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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선변호사 보수 17년째 동결

2005년 국선변호제 시작 이후
처우는 제자리,수임료 연체도
게티이미지뱅크

5년 차 국선전담변호사인 김도윤 변호사는 국선변호를 “노력할수록 손해 보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의 사무실에선 사건 진행에 필수적인 기록복사 비용으로만 한 달에 200만원을 쓰지만 별도의 지원을 받지 못한다. 현장검증 등을 위해 관련 물품을 구매하는 비용, 피고인 접견을 위한 출장 비용도 국선전담변호사 월급에서 감당해야 한다.

위협받는 국선변호제도

사회적 약자 기본권의 ‘최후의 보루’로 꼽히는 국선변호제도가 위협받고 있다. 법원에서 고용하는 국선전담변호사의 월급은 세전 600만원, 재위촉 시 최대 800만원 수준이다. 김 변호사처럼 실제 각종 운영비를 직접 부담하는 현실을 고려할 때 턱없이 열악한 금액이다. 국선 조력 사건은 증가하지만 국선전담변호사 경쟁률은 매년 최저 수준을 기록하는 가장 큰 이유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국선변호사 처우 개선을 제시한 것도 이 같은 상황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형사사건 피고인(33만7063명) 중 국선변호인이 선정된 피고인은 15만2576명으로 45.7%를 차지했다. 2005년 국선변호인 제도가 본격 도입된 뒤 배 가까이 늘었으며 역대 최고 수치다.

하지만 국선전담변호사 처우는 제자리걸음이다. 국선전담변호사의 보수는 2008년부터 17년째 동결 상태다. 국선전담이 아닌 일반 국선변호사는 이 기간 건당 수임료가 20만원에서 55만원으로 늘어 사정이 좀 나아졌지만 여전히 부족한 수준으로 평가된다. 심지어 법원 예산이 부족한 탓에 하반기만 돼도 국선 수임료를 연체하는 사례가 속출한다. 국선전담변호사 경쟁률이 올해 3.3대 1로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한 것도 이런 상황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된다.

국선변호 사건이 늘어난 배경에는 70세 이상 피고인이 필수 국선변호 대상에 포함된 것이 꼽힌다. 노년층의 법률 복지 차원에서 제정된 제도인데, 악용하는 사람이 많아져 예산 낭비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국선변호 경험이 있는 한 변호사는 “건물주 등 재산이 많은데도 ‘돈이 아깝다’며 국선변호사를 선임하는 70대도 많다”고 말했다.

보수 현실화에 지원 기준 세분화해야

이 대통령은 국선변호사의 보수체계 제도화 등 처우 개선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법조계에서는 환영하면서도 기존 제도 개선 등 ‘디테일’에 주목해야 한다는 반응이 나온다.

특히 예산 증액은 국선변호사 처우 개선의 핵심 전제로 꼽힌다. 손영현 서울중앙지법 국선전담변호사는 “보수 현실화가 가장 시급한 과제이고 이를 위한 예산이 반영되는 것부터 실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6년간 국선전담변호사를 했던 신민영 법무법인 호암 대표변호사는 “국선전담변호사나 국선변호를 희망하는 변호사 1인이 감당해야 하는 절대 사건 수를 떨어뜨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현행 국선변호제도의 개편을 통한 예산 재분배 등의 필요성도 제시됐다. 대한변호사협회 관계자는 “법률적 조력이 절실한 사회적 약자에게 실질적이고 충분한 법률 지원이 될 수 있도록 지원 대상에 대한 선별 기준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력사건 등 일반 변호사들이 잘 맡지 않는 사건을 맡는 경우가 많은 만큼 정서적 지원 필요성도 제기됐다. 김 변호사는 “정신적 소모나 생명·신체에 대한 위협은 다른 사건 수행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고 국선변호 활동을 그만두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며 “상담 등 연계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선조력 확대’ 공약… 내실화 먼저

이 대통령은 형사사건은 수사단계에서부터 국선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민사사건도 소송 구조 결정을 받은 사안에 한해 국선변호를 시범도입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법조계에서는 방향에는 공감하면서도 기존 제도 내실화가 우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피해자 국선변호제도는 국선변호 조력 확대의 현실이 녹록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법무부는 올해부터 피해자 국선전담변호사의 한 달 사건 수임 건수를 약 16건에서 약 25건으로 늘렸다. 동시에 세전 600만원 수준이었던 피해자 국선전담변호사의 처우를 재임용 시 최대 800만원까지 인상했지만 실질적인 건당 사건 수임료는 낮아진 셈이다.


피해자 국선변호사의 열악한 처우와 막대한 업무량은 개선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피해자 국선변호사 지원 사건 수는 2020년 2만6007건에서 지난해 3만7605건으로 5년 새 1만건 이상 늘었다. 하지만 지난 5월 기준 전국의 피해자 국선변호사는 전담 48명, 비전담 573명으로 총 621명에 불과하다.

법무부는 피해자 국선전담변호사의 사건 수임 수를 늘린 것은 법원 국선전담변호사의 사건 수를 고려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현장에선 피고인 국선과 피해자 국선의 업무 차이를 고려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각 심급 재판만 책임지는 피고인 국선변호사와 달리 피해자 국선변호사는 수사와 재판 과정 전반을 지원한다. 매달 신규 사건은 늘어나는데 재판은 단기간에 끝나지 않아 동시에 진행하는 사건 수는 계속 늘어나는 구조다. 한 피해자 국선전담변호사는 “사건당 투입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드니 피해자에게 들이는 시간도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변호사들은 조력 확대에 앞서 현행 국선변호제도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도윤 인천지법 국선전담변호사는 “국선사건 전반에 동기부여가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에서 국선변호제도를 확대하는 것이 정답은 아니다”며 “기존 제도를 보완하면서 절차마다 요구되는 변호인의 역할 등을 면밀히 검토해 새로운 제도 도입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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