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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만나] <1> 마주 앉지 못한 술상
스스로 생을 마감한 한 사람의 죽음은 남은 이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는다. ‘왜’라는 질문이 마음을 휘감고 ‘그날’의 기억은 그와 나눈 숱한 장면들과 뒤엉켜 가슴을 짓누른다. 깊은 상실감, 애도의 시간조차 허락받지 못한 채 멈춰버린 일상, 여전히 뾰족하기만 한 사회의 시선 속에 갇힌 자살 유족은 고립의 길을 걷기 쉽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 어둠을 통과해 회복의 길로 나아갔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또 다른 유가족의 손을 잡으려 한다.

국민일보(사장 김경호)는 라이프호프 기독교자살예방센터(대표 조성돈 목사) 한국자살유족협회(회장 강명수)와 함께 자살 유족이 자신의 아픔을 나누고 삶을 회복하는 여정을 기록한다. ‘그가 만나’는 부정적 시선으로 인해 ‘그 사람’ ‘그 가족’이라 불리며 이름을 잃고 숨죽여 살아온 자살 유족이 ‘가족 같은 사람’을 만나 다시 일상으로 걸어 나가는 과정을 담는다. 거친 광야 속 고난을 지나온 이들의 경험은 또 다른 유족이 ‘하루 더 살아내도록’ 버티게 하는 생명의 양식, 곧 ‘만나’가 된다.

지면에서는 사례자가 겪은 아픔을 상담일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QR코드로 연결되는 영상엔 그의 회복 여정이 담긴다. 각각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가 기억해야 할 체크 포인트를 15년차 상담 전문가이자 자살 유족인 강명수 회장이 짚어준다.

그에게는 아버지와 함께 나누지 못한 술 한 잔과 그로 인한 죄책감이 오래도록 마음에 맺혀 잊히지 않았다. 그런 조동연씨에게도 아버지와의 이별 13년 만에 전환점이 찾아왔다. 챗GPT

그의 나이 서른둘 되던 해 어느 날이었다. 느지막이 퇴근한 아버지가 말을 건넸다. “술 한잔하자.” 당시 회사가 파업에 들어가면서 기약 없는 농성을 이어가던 아버지는 술을 잔뜩 드시고 들어오신 터였다. 그는 짜증을 내며 아버지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 또한 다니던 회사가 파업 중이었고 마음이 무거운 상태였다. 더구나 그는 술을 원래 싫어했다. 아버지와 함께 술 마시는 것도, 아버지가 술을 마시는 모습 자체도 싫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술 문제는 그의 마음속에 불만으로 쌓여왔다. 고등학생 땐 더 심각해졌다. 갱년기를 맞은 어머니가 아버지와 서로 때리며 싸우는 모습을 마주할 때면 아버지가 정말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그의 머리를 가득 채웠다. ‘아버지가 죽는 게 소원이다. 아버지가 사라지면. 그렇게만 된다면 어머니와 싸울 일도, 가족들을 불편하고 짜증 나게 할 일도 없을 텐데….’ 아침에 눈 뜨면서부터 잠들 때까지 계속된 생각이다.

아버지는 버스 운전기사였다. 하지만 술에 만취한 채로 다음 날 일어나지 못해 맞교대해야 할 버스 운행을 펑크내는 일이 다반사였다. 처음 한두 번은 사죄의 말로, 그다음엔 읍소로 버텼지만 문제가 거듭되면서 결국 운전대를 놓을 수밖에 없었다. 일을 그만둔 아버지가 집에 있으면서 모든 가족이 위축됐고 힘에 겨웠다. 아버지가 술만 마시지 않으면 가정에 평화가 올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결코 현실에서 이뤄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의 마음에 아버지를 향한 애정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아버지의 말을 단칼에 내친 것이 걸렸는지 잠시 후 다시 말을 건넸다. “그럼 한잔하고 가시든가요.” 하지만 술에 취한 아버지는 이미 등을 돌린 후였다. 뒤도 한 번 돌아보지 않고 손짓만 하고 자리를 떴다. 그 순간의 아버지 모습이 지금껏 지워지지 않는다. ‘그때 아버지와 술 한잔했더라면….’ 그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맴도는 생각이다.

그날 아버지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시도를 했고 얼마 후 발견돼 병원으로 실려 갔다. 중환자실로 달려간 그에게 아버지가 전한 말은 놀란 마음을 누를 만큼 화를 북돋웠다. “나는 이제 틀린 것 같다, 노조를 끝까지 도와줬으면 좋겠다.” 지금 그게 중요한가 싶었다. 그렇게 가족을 못살게 굴고, 가족을 행복하게 이끄는 일엔 도통 관심이 없었던 아버지가 마지막이 될지 모를 숨을 붙든 채 건넨 말에도 가족은 없었다. 이 말은 야속하게도 아버지의 유언이 됐다. 힘겹게 버티던 아버지는 나흘 후 숨을 거뒀다.

그래도 유언은 유언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의 노조 일을 성심성의껏 도왔다. 그러나 회사 측이 약속했던 금전적 보상은 이뤄지지 않았다. 애초에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은 아니었지만, 서운하고 힘든 마음까지 누를 순 없었다. 아버지가 남긴 건 유언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가족 앞엔 거액의 부채도 함께 남겨져 있었다.

아버지의 자살은 뉴스에 보도될 정도로 공공연한 사건이었다. 모두가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 자신은 우울과 분노로 침전하고 있었다. ‘힘든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털어놓으면 좀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조차 못 하고 살았다.

다른 기업으로 이직하고 싶었지만 노조 일을 하던 게 걸림돌이 됐다. 그는 회사를 사직하고 보험영업을 했다. 3년을 쉬는 날 없이 꼬박 일해서 아버지가 남긴 부채를 다 갚았다. 아버지가 돈 문제로 돌아가셨다는 생각, 아버지처럼 죽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아버지를 떠나보낸 지 4년 정도 지났을 때 그는 결국 탈진하게 됐다. 6개월 동안 정신의학과를 다니며 우울증약을 복용했다. 새벽에 인근 산에 가서 울고 있는 그의 어머니를 경찰들이 찾아오는 일도 생겼다. 그 사이 여동생은 이혼을 겪었다.

알고 보니 집안엔 또 다른 ‘자살 희생자’들이 있었다. 그의 할아버지와 작은아버지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아버지의 형들도 자살을 시도했었다고 했다. 그는 생각했다. ‘나까지 자살하면 내 아들은 자살 DNA를 물려받았다고 느끼겠구나. 절대 나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

그는 사회복지사 조동연씨다. 조씨는 2019년 우연히 알게 된 자살유가족을 돕는 ‘자살 유족 원스톱서비스 상담사’에 지원했다. 아버지를 잃은 지 13년이 훌쩍 지난 해였다. 그 선택이 우울함을 멈추고 새로운 나날을 다시 시작하게 된 선택이라는 걸 그땐 몰랐다.

조씨의 ‘회복 이야기’는 QR코드와 함께 영상으로 만나볼 수 있습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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