평양 옥류관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오찬에 올랐던 ‘진짜’ 평양냉면.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서성일 기자


이 정도는 지켰으면

마트에서 파는 사리와 동치미 육수를 사서 뚝딱 말아먹는 평냉. 평냉인 입장에선 평냉을 먹은 것으로 칠 수는 없다. 평냉의 핵심은 면장과 육수 내는 이의 손맛이다. 매장에서 면을 뽑아 삶아내는 자가제면은 기본이다. 냉면을 주문한 뒤 작동하는 제면기 소리에 흥분과 기대감이 솟구치기 시작하는 것은 평냉인으로서 포기할 수 없는 즐거움이다. 메밀 100%를 내세우는 곳들도 있지만 전분을 배합해 식감을 차별화하는 것은 점포마다 고유 스타일이므로 절대 기준은 없다. 한때 메밀 원산지를 두고 몽골산, 미국산, 국내산을 따지는 열정이 휘몰아치던 시절도 있었다.

언제 먹나

일반인들에겐 여름철이 익숙하지만 평냉인은 때를 가리지 않는다. 평냉을 먹으러 갈 때의 마음가짐도 조금은 달라진다. 제육볶음, 돈가스, 짜장면으로 한 끼 때우러 갈 때와는 다른, 특별한 무언가를 향한 기대감이랄까. 하지만 혼자 가야 할 때가 많은 외로운 음식이기도 하다. 대중적이지만 대중적이지 않은 음식이어서다. “손님을 모시고 유명한 평냉집에 간 적이 있어요. 말로는 좋아한다고 하시던데 막상 나오자 몇 젓가락 뜨고는 안 드시더라고요. 그때 느꼈던 안타까움과 아쉬움 말로 다 못 하죠. 그래서인지 친한 사람 아니고는 권하지 못하겠어요.”

이렇게까지 먹어봤다

이들에게 평냉은 한끼가 아니다. 가꾸고 다듬어 발전시켜야 할 사회적 자산이다. 종종 주말이면 서너 군데의 평냉집을 돌며 자신들이 사랑하던 맛이 유지되는지 살피기도 한다. 육수의 염도와 온도, 면의 상태는 물론이고 만두의 완성도도 꼼꼼히 체크한다. 하루에 네다섯 군데를 찾아 평냉을 먹기도 한다는 김지인씨는 “팬데믹 전 몇 년간은 리크루팅 사이트를 검색해 오픈을 앞둔 평냉집의 구인 공고를 확인한 뒤 누구보다 빨리 오픈 날짜에 맞춰 먹고 다닌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김종혁씨도 “새로운 곳이 생겼다면 제주까지 찾아다녔는데 어느 순간 활화산처럼 늘어나 실시간 쫓아다니는 것은 포기했다”며 웃었다.

서사도 맛봐야 한다

평냉은 장충동, 의정부, 우래옥 계열이니 하는 나름의 계보를 갖고 있다. 피란민들에 의해 남한에 정착하고 전수된 음식이다 보니 1세대 노포의 전통이 어떻게 이어졌는지, 그곳에서 일하다 파생·독립한 점포는 어디인지, 새롭게 등장한 곳은 어떤 전사(前史)를 가졌고 잠재력을 드러내는지 등은 맛과 함께 평냉인들이 관심을 두는 주요한 서사다.

무더위가 시작될 때면 유명 평양냉면집 앞은 늘 인파들로 북적인다. 연합뉴스


평냉의 법도가 있나

“이런 냉면 맛도 모르는…” 평냉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을 질색하게 만드는 면스플레인의 전형이다. 비빔냉면을 먹겠다면, 혹은 좀 새콤달콤한 육수 맛의 물냉면을 고르면 어김없이 날아드는 말. 심지어 계열이 다른 평냉을 선택했다고 이런 비난이 오가기도 한다. 뿐인가. 가위질하면 안 된다, 겨자를 뿌리면 안 된다, 쇠젓가락으로 먹으면 안 된다는 갖은 ‘꼰대스러운’ 주장도 있지만 입맛에 맞게, 원하는 대로 먹으면 된다는 것이 이들의 이야기다.

단 하나. 평냉인이라면 ‘완냉’을 해야 한다는 일종의 법칙은 있다. 이는 면은 물론 국물까지 완전히 마셔 발우공양하듯 깨끗이 비워내는 것이다. 완냉되지 않았음은 평냉에 대한 실례이자 더할 나위 없는 혹평이기도 하다.

냉면을 맛있게 먹고 있는 평냉동호회 회원들. 평냉인이라면 ‘완냉’해야 하는 것이 나름의 법도다.


이 집 추천요

폭염이 시작된 지금, 어느 냉면집으로 가볼까. 이들이 즐겨 찾는, 추천할만한 곳들을 물었다.

경평면옥(삼성동)/반죽이 안 되면 문을 닫는 장인정신·하루 딱 300개만 빚는 만두·고객의 테이블을 세심하게 관찰하는 서비스, 광평(삼성동)/한식의 대가가 선보이는 차원 높은 맛·테이블마다 놓인 다시마초도 놓치지 마시길, 서관면옥(서초동)/단메밀과 쓴메밀을 블렌딩해 만든 냉면·점심특선 서관면상 강추, 양각도(일산)/원재료의 특성과 소금 등 조미료의 성분을 분석해 맛을 조합한 정성과 감동이 느껴지는 음식들, 을밀대(일산)/해외에서도 생각나는 냉면의 맛·변함없는 맛과 품질을 유지하는 곳, 진미평양냉면(논현동)/전체적으로 조화로운 맛과 기본기·9년째 미쉐린 빕구르망, 평양면옥(장충동)/평양냉면의 기준 아닐까·술안주로도 이곳 육수가 최고, 평안도 상원냉면(동교동)/제주산 메밀만 쓰는 손꼽히는 집·제육과 편육, 맛보기면까지 훌륭.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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